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위로하지 못하는 이유

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22화

by Simon de Cyrene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은 집합체다. 나는 인간은 취향, 성격, 이상형과 심지어 성적 지향성까지도 우리가 기억, 인지 또는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사람들은 특히 성적 지향성에 대해 '타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난 그게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노력으로 고쳐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그게 타고나는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쟁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게 타고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칠 수 있다면 그 논의가 의미가 있겠지만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의지와 노력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 기원을 따지는 게 애초에 의미가 없지 않나? 그걸 성적 지향성을 노력을 통해 고치라는 사람들은 과연 자신의 작은 습관이라도 노력과 의지로 고칠 수 있을까? 입맛은? 옷의 취향은? 나는 굉장히 좋아하는 과일은 두리안을 다른 사람에게 계속 먹다 보면 맛있어진다고 억지로 먹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두리안을 좋아하게 될까? 아니다. 우리의 여러 가지 모습들은 우리가 인식하고 인지하는 요소들과 그렇지 못하는 요소와 무의식이 왜인지 어떠한 방향으로 결합되어서 형성되기 때문에 힘과 노력으로 바뀌지 않는다. 설사 바뀔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진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위로할 줄 모르는 것도 그런 습관들 중 하나에 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경쟁이 필요한 영역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는 경쟁을 통해서 성장한다. 남과의 비교라는 측면에서 경쟁이 긍정적이지 않은 면은 분명 있지만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비교대상이 없는 상황에서 본인의 능력치를 계속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상에는 100%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없고, 경쟁도 그러한 영역에 속한다. 경쟁은 분명 일정 부분 필요하고, 우리 사회에 순기능도 갖는다.


하지만 경쟁은 필요한 영역이 있고, 경쟁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 서로 경쟁함으로써 같이 발전할 수 있다면, 경쟁이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더 열심히 노력할 유인과 동기가 된다면 경쟁은 필요하겠지만 사실 '틀림'이 아닌 '다름'의 영역에서는 경쟁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떤 음식이 더 맛있는지에 옳고 그름이 있을까? 어떤 사람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절대적으로 더 아름답고 예쁜 옷이나 외모가 있을까? 그건 개인의 취향의 영역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있는 영역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더 맛있는 음식'을 따지면서 음식의 맛도 경쟁시키려 하고, '더 예쁜 외모와 패션'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이 획일적인 기준의 외모를 갖고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기준으로 더 예쁘거나 덜 예쁘다고 평가하려는 문화가 있다. 인스타와 유튜브에 넘쳐나는 '몸짱' 경쟁을 하는 듯한 사진과 영상들을 생각해보자. 우린 사실 다른 체질을 갖고 태어나고, 그에 따라 만들 수 있는 몸이 다른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모두 똑같은 몸을 원한다. 마치 이상적인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굳이 그 영역에서 경쟁을 할 필요가 있을까?


경쟁만 강조하는 분위기가 위로해주는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가 무의식 중에 모든 것에 '경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감정의 영역도 경쟁으로 여겨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우는 것이라거나, 다른 애는 울지 않는데 너는 우니까 약한 것이라는 얘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강해야 한다는 등의 말들이 그러한 경쟁주의적 사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현들이다. 우리나라에선 누가 덜 우는지가, 더 경쟁적인 것이 강한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타고난 몸이 어느 정도는 다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몸도 다르단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영역이 다른 모양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이는 감정에 강하고 약함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조금 더 강한 사람은 강한대로, 약한 사람은 약한대로의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더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 더 우월한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공감능력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소통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 많이 동요하는 게 나쁜 것인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약한 게 아니라 공감해 줄 수 있는 능력이 더 탁월한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감정적으로 더 잘 동요되거나 덜 동요되는 게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서 판단되고, 그에 따른 비교와 경쟁이 불가능하단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위로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한 가지는 자신의 성향이나 자신이 생각하는 평균보다 상대가 과하게 반응하고 있거나 덜 반응하고 있다고 여긴다는 것인데, 그 사람은 그런 생각을 버리고 상대는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감정에는 절대적인 기준이나 경쟁이 있을 수 없다.


그러한 경쟁주의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특히 문제인 것은 그런 분위기가 공교육 체계에서 심겨진다는데 있다. 앞에서 설명한 '무의식의 영역' 중 상당 부분은 사실 우리의 유년시절에 형성되는데 경쟁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사람은 상대를 '이해'하게 될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학교에서 항상 경쟁을 시키는 것은 아이들이 자신 안에만 집중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에서의 경쟁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물론이고 상황도 고려하지 않도록 강요한다. 생각해보자. 만약 전교에서 1, 2등 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1등 하는 아이가 시험 보는 날에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고 치자. 2등 하는 아이는 1등 하던 아이의 건강을 걱정할까? 아니면 본인이 1등을 할 수 있겠단 생각부터 할까? 우리는 전자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현실에선 후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대부분 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고, 우리나라에서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간 사람들 전부는 아니어도 그중 상당수, 특히 항상 특출 나게 잘나기만 했던 사람들이 공감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은 이유다.


자, 위와 같은 상황에서 1등 하는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오지를 못하니 시험을 전체적으로 연기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하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1등 하는 애가 아프니까 연기하려 한다'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 아이가 아니라 다른 아이 었어도 같은 의견이 나왔을 거야'라고 생각할까? 이건 거의 전자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시험은 아마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형평성] 때문에.


그런데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위로해 주는 사람을 키워내는 교육은 1등 하는 아이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상황이 힘들면 일정을 변경하는 교육일 것이다. 일정을 변경하는 게 힘들다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가 어떻게든 시험을 치게 해주는 게 그런 교육일 텐데,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하면 어떻게 아팠는지 아냐고, 그 시간에 더 공부했을 것이라면서 불공평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 논의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환경에서 평균적으로 12년을 보낸다. 그중에 승자는 항상 칭찬을 받고 잘했다는 말만 듣다 보니 본인보다 결과가 좋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게 될 수밖에 없다. 선생님들은 항상 애들 앞에서 칭찬하고 띄워줄 테니까. 반면에 한국식 시험과 공부에 맞는 재능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기만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그에 반항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 보니 성공만 한 아이들은 실패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주로 실패하는 아이들은 자신을 돌볼 여유도 없다 보니 다른 아이들을 돌아볼 여유도 없게 된다. 그것만 길이 아닌데, 성적 좀 안 좋아도 잘 살 수 있는데 그게 전부인 것처럼 세뇌를 당해서.


그래도 요즘엔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지고 있긴 하고, 교육과정에서 경쟁만 강조되더라도 부모님은 그러지 않으신 경우도 있으며, 또 대부분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실패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같이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경쟁적이게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경쟁과 본인 중심의 사고방식이 강조되고 강요되는 분위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의식 중에 그 영향을 받고, 그렇다 보니 우리 안에는 내가 경험하지 않거나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수용해주는 근육이 공교육 체계에선 잘 생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교육 제도에서 다름은 틀림은 아니고,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생각과 마음을 아이들 안에 심어준다면, 부모들이 성적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아이들을 대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든 것에 마음으로까지 공감을 하진 못해도 최소한 머리로 상대의 아픔과 힘듬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만 되어도 우리는 조금 더 위로받고, 조금 덜 힘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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