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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r 21. 2024

너는 안된다는 거짓말

'노력하면 할 수 있어'란 말은 분명 문제가 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노력만 하면 될 수 있으니까 너도 노력하라는 말은 폭력적이다. 노력을 해봤는데, 버티고, 참고, 견뎌가며 시도해 봤는데도 안 되는 게 있다면 본인은 그걸 잘하는 사람과 다르단 것을 받아들이고 길을 틀면 된다. 안 되는 것을 끝까지 버티면서 잡고 있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물론, 정말 본인이 갖고 있는 능력과 힘의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봤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수학이 너무 싫었고, 수학을 문과 수준에서도 겨우 간당간당한 수준으로만 한 뒤에 대학에 입학한 뒤 수학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거시와 미시경제학 수업을 학부에서 듣고 나서 다른 경제학 수업은 아예 들을 시도도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은 수학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나는 모든 것을 통계와 숫자로 말하는 시대에 몇 안 되는 말로만 할 수 있는 이론학문인 법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았고, 나는 진심으로 법학에서 내 전공은 좋아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사실 정말 노력을 해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실험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어떻게 저걸 하겠어'라거나 '저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니까 저렇게 하지'라고 지레 겁을 먹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경우 본인이 노력을 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험이 축적되어 본인은 뭘 해도 안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 그런 사람들 주위에는 왜 그렇게 '야, 네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게 현실적으로 되겠냐?'라는 식으로 핀잔을 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나는 지금도 숫자에 약하고 수학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글을 못 쓰는 건 아니다. 만약 누가 '너는 수학도 그렇게 못하는 애가 어떻게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겠냐?'라고 물어본다면, 난 그에게 내 박사학위 논문을 보여줄 것이다. 수학이 논리적인 사고를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수학을 못한다고 해서 논리적인 사고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음악을 잘 만들 수도 있고, 음악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도 미술은 잘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학업성취를 판단하는 방식인 '암기'를 못하는 사람도 이해해서 답안을 쓰는 주관식 시험은 잘 볼 수 있고, 이해를 요구하는 교육시스템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단순암기는 잘할 수도 있다. 더 좁은 영역으로 들어가 보면 발로 하는 축구를 못하는 사람이 야구공은 프로선수처럼 던질 수도 있고, 글은 쓰지 못하는 사람이 컴퓨터 언어는 쉽게 익히고 잘 써서 코딩을 잘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은 다르게 태어났고, 우리는 모두 최소한 한 가지는 잘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모든 영역이 세분화, 전문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B급 정도의 수준으로 잘하는 제너럴리스트보다는 자신만의 영역을 S급으로 잘하는 스페셜리스트가 더 오랫동안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더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곧 돈을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단 것은 아니다. 그 문제는 시장과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돈을 흘려보내는지와 같은 예상할 수 없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누구도 돈을 꾸준히 많이 벌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지 여부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단 것은, 그래도 먹고살 수는 있단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들이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로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실패는 해서는 안될 대상으로 보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서 본인이 어떤 것을 잘하는지를 찾아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발견하고 싶다면 trial and error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자신의 방향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런 과정을 가는 사람은 자신과 맞지 않는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오를 범하고, 그 안에서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과 맞지 않는 길을 소거할 수 있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신 안에 숨겨진 재능과 성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맞을 확률이 높은 길을 찾아갈 수 있다. 누군가는 그 과정이 짧을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 기간이 한없이 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 하면서 타협도 하고, 넘어져보기도 하기를 권하고 싶은 이유는 그런 경험들은 절대로 그냥 버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영상편집에 관심을 갖지 않던 2000년대 초반에 프리미어로 영상을 편집했었는데, 그 덕분에 팟캐스트도 했고 지금은 지인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대기업 홍보실에 다녔던 경험으로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길어져도,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은 시간이 지난 뒤에 결합되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로 여겨지는 과정도, 새로운 경험이 축적될 수 있다면 실패가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경험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버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일들 중에 자신의 흥미를 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런 사람들은 조직의 일부로 살면서 월급을 받고, 삶의 이유나 즐거움은 조직 밖에서 살아도 괜찮다. 그게 나쁜 거나 문제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색이 분명하고, 주관이 강하면서, 자신의 일을 하게 되면 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특성을 깨달아 알고, 그 특성에 맞춰서 살아가면 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학습이 되어 인생이 별 것 없고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주저앉는 사람도 있고, 한 번 사는 거 평범하게 살고 싶냐는 말에 강박을 느끼고 뭔가를 해야 한단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다른 사람, 특히 가족으로부터 '왜 그렇게 유별나게 사냐'는 말까지 들었고, 그로 인해 내가 가는 길을 가야 하겠는 내 성향을 증오한 시절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조언을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거기에 종속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조언을 한다면, 그 말을 듣고 무조건 쳐내거나 그 말에 노예가 되기 전에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보자.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했던지 그 안에는 이유나 맥락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나는 '글을 조금 천천히 쓰더라도 내 생각을 잘 담아서 논문을 투고하고 싶다'라는 말에 친한 형이 '네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라고 하더라.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와 같은 결정을 한 이유는 분명히 있기에 난 그렇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하는 조언의 맥락과 이유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그 말에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감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그 말을 곱씹어보면 그 말이 '주관적으로' 내게도 맞는 말인지도 판단할 수 있게 되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하고 나면 내 그 조언을 따를지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그 조언이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조언이라면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면 된다. 


사람들, 특히 여전히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일에 입을 대기를 즐겨한다. 사람들은 그로 인해 휘둘리거나 그 영향을 받아서 의사결정을 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사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와 당신의 행복에 크게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하는 조언들은 대부분이 우리 사회에서 정답처럼 제시하는 삶의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좋은 대학에 가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지면 행복하다는 것이 그 전제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단 것이다. 


그런데 돈이 주는 행복은 분명히 있지만 돈만 행복을 주거나, 돈이 더 큰 행복을 주지는 않는단 건 여러 연구들에 의해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자연스럽게 근대화가 이뤄진 국가들일수록 돈을 가장 중요하게는 여기지 않는단 설문조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 또한 언제까지 안정적 일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그런 조언을 참고는 하되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많은 고민 끝에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면 그때부턴 그런 말에 귀를 닫아도 된다. 그들이 '네가 잘 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하는 말들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하는 경우는 매우, 극히 드물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아는 부분도 있지만, 다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 자신을 그래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에 실패했다고 해서 다른 것에도 실패하리란 법은 없다. 그 영역들이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면 이는 더욱 그렇다. 


내 인생에는 내가 관심이 가장 많다. 그렇다면 관심이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 맥락을 이해하고, 그 말이 자신에게 해당사항이 있는지를 고민해 본 뒤에 내린 자신에 대한 결정은 다른 사람의 조언보다 자신에게 더 맞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우리에겐 들을 건 듣고, 흘려버릴 건 흘려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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