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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Feb 02. 2024

국가, 법과 법원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직업군을 꼽으면 공무원, 정치인, 판사가 꼽히지 않을까 싶다. 세 가지로 분류를 했지만 세 직업군은 모두 국가 공무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갤럭시를 쓰지 않으면 삼성전자를 욕할 이유가 없고, SK텔레콤을 쓰지 않으면 SK텔레콤도 욕할 이유가 없으며, 차를 운행하지 않으면 현대기아자동차를 욕할 이유가 없지만 공무원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을 하기 때문에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무원이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 더 있다. 그 두 번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정부의 영향을 받다 보니 그만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갤럭시를 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갤럭시를 사용하면서 비난을 하는 게 아니라 아이폰으로 갈아타면 된다. SK텔레콤의 통신비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은 SK텔레콤을 쓰면서 비난을 하는 게 아니라 알뜰폰을 쓰면 된다. 그들이 '틀려서' 혹은 '잘못되어서'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 아니다. 사람들은 타고난 성향, 성장환경, 만나는 친구, 전공, 직업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에 따라 다른 취향과 경향성을 갖다 보니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에 맞춰서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다른 영역에서 취향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은 이처럼 자신이 덜 싫어하는 선택이라도 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지만 국가는 다르다. 사람들은 이렇게나 다른데 국가는 그들을 모두 포괄하는 무엇인가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게 헌법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조항이 130개 밖에 안된다. 전 국민을, 그리고 전 세계에서 2013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경제 13위 규모의 국가의 기본질서를 단 130개 조항으로 정해 놓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런데, 그게 말이 되는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복잡해지고 다양성이 보장될수록 사람들의 취향, 성향, 경향성이 다양해지고 각 사회영역은 개별적인 특수성을 갖다 보니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최상위법인 헌법은 그 내용이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공무원들은 그렇게 취향, 성향, 경향성과 특수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맞출 수는 없고, 모든 상황에도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단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뭘, 어떻게 하더라도 항상 비판이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여기에 더해서 공무원들이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세 번째 이유가 있는데, 그건 그들도 자기중심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Public Servant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우리 모두 한 번 솔직해 지자. 공무원들 중에 국가와 공동체를 위한 사명감만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은 전 우주에 아주, 극히, 매울 드물게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결국은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 일반 공무원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돌아오는 보상이 현격하게 늘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공무원들의 연봉은 일반 회사원들에 비해서 확연하게 적다. '고등'고시를 봐서 어렵게 공무원이 된 5급 공무원은 1호봉 때 월급을 265만 원을 받는다. 같은 1호봉에 9급은 177만 원, 7급은 196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2023년 국내 중소기업의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은 세전 2881만 원, 대기업은 5256만 원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사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직이나 성과급으로 연봉을 올릴 여지가 있지만 공무원들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열심히, 그렇게 다양한 성향, 경향, 특수성을 갖춘 사람들을 다 맞추라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그들은 공무원 연금이 있지 않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공무원 연금도 줄일 것 같은 기 세고, 설사 줄이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은 원래 현재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지금 당장 받는 보상이 적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이익 때문에 열심히, 그것도 예측불가능한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맞추면서 일하라고 하는 건 실현 불가능한 요구다. 


