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교회는 시스템이나 법인이 아니다

[예수를 신의 아들로 믿는 이유] 23편

by Simon de Cyrene

한국'교회'를 비판하기를 조심스러워한다. 이는 '교회'에 대한 나의 정의에 의하면 결국 나도 '교회'의 일부이고,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은 곧 나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 중 상당한 부분은 개신교 신자로서 '교회 됨'에 있고, '교회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을 하는 건 내게도 쉽지 않고, 비판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껴지기 때문에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을 하는 건 내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적지 않게 하고, 그런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의 공동체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을 하기 전에 '교회 안에서' 자체적으로 비판을 하는 게 낫고,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맞는 내용으로, 반박하거나 설명하기 힘든 내용으로 할 때 아프고, 힘들다. 그리고 지인이 그런 얘기를 할 때면 내가 한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에게 대신 사과를 한다. 내게 '교회 됨'이란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 상당수, 어쩌면 대부분은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들에게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남이고, 다른 교회에서 한 명이라도 '우리 교회'로 끌고 오는 것이 선함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물론, 관념적이고 이론적으로만 하나의 공동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로 존재하는 것이 더 좋고, 가까운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해서 지낼 수 있다면 당연히 너무나도 좋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를 추천하거나 자신의 교회에 와 볼 것을 권유하는 게 나쁠 것은 없다. 다만, 그 의도와 목적이 자신의 교회의 규모를 키우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교회는 시스템도, 법인도 아니고 말 그대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여기에서 '시스템'은 단순히 성경공부나 독서모임, 목회자 상담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건 프로그램이고, 어느 정도 프로그램화 된 교육은 필요하다. 이 글에서 말하는 시스템은 조직을 만들어서 운영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만든 제도들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모대학 경영학과 교수님께서 정년퇴직을 하신 후 한 신학대학에서 교회의 경영에 대한 강의를 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분노한 적이 있는데, 이는 경영을 한다는 건 결국 시스템을 갖고 운영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무엇인가? 사람과 무관하게, 사람이 바뀌어도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게 시스템이다. 그런 교회가 정말로 공동체 일 수 있을까?


물론, 교회 안에서 신앙과 믿음이 깊어지기 위해 최소한의 교육과정이나 시스템이 있을 수는 있다. 그리고 교회도 사회에서는 일종의 법인의 형식을 갖기 때문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사람과 사람]을 루틴으로 만들 수준으로 정교하거나 거대해서는 안된다. 이는 그러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순간 사람들 간의 관계의 깊이는 물론이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얕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기본은 사람과 사람이다. 그래서 사실 교회 안에서의 관계에는 어느 정도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족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런데 그게 힘들다고 해서 가족끼리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도 안 하면 그 가족이 어떻게 될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가족은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가족을 주위에서 얼마나 많이 보는가? 가족 간의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는 당연히 다툼도 있고, 힘든 시간도 있을 것이다. 건강한 가정은 그런 게 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과 상대를 더 깊게 알아가게 되는 공동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서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회피하거나 없애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함께 노력하고, 맞춰나가면서 자신과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 안에서 깊어지고 그 과정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나갈 수 있도록 서로를 붙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시스템은 그 과정을 삭제해 버린다. 이는 사람 간의 관계가 시스템으로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서로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얕은 대화만 나누면서 교회를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들의 경우 심지어 어떤 관계도 형성하지 않고도 수년을 다닐 수도 있다. 그렇게 다니는 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교회를 다녀도 형식적으로는 교회의 구성원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게 다니는 것이 그 실질에 있어서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가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우리가 교회가 되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장 20-22절)).


교회는 그저 형식적으로 교회에 잘 출석하고, 성경을 읽는다고 되어지지 않는다. 성경의 내용과 역사, 이론을 잘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 이는 성경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우리가 삶의 다양한 경험과 결합해서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신이 인간의 머리로 공부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면 그게 신일까? 그건 인간이 만든 무엇일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부분들이 우리 삶의 지경과 보는 시야가 넓어지면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지고, 공감하게 되어간다면 그건 진리일 것이다. 우리가 성장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는 당연히 성경에 대해 의심할 수도 있고, 신의 존재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시기가 있을 수도 있다. 교회는 그러한 과정을 함께 하고, 서로를 붙들어 주는 공동체여야 한다. 그게 교회의 가장 큰 존재의 이유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교회는 절대로 일정규모 이상으로 커서는 안된다. 이는 규모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내부를 관리할 시스템을 만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교회가 클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소그룹 모임들이 깊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유지되어야 그 교회가 교회로서 기능할 수 있다.


시스템으로 운영되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교회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많은 교회들은 불편함과 갈등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은 소그룹 모임도 주기적으로 구성원이 바뀌고,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돌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교회에 머무를 수 있도록 성경을 단순화, 공식화해서 전달하고 가르치며 어떠한 질문도 하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는다.


대기업이 사람들을 순환보직으로 돌리고, 누가 새로 들어와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뉴얼을 만들어서 효율화시키는 것과 그런 교회들이 얼마나 다른가? 두 집단은 차이가 없다. 한 가지 있다면 대기업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팔기 위해 시스템을 만드는 반면 교회는 성도들을 잡아 놓고 헌금을 받기 위해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 정도다.


그런 교회들은 '부흥'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흥'이 무엇인가? 그렇게 사용되면 안되는 표현이지만 부흥을 강조하는 교회들은 대부분 숫자를 강조하고, 숫자를 강조하다 보면 결국 교회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교회의 규모가 커지기 위해서는 성도가 많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성도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적지 않은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부흥'은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 성도의 수를 늘리고 헌금을 받기 위한 포장지로 사용되고 있다.


교회가 이래서는 안된다. 개인적으로 대형교회들이 한국교회를 상당 부분 망쳤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복음을, 믿음을, 신앙을, 구원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