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정답이 있고, 내가 타고난 DNA가 있다고 믿으면서 하루, 하루를 살았지만 그 시간은 쉽지 않았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강사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그 자리들이 대부분 사실은 누군가로 내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그 사실에 분노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또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더라. 만약 누군가를 내정하지 않고 모집공고를 냈다가 지원자가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한 사람이 여러 곳에 합격해서 개강 직전에 그 자리를 포기한다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과연 자기소개서 몇 줄로 누군가의 강의능력을 파악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어렸더라면 내정되어 있으면서도 공고를 내는 건 비도덕적이며 분노했겠지만, 30대 후반의 나는 그 정도로 현실을 모르진 않았다.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는 논문에 매몰되어서 보지 못했던 현실이 박사학위를 받고 나자 내게 한 번에 급격하게 몰려왔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학위논문이 밀릴 때도 물론 힘은 들었다. 회사 동기들은 모두 억대 연봉을 받고 있을 시점을 나는 학교에 갇혀서 보내고 있었고 내 통장잔고는 67만 원을 찍기도 했으니까. 그냥 67만 원이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당시에 내가 살던 원룸의 월세와 관리비가 43만 원이었는데 통장잔고는 67만 원을 찍고, 나는 당장 다음 달에 수입이 없는 상태였다. 그땐 정말 극단적인 생각을 하루에도 수 십 번을 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런데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내가 직면한 현실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힘들게 하더라. 통장잔고가 67만 원을 찍었을 때는 그나마 빨리 학위를 받아야겠단 생각을 했고, 변호사시험에 낙방하고 있을 때는 변호사가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나마 어떻게 하면 내가 한 선택들로 인해 벌지 못하게 된 돈을 만회하면서 벌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선정되어서 작년 8월에 출판된 [돈벌이란 무엇인가]는 그때 내가 정리한 돈의 흐름과 원리에 대한 내용을 조금 더 근거를 갖고 뒷받침하면서 쓴 것이다. 그때는 그런 고민을 할 에너지가 그래도 있었다.
하지만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나는 완전히 다른 현실을 직면해야 했다. 나는 말 그대로 초고학력 실업자였다. 정치를 잘하지도 못하지만 굽실대면서 부탁하는 건 더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강사 자리는 보이지 않고, 연구원은 모집공고가 언제 뜰지도 알 수 없는 일인데 또 박사과정을 하면서 봤던 연구원들의 삶은 내가 꿈꾸는 '공부하는 사람'의 삶과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보니 연구원으로 가고 싶진 않더라. 그런데 또 교수님 조교를 하면서 학교와 학계의 정치, 그리고 우리나라 교수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지를 너무 잘 알다 보니 학교로 가는 게 맞을까 싶었다.
나는 분명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서 아무리 고과가 안 좋아도 30대에는 억대 연봉을 찍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는데,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기다 초고학력자가 되다 보니 일반 회사나 조직들은 내 이력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거나 '이런 이력을 가진 사람은 여기에 오래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더라.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돈을 버는 게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돈을 버는 게 힘든 이유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돈을 언제, 어디에 쓰는 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돈을 언제, 어디에 쓰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거나 경험하기 위해서 돈을 쓴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버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상품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취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기업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들의 취향과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포인트를 연구한다. 그게 시장조사고 마케팅이다.
사람들은 시장조사나 마케팅, 경영이론들을 어렵게 설명하지만 그 핵심에는 결국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파악하고 그것에 맞춘 서비스나 물건을 팔 것인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벌기 위해서는 나의 자아나 내가 좋아하는 지점을 반드시 포기하거나 최소한 일정 수준은 타협해야 한다. 바리스타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하기에 맛있는 커피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맛의 커피를 팔아야 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서 팔고 싶다면 금전적 이익은 줄어드는 것을 감소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나를 못 알아준다'라고 하는데, 반대로 생각해 보자. 당신은 왜 그 세상을 알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가? 당신이 세상을 알아주고 이해하고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과 타협하고 싶지 않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치를 각오는 해야 한다. 그리고 '일'에 있어서는 그게 금전적인 이익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정 규모 이상의 돈을 버는 게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누군가의 '취향'을 예상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싸이는 '강남스타일'이 그렇게 메가히트를 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강남스타일 이후에 다시 메가히트를 노리고 만든 싸이의 곡들은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사람들은 '강남스타일'이 왜 메가히트가 됐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걸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물론, 정말 운이 좋아서 자신 멋대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사업을 하고도 돈을 잘 버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것도 두세 번 정도까지다. 그런 운이 평생 반복되는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는 모든 사람들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은 계속 자아를 타협하고, 자신은 죽이면서 다른 사람에게 맞춰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회사일이 재미가 없는 건 당연하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그만두더라도 운영되는데 문제가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맡은 일이 부품처럼 큰 그림에서 일부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 도구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게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회사는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비용에 해당하는 직원들의 연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회사원은 재미없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회사에 필요한 일을 하면서 만족스럽지 못한 연봉을 받을 확률이 높다.