정치인들은 어떤가? 정치인들은 철저히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투표를 누구에게, 어떻게 하는 지를 보고 자신이 당선되어서 권력을 잡을 수 있을만한 얘기를 하고, 그에 맞춰서 행동을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현실문제에 관심이 없고 정쟁만 일삼는 것은 그들이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구체적인 정책이나 후보자가 이룬 업적과 가능성, 내세우는 정책의 실현가능성을 보는 게 아니라 정파를 보고 투표를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정당과 관련 없이 옳고 바르면서 똑똑한 소리를 해서 당선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면 정치인들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그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그들도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다. 우리나라가 정책중심의 선거가 안 되는 건 진짜로 정책을 면밀히 보고 고민해서 투표를 하는 사람들의 많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항상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국가가 예외 없는 불특정다수를 상대해야 하다 보니 뭘 어떻게 해도 어디에선가 비판을 넘어 비난이 있을 수밖에 없고, 공무원과 정치인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과 개인의 이익을 따라가는 경향성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있다 보니 그 과정에서 불평과 비판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법, 법원과 판사들은 왜 비판을 받게 될까? 그 가장 큰 이유는 법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법은 불특정 다수에게 적용되어야 하기에 해석의 여지를 어느 정도 주는 방식으로 내용이 정해져야 한다. 물론, 그 내용이 너무 포괄적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법은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읽어도 무엇을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추상적으로나마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예측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준의 명확성은 갖춰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이 해석 여지를 아예 남겨두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한 법을 현실에서 해석하고, 사안을 검토해서 어떤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결정하는 게 법원과 판사들이다. 그런데 법원과 판사들은 그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도 관심을 갖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법이 똑같이, 평등한 원리 하에서 적용되는 것도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이는 그래야 법질서가 유지될 수 있고, 국민들이 예측가능성을 담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 자식은 나쁜 놈이니까 강하게 처벌해야지!'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고 '판결이 안 나왔어도 신상을 공개해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자.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 아니면 당신과 잘 아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도 당신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의 가족이 정말 잘못을 했어도 그 사람의 신상이 공개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 불똥이 자신에게까지 튈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이 그런 사안으로 구속이 되면 당신은 증거들을 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경찰과 검찰이 비판을 받아야 하는 지점은 언론이 관심이 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의 사건들을 공개하는 행태이지 유죄판결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게 비판받을 대상은 아니다. 그 사람의 신상을 공개한다면, 크지 않은 범죄로 일단 수사를 받는 사람들의 신상도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당신이나 당신과 굉장히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신상을 쉽게 공개하지 않고, 엄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는 건 경찰, 검찰, 법원이 당신에게도 그럴 확률이 높단 의미다. 경찰, 검찰과 법원은 그러한 방식으로 법질서를 지킬 의무가 있는 자들이다.  


그렇다 보니 법원과 판사들은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판사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면도 영향을 미친다. 판사들은 '독립해서' 판결을 내린다고 헌법에서 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판사는 그렇게 자유롭기만 하진 않다. 판사들도 대법원과 선배 법관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내가 아는 한 판사는 대법원의 판결과 결론이 다른 판결을 내렸다가 여러 곳에서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환경에서 하급심 법원에서 법관이 자신만의 주관으로 상황과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사실 우리나라는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우리나라는 로스쿨 제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20대까지 방구석에 앉아서 공부만 잘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가장 공부만 잘하는 사람들만 판사로 임용했다. 그리고 그 판사들은 책과 글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 외에는 해본 적이 없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판사를 하나의 사회계급이 된 것처럼 떠받들어줬다. 


그런 성장환경과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머리로 공식을 외우고 적용하는 데는 상위 0.01%의 능력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대접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건 그들의 잘못도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그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겪어봤으면서 법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법만 아는 사람을 판사로 채용하는 국가시스템에 있다. 


그나마 로스쿨제도가 생기고, 경력법관제도가 본격적으로 운영되면서 과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법관이 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하지만 변호사시험이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로 해서 매년 정해진 숫자의 수험생들만 변호사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보니 로스쿨은 변호사합격률을 높이기 위해서 공부 잘하고 체력 좋은 어린 학생들을 많이 뽑고, 그렇다 보니 법조계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어리고, 다른 경험이 없고 공부만 해온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법률가는 여전히 '용'으로 대우받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과 생활을 아는 법조인이 아주 많지는 않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변호사징계사례집을 보면 그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작년에는 학폭으로 사망한 피해자 가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그 유가족을 변호하던 변호사가 기일에 세 차례나 불출석해서 유가족이 패소하게 되었는데, 세 번의 불출석 사유 중 한 번은 드라마 공모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사람에 대한 이해와 마음이 있고 책임감이 있다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지 않나? 한두 명이 그랬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겠지만 변호사징계사례집을 보면 그런 사례들은 매년 적지 않게 발생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들의 잘못이긴 하지만 또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는 그런 사람들은 공부만 잘하면, 시험만 잘 보면 되고 하루아침에 개천용을 만들어 주는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들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사람들은 정부, 법과 법원을 신뢰할 수 없을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우리가 그나마 이해할 수 있고, 이러한 상황을 마음까진 아니더라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고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기 위해서는 법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있어야 한다. 이는 정부와 법원의 문제는 법에서 정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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