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4화
"후회 없는 도전"이라는 말. 사실일 수 있을까? 정말 일말의 후회도 없는 "최선을 다해봤으니 됐어"라는 생각만, 오롯이 그런 생각만 드는 도전이 세상에 있을까?
없을 것이다. 내가 너무 부정적이고 시니컬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난 그런 도전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진 기회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 기회를 복기하면서 자신이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따져볼 것이고, 그 순간에 잘못한 것에 얼마간은 후회를 했을 것이다. 승부를 반복하게 되는 스포츠와 같은 영역에선 사실 그런 후회가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 후회를 함으로써 다음에 유사한 상황에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후회 없다'거나 '전혀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는 식의 말은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이거나 거짓말일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
스포츠처럼 그나마 몇 번의 반복적인 기회가 주어지는 영역에서는 그래도 후회할만한 실수를 하는 것이 괜찮다. 기회가 다시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기회가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영역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 영역에선 몇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심한 경우에는 한 번 미끄러지면 다시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 번의 기회를 곧바로 잡기 위해 이를 악물고 덤비고, 그런 사람들이 지칠 때면 주위에선 그들을 자극하기 위해 말한다. '후회는 남지 않아야지'라고.
악의가 없는 말이란 거, 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의 취지로 하는 표현이라도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인간은 누구나 후회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남지 않아야지'는 결국 '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내!'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후회는 남지 않아야지'란 말은, 특히 이미 진이 빠질대로 빠져서 넘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힘을 주는 말이 아니라 계속해서 채찍질을 하는 말이 된다.
그 얘기를 듣고, 정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노력을 했는데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그때라도 포기하고 시선을 돌려서 다른 걸 해볼걸 그랬다고 후회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도 그렇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서 어마어마한 기간을 고시촌에서 썩히고, 심한 경우에는 엄청나게 망가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망가진 사람들의 모습은 '후회는 남지 않아야지'라는 말이 얼마나 사람들을 그 목표에 집착하고, 매몰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영역에서든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그 일에, 목표에 매몰되어 살아야 한다. 그렇다 보니 그 일과 목표에 집중하고 매몰되어 있을 때는 그 일과 목표만 길인 것처럼, 그게 아니면 내 인생이 망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세상에서 생계를 해결하는 방법은 물론이고, 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대상과 일은 굉장히 많다. 그 길만 길이 아닐 수도 있단 것이다.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정답일 수도 있지만, 내겐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생에는 정답이 있는 것처럼, 성공과 삶의 방식에 공식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경향이 매우, 매우 강하다. 심지어 사회적 분위기가 그런 상태를 조장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렇다 보니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경쟁을 엄청나게 치열해지고, 그 목표는 극소수만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후회는 남지 않아야지'란 말은 그 실패자들을 그 길에 머무르게 한다. 성공하지 못하는 이상 후회는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남지 않아야지'란 말은 위로의 말도, 동기를 부여하는 말도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최선을 다했으면 그거로 됐어'라고 말해주거나 '이 길만 길이 아니야. 괜찮아.'라고 해주는 게 지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이다. 이는 정말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본인이 그 목표를 이뤄야겠단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면 누군가 '후회는 남지 않아야지'란 말을 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충분히 했던 말을 들으면 오히려 스스로에게 '아니야, 그래도 후회는 남지 않아야지'라고 말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런 말들 덕분에 시야를 더 넓게 갖고 다른, 어쩌면 본인에게 더 맞는 기회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힘은 주위 사람들의 채찍질이 아니라 당근으로 본인 스스로 충전을 했을 때만 생길 수 있다.
후회를 하게 될지 여부는 다른 사람이 규정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이는 사람들은 성향에 따라 후회의 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 포기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후에도 그 길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단 사실로 인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쓴 시간과 노력을 후회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후회할 수 있는 지점이 다른데 어떻게 단정적으로 '지금 더 노력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란 의미를 암시하는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만 해도 30대에 반복된 나의 수많은 실패들을 돌아보며 중간에 포기하거나 그만두지 않은 것을 엄청나게 후회하고 있다!
누군가가 가던 길을 계속 갈 힘이 남아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그리고 후회가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뭔가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 상황에 매몰되어 본인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 많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이 그 목표에 더 매몰되게 만드는 '후회는 남지 않아야지'란 말보다는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려 다른 옵션을, 다른 길을 고려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말이나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해주는 말을 해주는 게 그 사람에게 훨씬 큰 도움과 힘이 된다. 이는 그렇게 환기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이 자신이 정말 그 목표를 위해 더 집중하고 싶은지를 알 수 있고, 그 결과 정말 집중해야겠단 확신이 서면 스스로 남은 힘을 쥐어짜서 그 길을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의 보조자나 조력자가 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사람 인생에 후회가 남을지 여부도 우리가 판단하고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 줄 필요가 있다. '후회는 남지 않아야지'란 말을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삶과 사람은 없다. 후회를 안고 삶을 살아내는 사람과 후회에 짓눌려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 고로 후회는 해도 된다. 아니 하는게 당연하다.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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