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이유. 11
마음이 동하지 않아도 연애를 해도 된단 사람들이 있다. 그런 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든다고. 다 그놈이 그 놈이기 때문에 결혼할 때 굳이 까다롭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약 30%는 맞는 말이지만, 70% 이상은 틀린 말이다.
마음에서 느끼는 설레임과 두근거림은 분명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라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런 느낌은 결국 도파민이 분출되면서 일어나는데 도파민은 새로운 자극에 더 많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우린 연애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처음에는 새로웠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진다. 그렇다 보니 연인과 부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빈도와 강도가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설레이고, 두근거리는 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호르몬 작용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 준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게 좋은 거냐고? 적어도 연애를 시작할 때는 그렇다. 만약 호르몬 작용으로 우리의 이성이 마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처음부터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 많이 듣고, 보고, 경험하는가? 그걸 생각하면 우린 이성이 마비되지 않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할 수 없다.
우리는 이성이 살아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들을 호르몬 작용이 활발할 때 한다. 일하면서 피곤해 죽겠는데도 상대가 보고 싶어서 집 앞으로 찾아가고, 새벽까지 했던 말을 또 하다가 잠들고, 심지어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지출을 하기도 한다. 인간은 그러한 호르몬 작용 덕분에 이성적으로는 하지 않을 행동을 함으로써 두 사람 간에 다양한 경험, 추억과 신뢰를 쌓게 해 준다.
그리고 호르몬 작용은 우리가 상대의 좋은 면은 더 크게 보고, 나쁜 면은 다 받아줄 수 있게 만든다. 친구나 가족이 했으면 질색팔색했을 행동을 연인이 하면 그것도 귀여워 보이고, 사실 누구나 당연히 할 수 있는 배려나 행동도 상대가 하면 더 특별해 보이는 것도 호르몬의 기적이다. 그게 나쁜 것인가? 아니다. 평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을 상대의 모습도 수용해 줄 수 있게 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특별함을 느끼는 건 좋은 일이다.
만약 그러한 호르몬 작용이 없었다면 어떨까? 우리는 상대의 좋은 면 보다 나쁜 면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애초에 사랑은커녕 친구로도 지내지 못할 수도 있다.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 같았던 사람들이 이별할 때는 가장 심한 원수가 된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호르몬 작용 덕분에 눈감고 넘어갔던 것들이 호르몬 없이는 더 거슬리게 되고, 심할 경우에는 그걸 좋게 봤던 자신이 싫어지기도 하는 걸 우리는 경험하지 않나? 헤어질 때 두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호르몬 작용 덕분에 쌓은 경험, 추억과 신뢰는 호르몬 작용이 약해질 때 그 관계를 지탱해 주는 매개체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처음처럼 설레이거나 콩닥이지 않아도 상대와 있을 때 편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으면서 상대가 항상 내 편일 수 있는 것을 믿게 되는 것. 그게 호르몬 작용이 두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설레임과 콩닥거림이 평생 갈 수는 없지만, 얼마간의 그런 감정 덕분에 우리가 받게 되는 지속가능한 선물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머리로 시작한 연애는 그 끝이 어떨까? 그 끝은 좋기가 힘들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계산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머리로 따진다면 무엇을 따질 것인가? 상대의 집안, 학벌, 경제적인 상황과 외모, 지금 당장 보이는 성격 정도를 우리가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보이는 상대의 경제적인 상황, 외모와 성격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거나 변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감정을 통해 이성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경험, 추억과 신뢰가 축적되어 있지 않으면 우린 그 관계를 끝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결혼한 후에야 그런 것들이 바뀌거나 새롭게 알게 되면, 그 관계를 끝내는 과정은 꽤나 고통스러울 수 있다.
머리로 시작하는 연애가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상대도 그걸 느끼고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아는 건 어렵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가 진심으로, 이성을 뛰어넘으면서까지 우리를 좋아하는지 여부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본인을 머리로, 본인의 조건과 겉으로 보이는 것에 끌려서 자신과 만나는 걸 아는 사람은 상대가 원하는 것만 내놓으면서 상대에게 맞춘다.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거짓말은 평생 갈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머리로 시작한 관계는 언젠가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애를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두 사람이 모두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단 것이다. 한 사람은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상대는 머리로만 시작하는 관계는 한 사람이 상대에게 종속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밖에 없고, 그런 관계는 절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와의 만남이 상당기간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자신을 만나는 것 같다면 그 관계는 조금씩 정리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과 헌신으로 상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감성의 영역인 마음이 어떻게 누군가의 힘과 노력으로 움직여지겠나?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마음으로 연애를 시작해도, 끝낼 때는 머리로 끝내야 한다. 그게 쉽지는 않지만, 적으면 수 주에서 길면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난 후에는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겠다는데 상대를 갖기 위해서 자신이 아닌 모습을 보여주고 맞추면서까지 상대를 가지려 하지 말자. 그렇게 해서 상대를 가져봤자 당신은 언젠가 그로 인해 더 아프고 힘들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