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14화
이젠 '비혼'에 대한 얘기가 몇 년 전보다 큰 관심을 받진 못하는 느낌이다. 그건 아마도 '비혼'에 대한 얘기가 한 때는 새로웠으나 사람들이 이제 비혼에 대한 얘기에 적응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뭔가가 엄청나게 화제가 되면 거기에 입을 대기 좋아하지만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으면 관심을 꺼버리니까.
그렇다고 해서 비혼 주의자가 줄어든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사실 비혼이란 개념을 만들기 전에도 결혼하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사람들이 '결혼 못하니까 저렇게 말하는구나'라며 무시하고 지나쳤을 뿐.
(내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앞의 글들에서 반복해서 말했듯이) 난 결혼을 해도 되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불행한 결혼생활보다는 싱글의 삶이 낫고,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건 최소한 차악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한 글은 그전에 있으니 상술은 생략하겠다.).
다만,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삶에서 행복이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커리어 등에 대한 얘기는 앞의 글에서 설명했으니 이 글에서는 '취미 등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다 보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해보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취미생활은 우리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고, 취미활동을 자신의 수입 범위 안에서 경제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분명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즐거움을 선물한다. 그리고 취미생활 외에도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 떨고, 놀고, 여행을 갈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정 외로워지면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것도 우리의 외로움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지속 가능하냐?'는 다른 얘기다. 일단 반려견이나 반려묘들이 주는 안정감과 평안함이 있는 사실이다. 나도 14년간 강아지를 키우면서 엄청나게 많이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이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대소변을 치워주고, 산책해 주고, 집에 날리는 털을 치워야 하는데, 그건 어지간히 반려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다 (차라리 말 안 듣는 배우자가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배우자는 일할 때는 눈에 보이지나 않지...). 연예인들이 아이 키우는 것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만 편집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연예인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 사기물(?)이다.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려동물을 통해 어느 정도의 수용감과 안정감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혼자 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친구들의 경우, 친구들이 모두 싱글이고 같은 업계에서 비슷한 수준의 수입을 유지한다면 결혼하지 않고 살아도 될 만큼 수용을 받으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중에 몇 명이라도 결혼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은 삶이 완전히 달라짐으로 인해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되고, 똑같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어도 수입이 다르거나 다른 업계에 있으면 서로 어울리기가 힘들어지는 것을 넘어서 때로는 친구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취미. 나는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취미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것, 중요하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취미생활을 계속, 꾸준히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게 주는 행복과 만족감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물론, 취미생활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기쁨과 즐거움은 있지만 그 기쁨과 즐거움의 수준은 처음 시작했을 때, 하지 않던 것을 할 때 엄청나게 크고, 그 이후로 한계효용치는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취미 부자가 되는 사람들의 경우 그런 한계효용치가 줄어들면 새로운 취미를 수집해서 그 공백을 채워나가는 것인데, 그런 패턴이 평생 갈 수는 없다. 이는 꾸준히 하는 취미가 5-6가지가 되면 그 순간 그 취미는 취미가 아닌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싱글로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삶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길면 10년을 조금 넘어갈 수도 있지만, 내 경우와 주변 싱글들의 패턴을 보면 행복한 싱글로서의 삶은 10년 정도를 기점으로 서서히 외로움이 행복의 공간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예외가 있다면 위에서 설명했던 '싱글이고 같은 업계에서 비슷한 수준의 수입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 사람들 정도인데, 그런 사람들도 대화를 해보면 그런 관계도 이해관계를 완전히 공유하지 않는 이상 공감하는 영역이 줄어들어서 한계가 있는 듯하더라.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모든 것을, 외롭지 않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준단 것은 아니다. 가정에 충실할 줄 모르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그 삶은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이는 혼자이면 외롭지 않기를 기대조차 하지 않는 반면,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으면 어느 정도는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며 덜 외롭기를 기대하는데 그 기대감에 반하는 패턴을 보이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그 기대감이 무너지는 경험까지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맞출 수 없는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는 사람과 꾸린 가정은 지옥과 같을 수 있다.
우리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갖게 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기혼자들이 이러한 결혼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결혼생활을 하게 되는 걸까? 그건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조건을 모르고, 그 부분을 확인하지 않고 결혼하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경제력, 집안, 외모 등에 매몰되어서, 자신의 감정이 만들어 내는 호르몬 작용에만 이끌려서 결혼을 한 사람들은 외롭게 사는 싱글들보다 더 힘들고, 피곤하고, 비참한 결혼생활을 할 확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결혼생활이 행복하려면, 그리고 그 행복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들이 몇 가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건은 호르몬 작용이 아니라 이성으로 따지고 분석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다. 첫 번째로 두 사람이 모두 상대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하는데, 여기에서 '듣다'는 상대의 실제 마음, 때로는 본인도 잘 모르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굉장히 많이 얘기를 해야 한다. 두 번째로, 두 사람이 모두 작은 것들에 대해서는 상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이런 노력을 평생 해야 한다. 최소한 그런 각오를 해야 한다.
이즈음 되면 '그런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힘들다'라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의 기쁨과 즐거움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면, 상대를 나 자신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 가까운 감정을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갖고 있으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느끼는 수용감과 안정은 그런 노력들을 자연스럽게 가능하게 만든다. 내가 여기서 말한 '노력'은 엄청난 희생이라기보다는 순간, 순간 자신이 불편해도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잡는 걸 의미한다. 예를 들면 치약을 중간에서부터 짠 게 짜증이 나면 곧바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올라오는 감정을 잠시 누르고 '이건 이 사람의 삶의 방식이구나. 그러면 아예 각자의 치약을 따로 놓자.'는 식으로 타협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단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두 사람이 대화를 많이 하면 사실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안정, 평안함과 행복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선 상대에게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을 만나서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이 결혼 초기에는 재정도 각자 관리하고 할 수 있지만 그때도 서로에게 투명해야 하고, 함께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는 형식적으로는 두 사람이 각자의 수입을 계속 따로 관리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같이, 투명하게 관리하는 게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는 그래야 두 사람이 서로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사람과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삶을 완벽하게 살아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이런 것을 머리로라도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다툼과 갈등이 있어도 타협점을 찾아갈 수 있고, 타협점을 찾아가다 보면 두 사람이 평화롭게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상대의 배려와 노력을 알아보고 당연시 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 [고맙다]고 표현해주는 것과 자신의 실수로 인해 상대를 불편하거나 힘들게 했을 때 [미안하다]고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일 것이다.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부부들은 자존심 때문에, 이기심 때문에 이 말을 못 해서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더라.
완벽한 삶은 없다. 확률적으로 행복할 가능성이 더 높은 삶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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