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하면 될 거야"

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3화

by Simon de Cyrene

'최선을 다해 봐'라는 말보다는 나은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 그리고 마치 헬스장에서 웨이트를 들면서 마지막 한 번만 더 들면 된다고 외치는 PT선생님이나 같이 운동하는 동료의 외침처럼, '조금만, 조금만 더 해!!!'라고 말해줌으로써 마지막 2%를 채우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듯, 어떤 이들은 그 마지막 한 번을 들어 올리려 몸에 힘을 주다 근육이나 힘줄을 다치거나 쇠가 떨어져 신체발부 어느 곳인가를 깨든지 다치게 하듯, '조금만 더'라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운동을 할 때도 정말로 '조금만 더!'를 외치면 세트를 완성할 수 있는 사람과 더 하려다가 다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구분해서 운동을 시켜야 하듯, '조금만 더'란 말도 사람의 상황을 보고 해야 하는 말이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 온몸에 있는 심리적, 신체적 힘을 다 쓰고 있어서 더 쥐어짤 게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외치는 '조금만 더'는 그 사람을 몸과 마음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반드시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 잠시 쉬어가면 더 많은 힘을 끌어모아 일을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도 주위에서 외치는 '조금만 더'를 듣고 더 몰아쳤다가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질 수 있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더'란 말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사실 '조금만 더'란 표현은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은데 한 발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는 사람에겐 굉장히 잔인한 표현이다. 본인이 가기 싫어서, 하기 싫어서 못 가고, 못 하고 있겠나? 그 말을 해주고 싶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사실 본인이 이미 엄청나게 힘들고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조금만 더'를 외치면, 그 사람은 그나마 있던 진도 다 빠지게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조금'인 것이 그 사람에겐 천리를 가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거기에 조금만 더 하면 '될 거야'라니... 죽을 정도로, 아무것도 더 못할 정도로 힘든 사람들에게 '될 거야'라는 말만큼 잔인한 말도 없다. 이는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미 본인이 '이 정도 하면 되겠지' 싶은 수준을 넘게 노력하고 있는데도 그 목표가 달성이 안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될 거야'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반사적으로 'ㅆ0 안되더라니까!'란 생각이 들게 만들 뿐이다. '될 거야'란 표현은 아직 최선을 다해보지 않은, 있는 힘을 다 끌어다 써보지 않은 아마추어에게나 통할 수 있는 말이다.


문제는 '조금만 더'라는 표현을 하는 게 부스터가 되는 상태와 그 사람을 나락으로 끌고 가는 상태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본인도 잘 모른다는데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 무너질지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표현을 들으면 '욱!'하고 성질이 폭발함과 동시에 무너지곤 한다.


어찌 보면 큰 문제가 안될 것으로 느껴지는 이 표현을 이 시리즈에 포함시킨 것은 이 표현이 갖는 불확실성이 이처럼 크기 때문이다. 그런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정말 힘들어서 좌절해 있는 사람에겐 이런 표현도 가급적이면 쓰지 않는 게 낫다. 안전하게 가려면 말이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을 때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는 말은, '정말 최선을 다했으면, 너 자신에게 당당했다면 결과는 이루지 못해도 괜찮아'와 같은 표현들이다. 이는 '조금만 더!' 말해줘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그걸 이루지 못해도 큰일이 일어나는 것 아니라고, 조금 늦게 가도 괜찮다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되는 거라고 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목표에 매몰되어 온 몸에 주고 있던 힘을 빼게 되고 사람들은 그렇게 힘을 빼면 보통 조금 더 힘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어서 실질적으로 조금 더 본질적인 일에 힘을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했으면, 너 자신에게 당당했다면]이란 말이 도움이 되는 것은, 누군가가 그 사람이 최선을 다했는지는 판단하지는 않으면서 본인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는 너 믿어'라는 말만 붙여줘도, 그 사람은 큰 힘을 얻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더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사람은 조금 더 힘을 내고,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고, 본인이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그저 그 사람을 품어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힘을 충전시켜주면, 그냥 그 옆에 있어주면 된다. 그게 주위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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