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Mar 12. 2024

노력하면 다 된다는 거짓말

주위 사람들 대부분, 심지어 대화를 해보면 '얘가 법을 제대로 공부한 게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드는 지인들까지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데 나는 계속 합격하지 못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위에서 상처를 받는 말도 많이 들었다. 네가 살아온 과정을 보면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 시험을 붙지 못하냐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게 아니냐고까지 묻더라. 두 번째 시험에 떨어졌을 때 부모님께서 방에선 나오지 않고 공부를 한다면서 그 안에서 뭔 짓을 하냐고 하셨을 때는 온 세상이 나를 등지고, 내가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함으로 가장 힘든 건 누군가? 나다. 누가 가장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싶었을까? 그것 또한 나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함으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은 누군가?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지만, 당시에는 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가진 것을 다 쏟아부어서 준비하지 않는다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나? 나는 두 번째 시험을 앞두고는 신경안정제를 매일 먹어야 공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고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고, 심지어 시험 보기 일주일 전에 전 여자친구가 보내온 긴 이메일을 읽어보지도 않고 배려심이 없는 행동이란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지우고 휴지통까지 비웠을 정도로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세 번째 시험을 볼 때 나는 불안증세가 너무 심각해져서 정신과 의사인 친구와 상담을 한 뒤 집 근처에 있는 가정의학과에 가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서 먹어야 할 정도로 내 모든 것을 바쳐가며 준비를 했다.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더라. 내가 그저 운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내가 합격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고, 벌리고 싶지도 않았던 나는 항상 박사과정을 하면서 조교를 함과 동시에 한 단체의 간사활동 등을 통해서 최소한 내 생계와 월세는 내가 해결하려 했었다 보니 100% 시험에 집중하지 못한 면도 시험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사람을 너무 만나지 않다 보니 찾아온 여러 정서적, 정신적인 외로움 등도 내가 공부에 조금 더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면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런 이유들은 다 부수적인 것들이다. 내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단순암기를 굉장히 못하는 편이다. 그 이유를 굳이 추측해 본다면 내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들을 단순암기를 중심으로 평가를 하는 한국식 교육이 아니라 해외에 살면서 이해하는 공부를 하는데 익숙했다는 게 작용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뭔가를 집착하는 수준으로 갖고 싶어 지난 그 안에 매몰되어 시선과 사고가 갇히는 편인 것도 내가 암기를 잘 못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항상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 적응해야 하는 삶을 살았던 나는 앉아서 뭔가를 암기하기보다는 주위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생각하는 게 더 익숙하고, 그러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이는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 보니 나는 단순암기에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암기를 싫어하게 되었고, 그 결과 암기를 잘 못하게 됐다.


여기에 더해서 사실 나는 세 번째 시험부터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변호사시험을 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박사과정의 전공을 좋아했고,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는 글을 쓰고 연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모두 '앞으로는 박사학위를 따도 라이선스가 있어야 학교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보니 나는 언젠가 학교로 갈 수 있게 되기 위해 변호사시험을 봤다. 그렇게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아무래도 정말 변호사가 되는 것만을 목표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보다 생각이 많았고, 그 준비하는 과정이 나와 잘 맞지 않다 보니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시험적합한 상태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변호사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이유들은 이렇게나 많다. 이게 다 핑계일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해 냈어야 '정상'일까? 나는 수년간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하고 비판하며 살았다. 그렇다 보니 박사학위를 받고 변호사들 사이에서 일을 할 때는 위축됐고, 스스로가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있더라.


한심한 생각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만의 경험과 생각, 성향이 30년 간 축적되어 온 것을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 안에 엄청난 동력이 있어서 자신을 누르고, 본성을 거스르며 노력을 해야 하는데 나는 심지어 그런 동인조차 없지 않었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는 건 지금 돌아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주 가끔 한 번씩 변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완전히 접었던 2014년 이후에 내게 세 번 더 남았던 기회를 포기하고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했었다면 지금 내가 얼마나 멋있어 보일 지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내가 머리로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안 되는 일은 세상에 분명히 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각자 가진 능력과 개성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일은 있다. 그걸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나는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식의 자기 개발서들이나 '실패한 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을 들으면 분노하곤 한다.


