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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Feb 07. 2024

인생엔 정답이 있다

인생에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는 게 인생의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20대 후반까지 살았다. 우리 사회 전반에 그런 분위기가 있기도 했지만, 부모님께서 모두 공부를 굉장히 잘하셨다 보니 부모님의 지인들도 공부를 잘하셨고, 그 영향으로 내 주위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이 널렸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평생을 대기업에 다니셨던 것은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대기업 다니는 회사원의 아들로 평생을 살았던 결과였다.


그랬던 내 생각들이 흔들리고, 틀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전까지는 그 정답을 맞혀가면서, 남들이 인정해 주는 스펙과 이력을 쌓으면서 살았다. 그리고 돌아보면 나는 20대 후반까지는 무의식 중에 그게 당연한 거고, 심지어 그렇게 못 이룬 사람들은 본인이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나는 어쨌든 노력을 하면 목표하는 바를 다 이뤘으니까.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나는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하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 중에 성장환경이 힘든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단 것도, 공부가 다 같은 공부가 아니어서 특정한 공부는 탁월하게 잘하는 사람도 다른 공부는 잘 못할 수 있단 것도 나는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하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게 말이 되냐고? 말이 된다. 내 주위는 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한 뒤에, 좋은 로스쿨에 합격을 하고 다니면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루트로 인생을 사는 게 대단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음과 동시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하게 되더라. 법원에서 일반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판결들이 나오고, 변호사들이 말도 안 되는 실수로 의뢰인이 패소하게 만들며, 의사들은 환자들 위에 군림하는 태도를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은 '일반' 국민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좋은 판사, 검사와 변호사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그렇지 않았다면 국가가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듯이 뉴스에 나오는 일들은 분명 상대적으로 빈도가 적게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사례들이다. 다만, '좋은'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많은 건 분명하지만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하고 여러 일을 하며 힘들게 지내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 중 상당수가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자신과 다른 루트, 즉 엘리트가 아닌 루트를 걸어온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확실하게 알게 됐다. 


나이도, 우리 가정형 편도 내가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의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보니 나는 변호사시험을 다시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어떤 일이든 계속하며 돈을 벌었다. 아버지께서 정년퇴직을 하시고 중소기업에 다니시는 상황에서 내가 부모님께 용돈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평생 봐 온 [좋은 대학-좋은 회사/직장]의 루트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을 만나서 나눈 대화들은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생공부가 됐다. 


그중에 어쩌면 가장 큰 인생공부가 됐던 건 내가 한 대기업 유튜브 채널에서 1톤 트럭을 운행하시는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하루 정도 일터를 같이 찾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게 아닐까 싶다. 그 과정에서 나는 머리로는 '환경이 힘들면 공부를 못할 수도 있고, 공부를 해야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귀와 마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하신 분들 중에 열심히 살지 않으신 분들이 없었고, 그들 중에 여러 경로를 거쳐서 1톤 트럭을 몰게 된 스토리에는 실패와 아픔, 고통들이 항상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삶을 누가 감히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하고, 논문심사도 미뤄지고 있을 때 지인들은 회사 연차가 쌓이면서 조금씩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하더라. 내 첫 직장이 워낙 연봉 수준도 높고 당시에는 가장 선호하는 직장들 중 한 곳이었다 보니 동기들은 여전히 상당수 남아있긴 하지만 그들 중에도 다른 가치를 찾아서 퇴사를 해서 자신만의 루트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다른 경로로 아는 지인들 중에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30대 중반부터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내가 잠시 일했던 대행사도 학부시절에 내가 참여했던 기업의 대학생 프로그램에서 만난 동생이 제일기획을 그만두고 창업을 한 것이었다. 나를 거의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형의 유튜브 채널을 2년 넘게 운영하고, 그 대행사가 내가 일을 도울 때 10명도 안 되는 규모에서는 이제 70명이 넘고 미니빌딩을 사서 사옥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는 과정에서, 그리고 드라마판에서 5년 차로 구르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배우, 작가, 감독, 피디, 스텝들의 삶을 보며 나는 예전보다 조금은 세상을 더 이해하고 되었고,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삶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알게 된 인생의 정답은, 정답이 없단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선호하고 인생의 정답이라고 여기는 대기업 회사원의 삶의 끝은 어떨까? 입사 17년 차인 내 입사동기들 중 남아있는 사람들은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고, 어느 정도까지 승진할 수 있는지가 암묵적으로 이미 결정되었다. 우리 동기들 중에 임원이 2명 나왔고, 나머지 동기들 중에는 팀장이 된 사람들과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이미 갈렸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잘 일한 모델은 아마도 대기업인 아버지의 마지막 직장에서 최초로 정년퇴직을 하신 우리 아버지가 아닐까 싶은데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신 뒤에 얼마간 더 일을 하셨지만 냉정하게 얘기해서 서울에 집 한 채 외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으신 상황이다. 


