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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an 26. 2024

법조인과 법을 모르는 사람의 시선

법조인은 변호사나 법무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말한다. 법률가는 그러한 법조인에 더해서 나 같이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법률가들은 대부분이 '법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며 일을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수 있으니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자. 법률가가 아닌 사람들은 법을 보면 '이런 법이 어떻게 만들어진 거야!'라거나 '이런 법은 만들어지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는 게 법과 관련된 사안을 대하는 첫 반응일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렇게 약하게 처벌받을 수 있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법률가는, 최소한 '인간' 혹은 '자연인'으로 있을 때가 아니라 법을 대하는 위치에서 법과 관련된 사건을 바라보고 있을 때만큼은 그런 생각을 하기 이전에 주어진 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을 전제로 해서 주어진 상황이나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과 논의, 분석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법률가는 '법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주어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다투거나 결정해야 할 것인가?'부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법률가들은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주어진 사안, 상황, 사건에 어떻게 적용할 지에 초점을 맞춘단 의미에서 '법해석론'에 초점을 맞춘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법의 해석이 아니라 법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논하고 법을 바꿔야 한다고 다투는 법률가들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이 잘못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내용에 대해 판단하는 경우는 아주 크게 구분을 하면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원고나 피고가 법률 자체가 잘못됐다고 다투거나 법원이 '이 법률은 이상한데...'라고 생각해서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 그 외에도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 가지가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렇게 다툴 수 있게 해주는 이유는 단순히 '부당하다'거나 '말도 안 된다'와 같은 이유여서는 안 된다. 법률은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가치와 내용에 반하는 경우에만 그 효력을 없앨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도 헌법재판소는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법률은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이기 때문이다. 법률의 내용이 분명히 헌법의 가치와 내용에 반하는 것이 아닌 이상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률은 국민들이 선출한 사람들이 아닌 헌법재판관들이 함부로 법률의 효력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에는 전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 다뤄지는 사건들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조인들 중에 헌법재판에 참여해 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법을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거나 법의 효력을 상실시켜야 한다는 식의 연구나 주장은 헌법학자들이나 법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법사회학자나 법정책학자들 외에는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데 법사회학자나 법정책학자들 중에서는 법이 아니라 사회학, 정책학, 행정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의 경우 법률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정책적으로는 말이 되지만 법학적으로는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들도 있다. 또 그렇다 보니 그들의 주장은 법률가들에 의해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법률가들은 왜 그들의 주장을 잘 받아들이지 않을까? 앞에서 말했듯이 법률가들 중 대부분, 압도적 다수는 법을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고 그 안에서 법을 어떻게 해석해서 주어진 사안에 적용할지를 고민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현행 법률체계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 다른 전공자들의 주장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법률가들은 학문적으로도 다른 학문과 점점 멀어져 가고, 이러한 패턴이 이어지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견고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 느낌이 사실 없지 않다. 


여기까진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영역에 대한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의 법조인들이 많은 경우 법을 모르는 사람들과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데 있다. 그게 모두 법조인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규교육과정에서 법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도 의무적으로 학습하지는 않다 보니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도 우리 사회의 법률체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내가 현실이 그러한 것을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범대에서 법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그러한 현실이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범대에서 경제, 사회, 법, 정치를 가르칠 교사가 되기 위해 일반사회 또는 사회교육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확률적으로 정규교육 과정에서 관련 수업들을 선택하고 들었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학생들 중에는 법학개론 수업 중에 '법과 정치 과목을 다시 듣는 느낌이야'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들조차도 기본적인 법률체계에 대한 이해가 확고하게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규교육과정을 마친 사람들 중 대다수는 일반사회나 사회교육 전공 학생들보다 법에 대한 이해가 더 부족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의 정규교육체계에서는 기본적인 법률체계를 상세하게 다루는 과목이 없지 않은가? 


이러한 상황에서 법 전문가들인 법률가, 그중에서도 현실에서 법을 다루는 법조인들의 관점에서 법을 모르는 사람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갑갑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법률의 내용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기본적인 법률체계에 대한 이해만 있더라도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대부분이다 보니 법조인들도 일을 하는 과정에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의뢰인들의 말 중에 주장하거나 다툴 수 있는 말들을 모아서 해석을 해 놓으면 의뢰인들은 법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얘기들을 주장하고 서면에 넣기를 원하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굉장히 많이 일어나다 보니 법조인들은 일을 하면서 할수록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관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수 십 년간 법조인을 '용'으로 여겨왔다. 사법고시에 붙으면 고향에 플래카드가 붙고, 남자들의 경우 결혼정보회사에서 갑자기 전화가 몰려오는 게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여자들의 경우 잘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법연수원 교수 중에 '너희 이 안에서 남자 안 만나면 나가서 결혼할 사람 못 찾는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법조인'을 얼마나 '상위계층'으로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사법고시에 합격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다른 일은 한 적이 없고, 공부만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순수한 영혼들을 주위에서는 치켜세워주고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주다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모든 면에서 우월하고 절대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무의식 중에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내가 만났고, 아는 법조인들 중에 그런 의식을 대놓고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다만, 구체적인 이슈로 들어가면 그들 중 상당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은 흘려듣는 습관이 있는 것을 나는 종종 발견한다. 


나도 법률가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습관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일상생활에서 법적인 얘기를 하다 보면 갑갑함을 느낄 거의 항상 느끼는데 의뢰인들이나 원고, 피고, 피고인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연락하는 그들은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할지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옳은 자세는 아니다. 이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말에는 법적으로는 의미가 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구체적으로 법을 해석하는 데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거나 사안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기준을 제시할 수도 있다. 변호사들의 경우 현실적으로 의뢰인들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사실 판사들에게 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현직 판사들 중 상당수가 어떤 사람들인가? 현직 판사들은 대부분 사법연수원에서도 공부를 가장 잘한 사람들이고, 사법연수원에서 공부를 잘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 나이가 어리다. 이는 현직 판사들 중 대부분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 외에는 어떤 노동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보니 현직 판사들 중에는 노동을 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의 감정이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결과 우리는 때때로 당혹스러운 판결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변호사들은 판사들에게 맞춰서 서면을 작성하고 주장하려고 하고, 그렇게 되면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또 의뢰인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면 변호사들은 판사들에게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을 모르냐'라면서 대놓고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나는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턴을 할 때 법정에서 변호사가 그런 말을 듣는 걸 직접 목격한 적도 있다. 


이러한 악순환이 생기면서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법조인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법조인들은 일반인들은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누가 잘못된 것일까? 냉정하게 얘기하면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 법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고, 법조인들은 갑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억울한데, 우리 사회에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 법조인들에 대한 불신은 커갈 수밖에 없다. 


이 시리즈는 그 중간 어딘가 애매한 지점에 서 있는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공부하는 사람이 법을 모르시는 분들을 조금이나마 설득하게 위해서 기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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