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23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로를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잘 받지도 못한다. 그래서 사실 이 시리즈에서 위로가 되지 않는 표현들을 한 땀, 한 땀 비판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 한편에 불편함도 없지 않았다. 이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위로를 전해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위로의 말을 건넸음에도 불구하고 위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꽤나 자주 다른 사람의 의도를 오해해서 위로를 받기보다 상대의 위로를 비아냥거림이나 형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심한 경우에는 말 한마디로 상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신뢰'가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누군가를 신뢰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과연 아니다. 인간은 본래 자신을 위해 항상 경계하며 살아왔다. 원시시대에 사람들이 왜 부족을 형성하기 시작했을까? 신뢰하는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의 힘을 키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도둑이나 사기꾼은 현대사회에 처음 등장했나? 아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조선시대와 그 이전에도 도둑과 범죄가 엄청나게 많았단 것을 알 수 있다. 통계가 잡히지 않았던 시대의 일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근대국가가 등장하고 공권력이 강해지기 전에는 범죄도 더 많이 발생하고, 사람들끼리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말하는 '국가'와 '사회'는 사실 그러한 신뢰의 부재를 극복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형성한 집단이었다는 데 있다. 인간은 서로를 신뢰할 수 있기 위해 국가를 만들고, 그런 신뢰가 강제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마련했지만 사람들은 그와 무관하게,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공동체에서 만든 원칙을 위반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린 어렸을 때부터 '아무도 믿지 마라'는 얘기를 적지 않게 듣는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 어렸을 때는 친구와 잘 지내고 싸우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말보다 누구한테 지면 안된다거나 네가 누구보다 점수를 못 받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더 자주 듣고 비교를 당하게 된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그렇게, 화합해서 잘 지내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경쟁자로 여기고 배척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내 경쟁자라면, 내가 어떻게 그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런 환경에서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그들을 이기고 싶단 마음이 강해지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지 않을까?
물론, 그런 압박을 잘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하고 강하기만 할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 것은 약한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한 성향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경쟁을 정서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상처 받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자신이 정말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분류한 극소수 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신뢰하지 못하게 되어간다.
최근에 곳곳에서 '칭찬을 나를 약하게 한다'거나 '경쟁이 강한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를 강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은 한국에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향해 달려가는 이십 대였고, 한 사람은 좋은 대학을 나와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두 영상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경쟁이 갖는 순기능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분명 경쟁을 통해 발전하고 성장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 경쟁은 그 영역과 분야에만 국한되어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특정 과목이나 분야에서의 성적이 그 분야에서 그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준일 수는 있지만 그 사람 자체가 그 등수는 아니라고 여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국영수를 못한다고 해서 다른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수능 과목을 잘 모른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하급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데 우리 사회에서는 유독 다른 사회보다 사람을 줄 세우고 그 줄 위에서의 위치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문화가 강하다.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그런 문화 속에서는 사람들 간의 신뢰가 형성될 수가 없다.
그리고 경쟁도 사람을 발전하게 하기도 하지만 사실 칭찬도 그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다. 아니, 경쟁만 사람이 성장하게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데 일은 무조건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해야 할까? 아니다. 사람들 중에는 힘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미있고 즐겁게 일하는 사람도 있고, 칭찬을 해주면 더 인정받고 잘하기 위해서, 본인이 정말 재능이 있다고 느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그 영상이, 우리나라의 20-30대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서로를 신뢰하기 힘들게 만들어져 있는 상황에서 [개인]만을 강조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더 신뢰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위로받기 힘들게 만드는 듯하다.
물론, 개인은 중요하다. 나도 기본적으로는 개인주의자다. 그런데 인간이 과연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있을까? 없다. 인간이 이처럼 국가라는 거대한 무리를 형성해서 살아가는 대표적인 생명체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성공했다면 그것이 100% 당신의 능력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다. 당신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했단 것은 당신이 어떤 형태로든 가진 능력이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해주는 사회적인 시스템의 혜택을 봤단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사회적, 외부적인 인프라와 요인이 성공을 더 크게 좌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 중요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은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건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다. 이는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다른 사람을 나 자신만큼이나 존중할 줄 아는 것과 달리 자신만 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모든 것을 본인에게 이익이 되도록 가져가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누구에게 위로받기가 힘들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무슨 말을 해도 잘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 너무 그 사람 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구조와 분위기 속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더 예민하고 덜 예민한 사람들이 있지만 본인이 더 예민하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난 것도 아니지 않나?
본인이 그런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1대 1 관계로 신뢰를 얻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대부분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을 여는 순간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어서 100%로 항상 신뢰하게 되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본인이 사람을 잘 신뢰하지 못하고, 잘 위로받지 못하는 편이라면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당신 탓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성향을 어느 정도는 타고나고, 장점만 있는 성향도, 단점만 있는 성향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에게 너무 예민하다고, 위로를 해줘도 받지를 못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당당하게 물어보자. 당신이 내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행동과 말을 지금까지 얼마나 보여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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