나를 다른 사람에게 맞추고, 타협하는 과정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나?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이 가장 소중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정말 업계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돈을 버는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심지어 자신의 사업을 하거나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벌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돈을 벌어들이는 시스템을 소유하고 운영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본인 마음대로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본인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 주위에 사람이 없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없이는 돈을 버는 시스템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깨달은 뒤에 나는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파트타임/프리랜서로 일을 돕던 회사에 일단 정식으로 취직을 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회사원으로는 살지 못할 성질머리라는 걸 알게 됐고, 나는 3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다행히도 그즈음에 내가 기획단계부터 참여했던 드라마가 편성되어 방영되면서 나는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게 됐고, 프리랜서로 월 300-400은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갑자기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그 모든 프로젝트들이 취소되더라.
이러한 현실은 우리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나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단 것을 보여준다. 돈을 잘 벌기 위해서는 내가 방향성을 제대로 잡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환경적인 요소들도 받쳐줘야 한다.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나는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돈을 벌었단 것이 아니다. 그 말은 본인이 노력도 했지만 당시 사회적 흐름과 변화 속에서 그 노력이 우연적인 요소들과 결합되면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단 의미다.
이처럼 돈을 버는 건 나만의 힘과 노력으로 될 수 없으니 돈을 버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걸 머리로 알고 나서 나는 타협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내게 주어지는 일들은 일단 돈이 되면 무조건 받아서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냐고 훈수를 두기도 했지만 그건 그들이 내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가 하기 싫은 일도 상당부분 해야 하는 게 당연하며,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엔 내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더라. 그래서 난 일단 돈이 되는 일이면 주어지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돈을 많이, 효율적으로 번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쓰기도 했고, 업계 기준으로 매우 적은 출연료를 받고 기업 유튜브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내가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일단 그렇게 주어진 일들은 한 것은 일단 지금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일들을 하면서 힘들기만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게 주어진 일들은 어쨌든 내가 살면서 잘해 왔거나 잘할 것으로 보이는 일들을 주위에서 일감으로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지금까지 먹고살 수 있었던 것은 가장 나다운 모습을 봤던 사람들이 내게 내가 잘하고 좋아할 만한 일을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과거에 열심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았던 삶이 결국 내게 최소한 안 맞지는 않는 일들을 가져다줬단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일단 먹고살기 위해 프리랜서로 산 지 5년이 넘었다. 그리고 나는 4-5년 차부터는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내가 쓰고 싶은 돈은 쓰면서도 잔고가 늘어날 수 있는 수준의 돈을 벌 수 있게 됐다. 올해는 심지어 연초에 일이 너무 많이 세팅되어서 처음으로 일을 거절해야 할 정도였는데, 4-5년 전의 나는 일이 이 정도로 내게 주어지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항상 경제적 안정은 지금 당장 연봉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나를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시작된 프리랜서의 삶 속에서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하면서 구력과 경력이 쌓이고 나니 이젠 일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하더라. 나는 그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을 뿐인데, 지금은 그런 나의 이력이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한 독특한 지점이 되어서 내게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다.
코로나 시절에 내가 벌었던 돈은 1년에 2천만 원이 안 됐었다. 나는 코로나 시절에 프리랜서 지원금이 없었다면 다시 한번 통장 잔고가 100만 원 밑으로 내려갔을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던 시간은 지금 돌아보면 실패가 아니라 투자였다. 그리고 돈을 많이, 잘, 안정적으로 버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리스크와 두려움을 감당하고 어떤 형태로든지 투자를 하는 시간을 거치게 되더라.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조금은 덜 힘들어졌다. 내가 하는 일들이 경력이 되고, 축적되면서 내가 일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내가 지금 1년에 프리랜서로 억대 연봉을 버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들 중에는 여전히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돈과 이력 때문에 하는 일들이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우리의 인생이 100이라면, 그중에 51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상당수 사람들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상당히 행복한 사람이고, 나는 여전히 더 많은 일들이 더 많은 비용을 갖고 나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늘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건, 난 그래도 100 중에 60-70은 내가 하고 싶고 의미가 부여되는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는 100 중에 100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은 매우,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에 옮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당신이 당신의 돈을 얼마나 까다롭게 지출하는 지를 생각해 보면 이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