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5화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를 꽤나 오래 알아왔던, 10년 이상 알아왔던 사람들이 '너는 듬직하지'라거나 '너는 다 잘하잖아'라고 할 때. 그건 그래도 꽤나 긍정적인 표현이고, 같은 맥락에서 부정적인 표현으로 '엄살 부리지 마'라고 하는 사람들도 가끔이라고 하기엔 자주, 자주라고 하기엔 가끔 있다.
다 고마울 수 있는 말들이다. 나를 안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니가 날 얼마나 안다고?'라며 욱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나를 안지 꽤나 오래된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은 나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기에 고마울 수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넌 할 수 있어'계열의 말들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고맙기보다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는 말이다. 이는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성공의 열매를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르고, 과거에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 말이 아무 그거도 없는 사탕발림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 없는 사람에게 '넌 할 수 있어'란 말은 허공에 대고 외치는 공허한 외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이미 '난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완전 반대되는 말을 해줘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이미 스스로를 압박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겐 '넌 할 수 있어'는 이미 버겁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짐을 지우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는 본인도 지금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든데, 이미 결과에 예민해 있는 상황에서 주위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오히려 주위에서도 본인에게 엄청난 기대를 갖고 있다고, 본인이 특정한 결과를 내야만 한다고 압박을 받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말 '넌 할 수 있어'란 말을 해주고 싶다면,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과거에 그 사람이 어떤 일을 어떻게 극복해 냈고 어떻게 목표를 달성했는지, 또는 그 사람의 어떠한 성향이 이번 일을 해낼 수 있게 될 것인지를 설명해주면서 하는 '넌 할 수 있어'란 말은 그냥 '넌 할 수 있어'라고 하는 말과 질적으로 다르다. 이는 후자는 아무 근거 없이 막 던지는 말 같지 느껴지지만 전자는 근거를 갖고, 그 사람이 정말 내게 관심을 갖고 지켜봤기 때문에 하는 말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넌 할 수 있어'란 말을 하게 되는 시점이라면, 그 사람을 듣는 사람은 이미 스스로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지배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렇게 긴장된, tense 한 상태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근육의 긴장을 풀고 쓸데없는 근육에 힘을 주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필요한 영역에만 긴장하고 힘을 주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 스스로가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온몸에 필요 없는 힘이 엄청나게 들어가 있는 상태란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넌 할 수 있어'란 말은 긴장을 풀어주는 마사지가 아니라 더 힘을 주라고 외치는 채찍질과 같이 느껴질 수 있다.
그 사람이 앞둔 일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반드시 이뤄야만 하는 일은 없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시험이, 취업이 마치 내 인생 전체를 좌우할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일은 없더라. 때로는 그런 시도에서의 실패가 우리 인생을 조금 돌아가게 만들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게 오히려 우리에게 더 좋은 일일 때도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온 몸에 힘을 주고 자신감을 넘어 자존감까지 무너진 사람에겐 어쩌면 '넌 할 수 있어'란 말보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은 괜찮은, 훌륭한, 의미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선물해 줄 수 있는 말을 해주는 게 더 필요할 것이다. 그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너는 너 자신 그 자체로 의미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말 말이다. 또 그런 마음을 갖고, 힘을 조금 뺄 수 있게 되면 그 사람은 오히려 자신 앞에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큰 산을 자신의 힘으로 넘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본인이 '난 할 수 있어'란 최면이 필요한 사람이거나 구체적으로 설득력을 갖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아닌 이상 굳이, 누군가에게 '넌 할 수 있어'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는 [결과와 무관하게 넌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말을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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