물론, 그 과정에 잘 준비해서 돈을 잘 모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회사, 특히 대기업은 누군가 그만두고 나가도 시스템이 돌아가야 하다 보니 개인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 업무를 누구나 빠른 시간 안에 적응할 수 있도록 쪼개서 분장한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 안에서,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을 10년, 아니 20년 넘게 받아온 사람들은 그 시스템 밖에 나가서 다른 일을 할 능력을 상실해 갈 수밖에 없다. 대기업 출신을 채용했다가 후회하고 다시는 대기업 출신은 채용하지 않는 중소기업들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처럼 지금 당장 안정적으로 보이고, 정답처럼 여겨지는 것도 시간이 지나고 환경과 시대가 바뀌다 보면 정답이 되지 않을 수 있다. 10년 전에 누군가 '10년 후에는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낮아지고, 고등고시 합격한 사람들도 많이 그만둘 거야'라고 말했다면 누가 믿었을까? 그런데 지금은 그게 현실이 되고 있다. 17년 전에는 연봉 수준이 금융권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대신 워라밸은 괜찮은 편이었던 내가 다녔던 회사는 지금도 연봉 수준이 괜찮긴 하지만 그때만큼 선호되는 직장은 아니다. 대학교수는 막연하게 안정적인 직장이고 명예가 있다고 생각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방의 작은 대학은 교수들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고, 자리가 비고 나면 기존 교수들에게 수업을 더 하게 만들고 새로운 교수를 임용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경제학 과목을 법학박사인 강사에게 가르치도록 하는 대학도 있다고 하더라. 


환경과 상황은 이처럼 많이, 빨리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정답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성공이 반드시 성공은 아닐 수도 있다. 투자로 수십 억을 벌었다고 떠벌리던 사람이 사기꾼인 것으로 알려지고, 그의 부모가 살해되는 것을 우리는 불과 몇 년 전에 봤고 지금도 유튜브 생태계에서는 창업한 치킨 프랜차이즈를 200억 원에 매각했다는 사람의 뒷배경에 대해서 확인되지 않지만 개연성이 없지 않아 보이는 말들이 오가며 그 사람은 결국 유튜브 채널 운영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NBA에서 우승을 일궈낸 슈퍼스타가 총기소지와 폭행혐의로 구속되기도 하고, 우리나라 프로야구 유명 프로야구 선수 중에는 본인이 살인을 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있다. 이처럼 성공으로 보이는 이면에, 그리고 그 성공 이후에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당장 눈앞에 성공처럼 보이는 것들을 너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성공할 필요가 없다거나 성공하는 게 의미가 없단 뜻이 아니다. 성공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 성공은 우리가 그걸 감당할 기초와 토대가 마련된 상태에서 이뤄져야 진정한 축복이자 성공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성공은 기초공사가 부실한 건물처럼 짧은 시간 안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공을 감당할 기초와 토대는 수많은 크고 작은 실패와 깨달은,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단단하게 만들어진다. 이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성공을 당연시 하고, 성공 방정식이 있다고 여기게 되는데 성공에는 어떤 방정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내 기준에서는 성공을 하고 싶다. 내 기준에서의 가장 큰 성공은 내가 글을 썼다는 얘기가 알려지면 사람들이 '그 사람이 쓴 글은 믿고 읽어도 된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관종끼가 있는데, 그 관종 끼는 나라는 개인이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나의 생각과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에 대한 관종 끼다. 나는 유명해지고, TV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알려지고 싶은 욕구와 욕망은 없지만 내 생각과 글이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을 만들고, 누군가의 마음에 위로와 위안을 주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있다. 그런 작업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내겐 성공의 기준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성공의 기준을 가질 필요도 없고, 가질 수도 없다. 우린 모두 다른 사람들이니까.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과 고민이 많으면 이 세상이 돌아갈 수가 없지 않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생각이 간결하고 단순해야 하며, 결단력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서 대출받은 금액보다 큰 이윤을 남기겠다는 욕구와 욕망도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의 욕구가 세상을 얼마나 많이 바꿔왔나?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데 이 명제의 이면에는 위험한 함정이 숨어 있는데, 그건 다르기 위한 다름은 다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다르고 싶어!'라는 이유로 다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다름에 대한 방향성이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공유하는 지점이 되는데 이는 그런 사람들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된다. 다름의 기준은 결국 다른 사람들이 어떤 지에 따라 설정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다를 필요도 없고, 같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달라도 되고, 같아도 된다. 그게 '나 다움'이라면. 누군가는 회사원으로 살아야 이 사회가 유지되고, 누군가는 나처럼 방구석에서 글을 써야 다른 시선이 튀어나올 것이 아닌가? 또 누군가는 제품을 만들고 팔아야 우리가 조금 더 좋은 물건을 사용하면서 살 수 있다. 다만 최근 년간 '나 다움'이 곧 다름으로 치환되는 듯한 트렌드는 위험하다. 그런 흐름 안에서는 남과 같은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폄하하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걸 '개인주의'라고 부르는데,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이기주의(selfishness)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남들이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대로 존중해 주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하는 건 개인주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건 이기주의다. 


