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7화
개인적으로 힘들어보지 않았어서 힘든 사람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본인이 과거에 힘들었다며, 본인이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 난 그런 사람들을 더 싫어한다.
그런 사람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사실 상대의 상황을,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한 때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정말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심지어 완전히 똑같은 일을 겪었다 하더라도 누구도 누군가의 마음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이는 같은 일을 겪었어도 그것으로 인해 밀려오는 고통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사람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그 고통의 크기가 더 크거나 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희석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누구도 특정한 경험을 '현재'에 하는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이는 특히 과거에 실패를 했었지만 지금은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일수록 더 그렇다. 그렇게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실패로 인해 겸손한 이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반대로 '나도 그렇게 힘들어 봤지만 다 극복할 수 있어'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근래에 들어서는 '나도 과거에 흙수저였다'는 식의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신은 자신의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그가 과거에 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그런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힘들었던, 실패했던 기억과 그때의 감정을 그 이후의 성공으로 덮어놓고 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실패했던 시절의 아픔과 고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 해도 지금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100%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는 그들의 기억 속에 과거의 경험이 남아는 있겠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는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했던 실패나 내가 겪었던 고통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네 마음 이해한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나는 항상 '네가 얼마나 힘든지를 내가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왜냐하면 나도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거든'이라고 말하며 내가 겪었던 실패와 고통을 그 사람에게 먼저 압축적으로 공유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그래야 상대도 '이 사람, 정말 힘들어 봤던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게 마음의 문을 열고,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그런 접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상대의 입장에선 '그래도 너는 나보다 가진 게 많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나빠서, 약해서, 꼬여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힘들면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은 보지 못하고 상대가 가진 것에 눈이 먼저 가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어느 정도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있지 않은 이상 사실 내 과거의 경험도 얘기하지 않고 그저 '내가 당신의 아픔과 고통을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굉장히 힘들 것이란 사실만 알겠다. 그게 어느 정도 고통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이라는 얘기를 먼저, 주로 꺼내고 대화에 전제한다.
가식이 아니라 사실이다. 내가 몇 년 전에 보고 떨어졌던 시험을 상대가 올해 떨어졌다고 해서 내가 상대의 심정을 100% 헤아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 유일한 예외는 내가 시험에 불합격했을 때 똑같은 시험에서 같은 결과를 받아 들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와 똑같은 결과를 받아 든 동생이 나도 불합격했단 소식을 듣고 내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어대던 결과 발표 당일, 난 당당하게 그 친구에게 '네 마음 나도 알아'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친구와 완전히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으니까.
'내가 네 마음을 안다'는 생각은 오만한 마음이다. 우리가 상대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상대가 겪은 것을 얼마나 겪어봤다고 함부로 '네 마음을 안다'라고 말을 하나? 그럴 때 공감해주는 방법은 옆에 있어주고, 정말 힘들겠다고, 그 마음을 내가 100% 이해하지는 못하고 그 감정을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일 것이란 것만 알겠다고 해주는 게 우선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그런 말을 들을 때야 비로소 이 사람이 정말 본인의 상황에 대해 감정적으로 이입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그들은 그런 마음이 들 때야 비로소 상대가 하는 얘기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내가 네 마음을 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단골 메뉴는 그 뒤에 '그런데,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면서 다음 스텝을 말한다. 물론 어느 시점엔가, 누군가는 그런 얘기를 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상대와 어느 정도 이상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사람이 상대의 마음의 상처가, 아픔이, 고통이 어느 정도 봉합된 후에, 상대가 정신을 차렸을 때 해야 상대에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말이다. 이는 그런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그런 얘기는 그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도 없고, 신뢰관계가 있어도 어느 정도 마음이 추스러지지 않은 상태에선 그런 말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단 의미다.
본인이 상대의 마음을 정말 안다면, 상대가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는 관계이거나 상태일 때는 그런 얘기를 쉽게 꺼내지 않고 자제하지 않을까? '내가 네 마음 안다'는 말을 상대에게 꺼내는 것은 사실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모르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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