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형교회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도 대형교회를 다녔다. 아니, 지금 다니는 교회도 일요일에도 예배를 3번 드리니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최소한 작년 상반기까지는 교회를 함께 이끌어 가시는 목사님들께서 사례비를 받지 않으셨고, '담임목사'라는 직책이 없다는 것 정도. 그 외에도 지금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특이한 원칙들이 많다. 어떤 분들은 너무 분위기가 낯설어서 '혹시 이단이 아닌가...' 하실 정도로. 하지만 이단은 성도들을 붙잡아두기 위하여 바둥거리고 세력을 키우려고 노력을 하는 반면 목사님들께서 거의 매 주일 설교마다 나도 믿지 말라시고, 툭하면 언제든지 다른 교회 가도 된다고 하시는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고, 독립교단 소속일 뿐 이단은 아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의 기준은 뭘까? 사람의 수에 따라 분류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만약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의 수는 엄청 많을지라도 그 안에서 정말 깊고 친밀한 교제가 잘 이루어진다면 그 교회도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다. 사실 우리는 출석교인이나 등록교인을 기준으로 소형, 중형, 대형교회를 분류하지만 그건 애초에 해서는 안 되는 분류다. 교회가 무슨 기업인가?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규모를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교회는 그렇게 분류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공동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말 그대로 하나의 몸이 된 존재를 의미하며, 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 된 공동체여야 한다. 그래서 사실 교회는 그 규모가 아니라 '그 교회 구성원들은 하나의 공동체인가?'를 기준으로 그 교회가 교회다운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교회가 커지는 것의 문제
그런데 소위 말하는 '대형교회'가 문제인 것은 교회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교회가 '공동체로써' 유지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예를 들면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우리와 일하는 에이전시는 내가 신입일 때 4명에 불과했는데 몇 년이 되지 않아 30명이 되었고, 그 시점에 그 회사 대표님은 '사업을 시작한 게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데 이 규모가 되니까 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관리가 안 되는 게 너무 힘들다'라고 하시더라. 이는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교인의 숫자가 많아지면 목회자들이 교인을 케어할 수 없게 되고, 그래서 교회는 공동체 안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이게 된다.
물론 교회에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다만, 교회에서의 시스템은 '교인들 간의 교제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목회자들이 교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상담하고, 가르치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큰 공동체 안에서도 작은 공동체들이 매우 친밀하게 형성되어야 하며, 그 안에서 교인들은 서로의 삶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목회자들은 영적으로, 지적으로, 인간적으로 성숙해서 그들의 삶을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 대형교회들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첫 번째로 대형교회에서는 목회자들이 교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그 시스템 자체가 운영 및 유지되는데 쓰는 에너지가 많다는 것이다. 교회가 커지고, 담임목사님이나 더 상위 조직을 담당하는 목회자들이 상황을 일일이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니어 목회자'들은 그들에게 보고를 해야 하고, 교회 시스템이 돌아가는데 필요한 행정사항들이 있다 보니 목회자들은 거기에 투입이 된다. 그래서 목회자가 더 필요해져서 목회자를 더 뽑으면, 그들에게 사례비를 줘야 하니 교인들이 내는 헌금이 더 필요해지고, 그러다 보니 교회가 더 커지는데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이게 교회인가? 기업인가?
두 번째 문제점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 간의 관계가 희석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으니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그저 오가는 사람으로 다녀도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고, 사람들이 서로 잘 알지 못하니 서로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해주기 위해서 셀, 순, 구역 등을 주기적으로 바꾼다. 다 교회가 커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같은 소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바뀌니 그 관계는 매우 얕은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누가 만난 지 며칠에서 몇 주, 길어도 2-3달 정도 된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대형교회에서는 많은 경우 이제 친밀감이 형성되기 시작할 때 즈음에 다시 한번 소그룹이 바뀐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공동체가 형성될까?