이렇듯 '나 다움'을 찾는다는 건 꽤나 복잡하고 어렵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린 사실 무의식 중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두 알고 있다.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있고, 좋아했던 것들, 그리고 우리가 했던 선택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나 다움'이 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나도 모르게 했던 선택들과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던 일들을 따라가 보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정답이라고 강요받고, 학습되기 때문에 그런 '나'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과 마음이 나의 것이었고, 어떤 게 강요나 학습된 것인지를 분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결론에서 내가 가정주부로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뒷바라지하며 가정을 책임지는 게 나 다운 것일 수도 있다. 대기업 같은 큰 조직에서 일부의 역할과 기능을 받으며 소속감을 느끼면서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사는 게 나 다운 것일 수도 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순간, 순간을 사는 게 나 다운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결론들에는 분명 정답이 없고, 어떤 삶을 살아도 괜찮다. 다만, 그게 정말 나의 성향과 경향성에 맞는 것이라면 그렇다. 


내가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페이스북에서도 글을 길게 쓰는 편이었는데 지인들이 언젠가부터 제발 글을 좀 길게 쓰지 말라고 하더라. 난 사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글을 길게 쓰지 않거나 못하는지도 몰랐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내게 글을 쓰는 건 어렸을 때부터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나는 거의 20년 전에도 학부시절에 글, 사진, 영상을 찍어서 먹고살았을 정도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드는 건 내게 당연한 일상의 일부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그런 면에서 조금은 다르단 걸 알게 됐고, 그런 내가 언젠가부터 글을 쓰는 게 업인 연구를 하고 있더라. 그리고 나는 브런치에서 내가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사람인지를 실험하기 위해 이 플랫폼에 가입했고, 약 7년 동안 비공개 처리한 글들을 포함하면 길고 짧은 글들을 2000개 넘게 써왔다. 또 운이 좋게도 그 과정에서 여러 기회들을 받기도 했다. 


내가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10년 정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실험을 해 본 뒤의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지금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대학 강사이자, 드라마 보조작가이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데 이건 내게 맞는 삶의 패턴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에겐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내겐 정답인 게, 다른 사람에겐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단 것이다. 


중요한 건 남의, 사회의 정답을 따라 사는 게 아니라 내 정답을 찾고 그 삶을 살아내며 버티고 지켜내는 것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들 수 있다. 그런 시간일 수년간 지나 이제 조금씩 빛이 보이는 듯한 이 애매한 시점에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건, 그 과정은 충분히 의미와 가치가 있단 것이다. 난, 지금까지의 내 삶과 현재의 내 삶이 모두 좋다. 한 때는 매일 극단적인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죽는 게 두려워서 식단 조절까지 하기 위해 노력할 정도로 나는 사는 게 힘들지만 좋다. 우리 안에는 그런 자신만의 정답지가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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