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출산 그리고 커리어

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12화

by Simon de Cyrene

지금까지는 나처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결혼은 '못'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 심지어 '이 시리즈 제목이 [사람과 사랑]인데 나 왜 [결혼에 대하여]를 다시 쓰고 있는 느낌이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앞으로 쓸 글 몇 개는 결혼을 '안'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쓰는 '굳이 [안]하겠다고 마음먹지는 말아봅시다'라고 설득하는 글들이 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시리즈의 절반 이상을 결혼에 대해 쓰는 것인데 그게 [사람과 사랑]이란 주제와 맞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됐다. 사실 그게 고민이 되어서 지난주 목요일에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마지막 글을 발행하고 나서도 글을 발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로 가기로 했다. 이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현학적인 말로 설명을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글은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박사학위도 법학으로 받은 주제에 무슨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론서를 쓴단 말인가? 에세이보다는 무겁지만 이론서보다는 가벼운 그런 글이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글이 아닐까 싶었고,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사람과 사랑]은 현실에서 [결혼]이란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내 생각들을 쓰면서 그 안에 사람과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이 자연스럽게 묻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 그렇다면 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난 항상 쿨한 척,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글을 쓰는 사람의 일종의 방어장치이기도 하다. 이는 나는 기본적으로 나쁘지 않은 사람과, 너무 다르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삶이 혼자 사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하고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혼이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본인도 누군가와 맞춰가며 살 준비가 안되어 있고, 상대도 그런 상태에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비하면 싱글의 삶이 낫기 때문이다. 정리를 하면, 결혼을 하지 않고 싱글로 살기로 결심하는 것은 최선은 포기하고 차악 정도를 선택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을 현실의 문제 등으로 인해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안'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커리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커리어를 이유로 출산은 물론이고 결혼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분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사회의 가장 큰 부조리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커리어의 차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한 여성이라고 채용하지 않고, 임신했다고 채용하지 않고,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다녀오면 뒤처지기 시작하는 현실은 커리어가 중요한 사람에게 결혼을 인생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최대한 순하게 표현해서) 우리나라의 거지 같은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대체 왜 이런 것일까? 첫 번째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전히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잠시만 멈추자. '여성에 대한 선입견'은 우리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으니 이 글에서는 '남자에 대한 편견'을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남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이처럼 여성을 채용에서 배제한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체력이 좋을 것이라는 편견, 남자는 책임감이 강해서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란 편견, 남자는 아이가 생겨도 업무 공백이 없을 것이란 편견들 때문에 사람들은 채용할 때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한다. 아, 물론, 남자한테는 막대해도 된다는 편견도 있다.


다 잘못된 편견들이다. 남자들이 다 체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몸 관리를 많이 안 하는 남자들은 체력이 점점 약해져서 업무효율이 떨어진다. 요즘은 남자들도 직장에서 아니다 싶으면 이직을 하고, 여자도 돈을 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만둬도 얼마간은 생활에 문제가 없는 남자들도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남자들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선배 중 한 분이 술이 취하면 '키스'를 하는 게 술버릇이었는데, 이를 악 물고 있어서 다행히 키스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불쾌함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그때 키스를 당했던 식당을 지나치면 여전히 그 기억에 몸서리친다.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괜찮은 것은 아니다.


이런 편견들보다 나는 '아이가 생겨도 남자는 업무 공백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그런 문화가 만연해 있지만 이는 바뀌어야 할 악습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행복해야 부모도 행복하고, 부모는 평등해야 하며, 부모가 행복해야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아이와 부모의 행복, 그리고 회사의 업무를 위해서라도 남자들에게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반드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회사들이 여성을 잘 채용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개인이나 가정보다 [일]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남자들을 선호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해주지 않으며, 이런 편견을 갖고 남자를 선호한다.


" I think Americans have the wrong balance. You live to work. We work to live." 미국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사는 듯하다. 하지만 우린 살기 위해 일한다.


Emily in Paris에 나오는 대사다. 커리어를 위해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분들에겐 묻고 싶다. 당신은 일과 삶 중에 뭐가 우선인지. '워라벨'이란 말은 사실 삶이 우선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커리어를 위해 결혼이나 출산은 아예 배제하겠단 것은 삶 대신 일을 선택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은 여성을 채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문화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을 개인보다 중요시하는 그 문화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가 말하는 [커리어]는 무엇을 남기는가? 지금 앉아서 생각해보자. 당신은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의 부사장들 이름을 알고 있나? 본인이 다니는 회사의 부사장들은? 아니, 주요 컨설팅펌 대표나 파트너 이름은? 대형 로펌 파트너나 대표들 이름은?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도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그 정도 위치까지 못 올라간다. 그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그 '커리어'는 무엇을 남기나?


