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과 결혼의 경계에 대하여

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13화

by Simon de Cyrene

지난 4년여 동안 브런치에서 연애, 결혼, 사랑에 대한 글을 쓸 때도, 그 여정을 마무리하는 이 시리즈에서도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미 이전 글들에서 수차례 밝혔듯이 나는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한다면 감정에 휩쓸려서 할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이성적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야 하며, 굳이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피우기보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이미 수 차례 밝혔듯이 결혼하지 않는 것은 소통이 되지 않고 맞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함께 사는 최악보다는 나은 차악이긴 하지만 그 차악과 솔메이트와 결혼해서 사는 최선 사이에는 그래도 혼자 사는 것보다는 나은 결혼생활들이 다양하게 있으니까.


그런데 이게 말만 쉽다. 그런 삶을 사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비혼을 선언해 버리는 것은 어쩌면 이렇듯 애매하게 가능성도 열어놓고, 안테나도 세워놓으면서도 연애와 결혼에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게 힘들고, 피곤하고, 짜증 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을 아예 없다고 밀어내 버려야 편하기 때문에.


그게 왜 어렵냐면, 결혼에 대한 생각은 있는데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고 좋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알아보고 '잘' 결혼하기 위해서는 항상 사람들을 어느 정도는 스캔하고 본인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내가 어디까지 맞출 수 있을지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닫아 놓으면 아예 다 신경을 꺼버리면 되지만 그 가능성이 열려 있으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런 셈 질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게 꼭 나쁜 것도 아니다. 이는 결혼을 해도 이혼을 할 수는 있지만 이혼하는 과정은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많은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가능하면 결혼하면 이혼하지 않는 게 낫고, 그렇다면 결혼은 우리의 미래를 통으로 결정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더.


비혼과 결혼의 경계에 사는 것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을 찾기 위한 노력에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흔 전후 정도가 된 내 또래에 결혼 생각이 없지 않은 싱글들은 30대 초중반에 비해서 소개팅을 잘 안 한다. 소개팅이 들어오는 빈도가 줄어드는 것도 있겠지만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대부분 소개팅이나 뭐니 해볼 만한 건 다 해봤고, 사람들은 노력해야 인연을 만난다고 하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인연이 만나지는 것은 아니란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어느 정도 경험이 축적된 사람들은 반드시 어떠한 사람을 만나야겠단 생각을 갖고 소개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혼과 결혼의 경계에서의 모순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내가 누군가와 맞출 수 없는 것들, 따라서 상대가 갖췄으면 하는 것들이 최소한의 희망사항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줄어들지만 남아 있는 몇 가지 조건은 더 확고한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과 에너지를 쓰진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결정들이 잘못되었거나 이상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그렇지 않은 것은, 노력하고 조건을 따져보고 만난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만나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에너지를 쓰게 되면 그로 인해 일상이 방해를 받기 시작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사실 그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들이 결혼을 완전히 놔버리지 못하는 것은 싱글들에게는 항상은 아니어도 가끔씩, 한 번씩, 자주라고 하기엔 가끔, 가끔이라고 하기엔 자신이 사실 외로웠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상황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지난 2주 동안 그런 에피소드가 두 번 정도 있었는데, 한 번은 친한 여자 회사 동기들과 약속이 어쩌다 하루에 두 개, 따로 잡혔는데 총 8-9시간을 내 얘기를 하고 상대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은, 오히려 충전받은 느낌을 받고 놀란 적이 있다.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고도 헤어질 때는 못한 말은 전화로 하자고 말하는 여자분들은 그게 이상하지 않을 수 있지만 대부분 남자들은 20대에도, 연애를 할 때 연인과도 하루에 5-6시간 동안 함께 있다 보면 할 말도 없어지고 지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8-9시간 대화를 나누고 충전받은 느낌을 받다니... 그건 나도 모르는 외로움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고, 호르몬 작용이 침체되어 있어야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두 번째로 남자들은 사실 통화를 해도 누가 봐도 중요한 일, 반드시 해야 하는 얘기 외에는 잘하지 않고 나 역시 항상 그래 왔는데 내가 어느 순간 연인과 대화할 때 말하듯 내 일상을 친한 형에게 구구절절 다 얘기하고 있더라. 그 형과 나는 순간 '야 이건 아닌 거 같다. 우리 둘 다 심각하다.'라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우리도 몰랐던 외로움이, 누군가에게 공감받고 싶었던 마음이 그렇게 튀어나온 것이다.


남자라서 그렇다고? 나만 그런 것이라고? 아니다. 싱글인 사람들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위에 자신의 외로움을 어떻게든 타개하기 위한 크고 작은 일들을 한다. 그런 현상을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자주 발견하는데, 내 인스타에서 스토리를 미친 듯이 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싱글이거나 배우자와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인 건 우연일까? 그들이 올리는 스토리들은 대단한 게 아니고 자신의 일상의 소소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사실 그렇게 해서라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패턴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게 그들 개인의 특성이라고 하기엔... 그들을 대부분 10년 넘게 알아왔지만 그들이 이렇게 열심히 SNS를 하는 것을 난 본 적이 없다. 페이스북이 주류이던 시절에는 물론이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스타그램에조차 사진을 별로 올리지 않던 사람들이 이젠 거의 인스타그램을 잡고 사는 듯한 패턴을 보인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자신은 결혼하지 않겠다며 굳이 사람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일에 더 집중하고 몰입하는 사람들도 같은 패턴을 보인다. 보통은 일터에서, 특히 자신과 같이 일하는 주니어들에게. 실 전체 세미나를 굳이 주말에 낚시를 하면서 하자고 제안하셨던 실장님의 2020년대 버전 제안들은 오늘도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갖고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결혼한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란 것을 나도 안다. 결혼도 못해 봤으면서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 정도 나이에 결혼 한 번 못해본 사람들은 가족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란 것을 부모와 형제, 자매 관계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여기에서 하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혼자들은 싱글들이 마냥 자유롭고,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그런 것도, 모두 그런 것도 아니란 것이다. 그리고 비혼을 말하며 본인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외로움을 주변 사람들에게, 심한 경우에는 민폐가 되는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진 않은 지를 돌아봐야 한다. 그런 표현은 무의식 중에, 비슷한 패턴으로 나오기 때문에 본인은 몰라도 주위 사람들은 다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비혼과 결혼의 경계의 삶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결혼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소망함을 갖는 것은 그래야 미래에 대해서 기대할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 수용받는 게, 온전한 내 편이, 사랑이 필요하고 그런 경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앞으로의 삶이 지금 같은 딜레마와 외로움을 감당하고 살아야 하니까.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가 안 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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