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신뢰와 위로의 상관관계

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20화

by Simon de Cyrene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는 사람들이 어설프게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들이 왜 위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지, 그리고 어떤 표현들이 위로가 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그런데 대부분 글에서 내가 계속 유보하는 조건을 두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표현들이 항상 위로가 되거나 항상 위로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몇 달간 공을 들여서 그렇게 분류를 하고 그에 대한 해설을 해댔냐고? 이는 '통계적으로' 위로가 보통 되지 않는 말들과 위로가 더 많이 되는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와닿는지는 두 사람의 관계, 특히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신뢰관계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두 사람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좌절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다소 직설적인 조언을 하더라도 상대는 그 말 한마디로 위로받고, 일어날 힘이 생길 수도 있다.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나쁜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그건 자연스럽게 '넌 살만한 가치가 있어'라고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것이고 심지어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라는 말도 진심으로 날 위해 하는 말로 해석될 것이다. 이처럼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본인은 나름대로 위로한다고 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거나 심지어 오히려 분노를 일으키는 등의 역효과가 나기도 하는 것은 두 사람 간의 신뢰가 그렇게 깊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말에 위로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서 어설프게 위로를 하려 한 당신의 잘못이다.


문제는 연인이나 가족, 정말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상호 간에 신뢰가 얼마나 단단한 지를 잘 모른다는데 있다. 아니, 연인이나 가족,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그 사이에 신뢰는 생각보다 강하게 형성되어 있지 모할 수도 있다. 상호 간에 오간 커뮤니케이션과 접점이 많은 만큼 누적된 대화의 맥락과 뉘앙스로 인해 사회적으로 더 과계에서 위로해 줄 수 있는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못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부터 칭찬은 하지 않고 항상 야단만 치던 부모님께서 '괜찮아'라고 하면 그 자녀는 '괜찮은 척하지 마! 속으로 그렇지 않은 것 다 안다고!'라고 반항할 수 있다. 그건 그 자녀가 이상한 게 아니다. 그 자녀의 관점에서 부모는 항상 채찍질만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부모가 괜찮다고 하니 그 말에 대한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다.


연인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힘들다고 하면 항상 네가 곱게 자라서 그런 것이라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렇지 그 일이 그 정도로 힘들 일은 아니라는 식으로 가르치려 들던 연인이 갑자기 힘들단 말에 울어도 된다거나 자신을 힘들게 한 상사 욕을 같이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순간 그 사람은 '이 사람이 어디 아픈가? 아니면 바람을 피웠나? 무슨 잘못을 한 거지?'라는 생각부터 들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위로에 대한 신뢰와 경험이 축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친구의 경우는 더하다. 우리가 '친하다'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친함'이 어떤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는지에 따라 상대가 하는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정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랐고,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중학생 때부터 병행했다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구가 전하는 위로는 두 사람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자신의 일상의 고단함과 경제 활동하는 과정에서 겪는 설움에 대해 아르바이트 한번 해본 적 없는 친구가 위로해 주려 한다면 그 말이 위로가 될까? 두 사람 사이에 엄청난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이상 그의 말이 위로가 되긴 쉽지 않다.


하물며 가족, 연인과 친구도 이런데 그보다 덜 가까운 사이는 어떨까? 직장상사나 학교 선배와 같이 사회적 위계가 전제되는 관계에서 전하는 위로는 평상시에 자주 소통하고 속 이야기까지 나눴던 사이가 아니라면 위로하기 위해 건넨 말이 위로가 될 가능성이 더욱 낮다. 그런 관계에서 전한 말은 역효과를 내지 않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뢰는 무의식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진 본인이 어떤 사람과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는지를 대부분 모른다는데 있다. 이처럼 두 사람 간의 신뢰가 어느 정도 강한지, 그리고 그 신뢰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를 함부로 위로하려 들려해선 안된다. 위로의 말은 신중해야 하고, 최대한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고민을 많이 한 후에 전해야 한다. 그렇게 전한 위로는 보통 상대의 고민과 신중함이 느껴지기 때문에 두 사람 간에 신뢰가 아예 없지 않은 이상 최소한 상대를 분노하거나 더 힘들게 만들지는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큰 위로는 역설적이게도 '침묵'이었다. 꽤나 오래 준비했던 시험을 4번째 떨어졌을 때,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봤던 교회 찬양팀 형, 누나들은 내가 다시 낙방했던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내게 괜찮다거나, 힘내라거나,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식의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대했고, 한두 명씩만 어깨를 살짝 주물러 주고 토닥이는 수준으로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 침묵이,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그들이 나의 아픔과 고통을 알기에,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반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고 있구나, 함께 아파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 침묵이 고마웠고, 그때 느낀 따뜻함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날 정도로 내 안에 깊게 새겨져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질 정도로.


사람들은 이처럼 상호 간에 신뢰가 있다면 말로 위로하지 않아도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는 두 사람 간에 신뢰가 있다면, 상대가 내게 뭐라 할지 몰라하는 것 자체가 사실 나의 마음을 위해주고 있단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상호 간에 쌓아 올린 신뢰와 시간에 따라 우리가 상대에게 건넨 말은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되지 못할 수 있다.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는 이처럼 이미 정해져 있다. 따라서 우린 상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 전에 잠시 멈춰서 상대와 본인의 관계를 돌아보고, 신중하게 말을 건네어야 한다. 그렇게 전한 위로의 말은 그런 과정 없이 던진 말보다 상대에게 위로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는 그 신중함이, 멈춰서 고민한 것이 말에서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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