사랑과 사회

사랑의 풍경. 15화

by Simon de Cyrene

'사랑'을 주제로 쓰면서 남녀관계를 중심으로 글을, 시리즈를 끌고 나가는 게 망설여졌다. 이는 사랑은 사실 남녀관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시리즈를 남녀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나간 것은 소위 말하는 연인관계, 부부관계와 가족 안에서의 사랑이 모든 사랑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사랑'은 가족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배운다. 아니, 그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러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자신도 부모인 게 처음이다 보니 사랑이라고 믿는 것을 아이에게 주는데, 그게 아이의 입장에선 상처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 사랑이 아닌 상처만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상처가 있는 줄도 모르는 상태로, 때로는 자신은 상처가 없다면서 마음 주위에 방어막을 견고하게 친 상태로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받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쉽게 신뢰하지 못하고, 그들은 사랑을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여기거나 자신의 욕구와 욕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많은 경우 그들의 부모가 [사랑]이라는 말로 그들에게 실제로는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투영했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욕구나 욕망 또는 욕정이 아닌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겠나?


사랑이 가족에서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연인관계를 중심으로 끌고 간 것은 가족 안에서 온전한 사랑을 경험하거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 그나마 그런 사랑을 처음 배울 수 있는 관계가 연인관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벽을 치고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연인에게는, 그 사람에게 생기는 감정을 매개로 해서 자신의 마음을 열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진짜 사랑을 경험하고 배우게 될 수 있다.


연인관계가 부모-자녀 관계보다 진짜 사랑을 경험하고 배우는 데 있어서 갖는 장점 또는 나은 점은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부모-자녀의 관계는 수직적이지만 연인관계는 원칙적으로 수평적이라는데 있다. 이러한 관계적 특성은 우리나라의 부모-자녀 관계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원칙, 가치와 기준을 강요할 수 있게 만들지만 연인관계는 상대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희생하고, 상대에게 어느 정도는 맞출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렇게 상대에게 맞췄을 때 상대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행복해지는 것. 그게 사실 사랑의 시작이다.


물론, 모든 연인관계가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연인관계에서도 자신이 항상 우선시되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부모님 세대의 가부장적인 문화를 자신의 연인에게도 강요하고, 어떤 이들은 또 집에서는 가부장제의 가장 아래층에 있다 보니 연인관계에서만큼은 본인이 우위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수평적이어야 하는 연인관계를 수직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연인관계에서도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런 사람은, 그냥 피하는 게 답이다. 이는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를 깨닫고 자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바뀔 수 있다.


이처럼 연인관계가 사랑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정답]은 아니지만, 연인관계는 감정을 매개로 우리가 그나마 방어막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관계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결혼이라는 관행을 매개체로 삼아서 가정이라는 테두리를 만드는 것은 그런 방어막을 내리고 지낼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사랑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우리가 방어막을 내리고 대할 수 있는 관계가 많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수준에 이르지 않더라도 우리가 다른 사람을 조금 더 믿을 수 있다면, 상호 간의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면 그런 관계와 분위기가 많고 강할수록 그 사회는 더 살기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카페에서 내가 노트북을 잠시 놓고 자리를 비웠을 때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회와 잠시 고개만 돌려도 지갑이 사라질 수 있는 사회에서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 않나?


그런 사회적 차이의 시작점은 사실 '사랑'에 있다. 이는 이 시리즈에서 계속 강조했듯이 사랑의 본질은 상대에 대해 신뢰하는 것에 있고, 이는 내가 상대를 신뢰할 수도 있어야 하겠지만 나 또한 상대가 신뢰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를 경험하고, 확장해 나가다 보면 그 사람은 더 많은 사람들을 신뢰하고, 그 사람들이 본인을 신뢰할 수 있게 행동할 것이다. 물론, 그 신뢰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질적이고 동등하게 적용될 수는 없지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그래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상호 간의 신뢰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확률이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그게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몸에 배어 있을 테니까.


그런 사랑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보통 가족 안에서 배우고 형성된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아도 진짜라고 믿고 넘어가 주고, 아이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준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부모가 본인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을 느끼고 믿을 수 있게 대해준다면 그 아이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인정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건 대부분 경우 부모님에게 혼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 아닌가? 잘못을 해도, 실수를 해도 그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는 엄하게 야단치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했을 경우에는 아이에게도 사과를 하면서 자녀와의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면 그 아이는 건강한 자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게 쉬울 수는 없다. 부모에게서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러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면, 아이뿐 아니라 내 연인에게도 그런 노력을 한다면 장기적으로는 그런 노력이 본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사실 연인에게는 그게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이에게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리고 하나의 관계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 대할 때도 어느 정도는 바뀔 수밖에 없다. 본인의 자녀에게 본인의 욕구와 욕망을 투영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이처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상에 영향을 주고, 그런 영향은 관계를 타고 전염되게 되어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게 좋다는 것을 느끼고 알게 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알아야 하는 이유는 사실 여기에 있다. 작은 데서 시작한 사랑이, 결국은 관계를 타고 이어져 사회적 분위기 자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이 중요하고, 강조되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사랑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처에 대해서 일종의 집단면역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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