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옆에 있을게"

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19화

by Simon de Cyrene

연인이 싸우는 가장 흔한 패턴은 뭘까? 이미 정답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많이 해보지 않은 남자는 물론이고 나이가 60이 넘은 남자들도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가 있다. 그건 연인이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 연인을 표면적으로 힘들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는 것이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라는 말을 나는 아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 부모님께서 다투실 때부터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도, 요즘 드라마에도 이런 말은 남녀 관계에서 종종 들을 수 있다. 남자들에게 제발 정답을 제시하려 하지 말라고,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하는 말을 아무리 해도 남자들은 대체 왜 연인이나 지인이 힘들면 가르치고 해법을 주려 하는 것일까? 남자인 나도 이해가 안 될 정도다.


물론, 나도 남자다 보니 그런 마음, 그리고 반사적으로 그렇게 반응하게 되는 걸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그런 얘기를 들으면 일단은 내가 생각하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읊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건 어쩌면 목표지향적인 성향이 강한, 남성호르몬이 만들어 내는 반사적인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제는 그런 욕망(?)이 올라올 때면 이성으로 누르고 일단 공감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법을 터득했다. 사실 나이가 들어감에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지적질을 당해본 경험이 그래서는 안된단 걸 알게 해 준 면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안다. 누구나 자신이 힘들 때, 그저 힘들어하고 있는 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안다. 그리고 본인의 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안다. 회사에서 관계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면 그 문제가 생긴 사람과 본인이 부딪힌 원인과 현상을 가장 잘 아는 것도 본인이고, 일 자체로 문제가 생겼다면 더더욱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고, 다른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최소한 그 상대를 모르는 사람보단 본인이 그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기 때문에 해결책도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삼자가 그런 상황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돼?'라는 식으로 직접 해결방안이나 대응책을 물어봤다면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말해주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직접 생각을 물은 게 아니라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고, 화도 냈다면 그건 그에 대한 답을 내달라는 게 아니라 '지금 나 너무 화가 나고 힘들어서 이 얘기를 좀 해야 나아질 것 같아. 그러니까 좀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줘.'라는 말이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상대는 그저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그 사람의 편이 되어주면 된다. 그러한 감정적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그 사람은 이성을 찾을 것이고, 그 본인이 지금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본인이 가장 잘 찾아낼 것이다. 아니면 그때 상대에게 '나 어떻게 해야 돼?' 또는 '이거 왜 이렇게 된 거 같아?'라고 물을 것이고, 그렇게 물어봤을 때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얘기해주면 된다.


우리는 이처럼 많은 경우 누군가가 해결책을 찾아주기보다는 그저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고,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과 위로를 받는다. 인간이 그렇지 않다면, 매우 효율적인 존재여서 그냥 본인의 감정을 삭힐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안타깝게도(?) 누군가가 옆에 있어줘야, 누군가가 본인의 상황과 마음을 수용해 줘야 안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상대에게 기대하기 전에 상대가 '내가 지금 네 옆에 있잖아'라거나, '힘들 때는 언제든 말해, 내가 네 옆에 있을게'라고 말해주는 건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된다. 이는 그 말은 '네가 힘들 땐 내게 기대고 의지해도 돼'라는 의미를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린 누군가가 우리 옆에만 있어도, 아니 있는 느낌만 들어도 힘든 일들의 절반 정도는 해결이 된다. 그렇다면 연인이나 부부는 왜 싸우냐고? 연인이나 부부가 싸우는 패턴을 들어보면 그들은 보통 상대가 내 편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 상대가 내 옆에 있어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때 부딪히고 크게 싸운다.


사실 연인이나 부부의 다툼은 그 현상과 구체적인 디테일은 다르지만 보통 다른 사람 앞에서 상대가 내게 핀잔을 주거나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을 때, 내가 작은 잘못을 했는데도 나를 죄인 취급할 때,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상대가 내게 거짓말을 할 때, 내 기호나 마음을 전혀 존중해 주지 않을 때 정도로 요약, 정리될 수 있는데, 이러한 다툼들은 결국 상대가 내 옆에 있지 않고, 내 편이 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연인과 부부만 그런가? 사실 모든 갈등이나 우리를 힘들 게 하는 건 근본적으로 상대가 내 옆에 있어주지 않고 나와 경쟁하거나 나를 짓누르려 할 때 발생한다. 그럴 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옆에 있어줄 사람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사실 우리는 어지간한 상황을 버틸 수 있다. 항상 든든한 내 편만 있으면 말이다.


그런데 이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내가 연인과 부부의 예를 굳이 든 것도 연인이나 부부는 어쨌든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상대와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한 것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호 간에 어느 정도는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하다 못해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상대의 옆에 서 있을 유인이 있다. 하지만 연인이나 부부가 아닌 경우 사실 우리네 일상은 대부분 각자 살아남기도 쉽지 않아서 선뜻 누군가의 옆에 있어주겠다는 말조차도 하기가 쉽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그만큼 힘든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가 힘들 때 내 옆에 있어주겠다고 하는 건 굉장히 특별하고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인지를 생각해보면 설사 항상 그러지 못하더라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거나 아끼는 사람이라면 이 말 한마디만 해도 상대에게 엄청나게 큰 위로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가장 힘든 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받지 못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도 내 마음과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군가가 뭔가를 적극적으로 해주지 않더라도 그저 옆에서 내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어도, 내가 조금은 덜 힘들었을 것 같다. 아마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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