물론, 정말로 노력을 하지 않아서 실패한 사람들도 있다. 모든 실패가 남의 탓이나 본인의 성향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최선'이라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본인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수준도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라고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락함과 편안함은 포기하고, 심지어 자신이 하는 일 외에 다른 것들은 다 끊은 상태로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적어도 수년을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정도로 자신의 것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나 최소한 몇 명씩은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변호사시험을 그렇게 준비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그런데 그렇게 해도 안 되는 건 있더라. 그때는 자신이 갖고 싶었던 그것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보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법'을 몸에 익히게 되고 그 습관은 다른 일로 방향을 틀어도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습관을 자신과 맞는 방향을 찾아서 맞출 수 있으면, 수년간 했던 노력들은 우리가 원하고 목표했던 것보다 우리에게 더 맞는 삶과 일과 목표를 선물해 준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다섯 번이라는 횟수 제한이 있는 길에 도전을 했고, 그 횟수가 내가 방향을 틀 수밖에 없게 했으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목표로 했던 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길에 집착을 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그 지점에서 그 길만 길이 아니고, 그렇게 노력해도 내 것이 되지 않는 길은 사실 본인과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씩 해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방향을 트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러는 순간 내가 해왔던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스스로 실패자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내가 원했던 것, 내가 설정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그 길에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껴서 알고 있으며 그 경험은 우리가 방향을 틀었을 때도 여전히 우리에게 여전히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방향을 틀고 나서 후유증은 분명히 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 과정을 버티고,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방향을 찾아가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고, 또 다른 길이 열리더라. 그리고 내가 집착을 할 정도로 갖고자 했던 목표와 달리 내가 최선을 다하고,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의 결과로 내 앞에 주어지고 열리는 기회와 길들은 내게 잘 맞는 것들이 찾아오더라. 그건 우리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시간 동안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형성된 것들이 외부로 발현되고,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잘 맞을 것으로 보이는 기회와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시험을 준비할 때 '변호사시험'이란 틀에 갇혀서 내게 맞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산다. 대기업에 가거나 변호사, 의사, 판사가 되어야만 할 것 같고,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할 것 같다는 틀에 갇혀서 그것만을 목표로 달리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희생시키는 사람들을 나는 주위에서 많이 본다. 내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면, 나 역시 분명히 그런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을 갖지 못하고, 목표로 했던 것을 이루지 못한 덕분에 내게 맞는 길을 찾았고 지금은 그 길을 걷고 있다. 스스로 그렇게 위안하는 건 아니냐고? 아니다. 나는 애초에 변호사시험을 두 번 본 시점에 변호사가 된 지인들의 삶을 보고, 외국계 기업 법무팀에서 인턴을 하며 그 길은 내게 맞지 않음을 확신했었다. 하지만 내가 만약 변호사가 되었다면 나는 당장의 생계와 부모님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변호사로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지 못한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과 다른 경로를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내게 들어온 제안과 기회들은 모두 내게 맞는 것들이었다. 그 기회와 지금 내가 서 있는 길이 내게 더 맞는 길인지 어떻게 아냐고? 하루에 6시간을 강의하고 나서도 집에 돌아와 강의 자료를 업데이트하고, 학술대회에서 발표도 아닌 토론을 하면서 진심으로 격양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내 생각과 다른 대본이 쓰여지는 모습에 스트레스받고 짜증이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진심임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보람과 가치를 느끼며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나는 이 길이 내게 더 맞는 길임을 깨닫는다.


정말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갖고 있는 힘을 다 쏟아부어도 잘 되지 않았다면 이젠 그 길을 놔줘도 된다. 그런 결정을 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 봤는가?'이다. 정말 그런 시간을 보내 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자신에게 그 정도로 당당하다면, 그땐 방향을 틀어도 된다. 이는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했다면 그 과정에서 축적된 자산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길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정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어디에선가 찾게 되어 있다.  


내가 원했던 길을 가지 못해도 괜찮다. 그 길은 우리에게 사실은 최선이 아닐 수 있고, 우리가 최선을 다하다 보면 우리에게 가장 맞고 가장 좋은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