물론, 커리어가 잘 만들어지면 금전적인 보상과 일상에서의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돈을 쓸 시간을 있을까? 쓸 시간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접근해보자.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 정도 되는 사람이 일주일에 일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자신 개인과 가족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총 몇 시간이 될까? 장담하건대 일주일에 24시간이 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일을 안 해도, 퇴근을 해도 머리와 마음속에는 회사와 일에 대한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주일에 24시간이 많다고? 그래 봤자 하루에 3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다! 하루에 3시간도 오롯이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한다면 도대체 왜 지금 그렇게 일에 많은 것을 쏟아붓는 것이란 말인가?


물론, 비싼 음식을 먹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시계를 차면서 좋은 숙소에 묵는 기쁨과 여유는 있다. 가능하다면 그런 것들을 누리면서 사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쁨은 휘발성이 강해서 주기적으로 충전해줘야 하고, 그걸 주기적으로 충전하려면 물리적으로 일을 많이 안 해도 신경은 계속 일에 가 있어야 한다. 몸이 일하고 있지 않아도 신경이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면 그건 결국 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휴가를 가서도, 좋은 호텔에 가서도 일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면 그건 쉬는 게 아니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결혼을 해야만 삶이 있는 것이냐? 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라는 반박도 가능할 것이다. 취미생활도 하고, 문화생활도 하고, 운동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결혼하면 그걸 충분히 하지 못한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그에 대한 반박은 다른 글로 넘기고 일단 이 글에서는 '커리어'에만 집중하겠다.)


결혼을 한다고, 아이를 갖는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난 진심으로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게 더 행복하고,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 평생 혼자 살 생각이다. 한 때는 결혼 자체가 목표였던 적도 있었고, 그래서 급해진 적도 있었으며, 앞자리가 바뀌자마자 한 달에 2-3번은 걸려오는 결혼정보회사 전화에 짜증이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소개팅이나 앱, 인위적인 자리 등에서라도 어떻게든 사람을 만나려는 시도는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결혼을 포기한 것도, 하지 않겠단 것도 아니다. 딱 한 사람이면 되기 때문에 난 내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조금 더 성숙해지고, 상대에게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나 자신을 더 알아가다 보면, 안테나를 켜 놓고 주위를 살피다 보면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사람이 있으리라 믿는다. 나도 나이가 있기에 그게 너무 오랜 후는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 시간이 아주 빨리 오지는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하고, 그 각오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난 얼마전까지 진짜 최선을 다했다. 지치기도 했고, 최선을 다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게 답은 아니란 결론을 내서 페이스를 조절 중일 뿐이다.)


사람은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다. 이는 사람은 사람과 사랑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배우자는, 자녀는 이 세상에서 항상 나의 편일 수 있는, 내가 어떤 경우에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어쩌다 보니 내가 그런 가정을 꾸리지 못하게 될 수는 있지만, 나의 일 때문에 그것을 아예 포기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 아닌가? 내가 차악의 삶을 살게 될 수는 있지만, 굳이 손을 들고 그런 삶을 살아야 할까? [난 가정은 꾸리지 않겠어]라고 생각하고 레이더를 내리고 살면 우린 함께 했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는, 심지어 내가 일하는 것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줌으로써 내가 일도 더 잘할 수 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는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을 자의로 만드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어디 있나?


커리어가, 일이 중요하지 않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여성들의 경우 결혼, 출산과 커리어를 모두 잡긴 쉽지 않다는 것은 내 지인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그런데 세상에 쉽고 가능한 게 있을까? 커리어를 잘 만들고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내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은 쉽나? 거기에 올인한다고 해서 그걸 달성한다는 보장이라도 있으면 모르지만 누가 그런 보장을 해주나?


결혼을 해서 배우자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은 그런 변수들에 대응할 수 있는 상수를 만드는 것이다. 자녀를 갖는 것 역시 그런 변수들 속에서 내가 흔들릴 때 나를 다잡을 수 있는 상수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배우자도 아이도 본인 마음대로 되진 않지만, 그래도 배우자와 아이가 항상 본인 편이라면 그 존재 자체만으로 상수가 되지 않을까?


이 모든 것에는 '나와 함께 맞춰갈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난다.'는 전제가 깔려있고, 그러기 위해선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눈도 갖고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선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포기만 하지 않으면, 몇 번씩 넘어질 수는 있어도 우린 그 길로 갈 수 있다. 다이어트를 중간에 몇 번씩 실패해도 운동과 식이요법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하면 결국 살은 빠지는 것처럼. '굳이 그런 노력까지 해야 하냐?'라고 물으신다면, 겨우(?) 살을 빼기 위해 짧게는 몇 주에서 길면 몇 개월씩 약도 먹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힘든 운동도 한다면, 평생의 행복을 위해서 그 정도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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