세 번째 문제점은 모든 것이 하향평준화된다는 것이다. 교회가 커지면 교인들 간에는 교회를 출석한 기간, 신앙의 수준, 하나님과의 관계 등에 있어서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회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 처음 왔을 때 설교나 관계에서 나오는 말들이 너무 어렵거나 너무 종교적이면 거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모든 것이 하향평준화될 수밖에 없다. 설교의 내용은 물론이고 성도들에게 기대하는 성경적 지식과 신앙, 믿음의 수준 역시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배려'와 '사랑'이라고 포장된다.
예수님은 어떠하셨나?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질문은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이다. 기독교는, 교회는 절대자인 신이 예수님을 롤모델로 이 땅에 보냈으며 우리는 그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믿으면서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과연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에 집착하셨나? 그리고 그 예수님에게 훈련받고 교육받은 제자들, 그 제자들에게 훈련받고 교육받은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나?
예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12명을 제자로 두셨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을 고정적으로 따라다니는 사람이 그 12제자들만 있었던 것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받은 것도 그 12명에 불과할까? 아니다. 이는 누가복음 10장 1절에서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라고 말하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상징적으로 12명을 또다시 구분해서 뽑으셨고, 그 외에도 일정 규모로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그 규모와 숫자에 대해서 따지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본인이 직접 관리하실 수 있는 규모의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시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하시려는 듯한 모습들을 곳곳에서 보이신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유럽 전역에 흩어져서 공동체들을 세우면서 다녔다. 그들은 공동체의 크고 작음에 집착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계속해서 옮겨 다니면서 복음을 확산하면서 다녔다. 그들에게는 '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들을 바르게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을 세우고, 격려하고, 독려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들의 선교여행은 그렇게 해석해야만 이해될 수 있다.
교회는 어때야 하는가?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한국에서는 교회에 대한 논의가 항상 [규모]과 [크기]로만 이뤄지는데, 이 논쟁 구조에서는 답이 나올 수가 없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큰 교회에서도 공동체가 잘 형성되어 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작은 교회라고 해서 공동체가 꼭 잘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의 규모는 교회가 교회됨의 본질적인 측면이 아니다.
그래서 사실은 교회에 대한 연구는 경영학을 기초로 한 '교회의 시스템'이 아니라 인문학, 철학, 신학을 기초로 해서 교회를 어떻게 운영하면 그 구성원들이 더 하나님을 알아가고 상호 간에 신뢰를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는 지금처럼 일부 교단에서 경영학을 도입해서 교회'경영'을 논의하는 것은 교회의 공동체성의 본질을 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경영학적인 측면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측면에서 일부 도입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보조적인 역할에 그쳐야 하고, 어쩌면 경영학보다도 공동체의 원칙을 세운다는 측면에서 법학적인 접근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교회가 시대적인 흐름에 어느 정도 발맞춰가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지, '교회 내부'에서 구성원 간의 관계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논의 및 적용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이는 교회가 기업이 아니라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가정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하고, 가정은 교회 안에서의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우리가 경영학을 '개인 간의 관계'에 적용하지는 않지 않나? 연인 간의 관계에서 효율성과 효과에 대해서 따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보다 더 끔찍한 게 있을까?
분명한 것은 교회들은 '효율과 효과'보다 '깊이'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에서도, 말씀에서도. 어떤 이들은 '그렇게 하면 복음이 전해질 수가 없다'라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아산서원이나 건명원 같은 곳에 왜 젊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몰릴까? 사람들은 현대사회에서 깊이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난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깊은' 고민과 사고를 하는 것은 사회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보다 읽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것은 그것을 보여주지 않나? 그래서 '현대사회가 과거보다 얕아지고 가벼워졌고 즉흥적이 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다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그런 깊이 있는 고민과 사고를 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당시의 사회구조나 기술의 특성상 인쇄술도, 생계를 해결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위대한 스승들이 이름이 알려진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표현만 하지 않을 뿐이지 진리에 대한 갈증이 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진리에 대한 갈증이 있다. 누구나. '나는 왜 사는 거지?'라는 질문은 누구나 한 번씩 해보는 생각이 아닌가?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성경은 제시하고 있다. 다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그 해답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개인들이 그런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양보다 질, 깊이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손해로 보이거나 멍청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은 모두 그 멍청한 길을 걸은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지금 복음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그 '멍청한' 사람들 덕분이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작은 예수들이 모이고 서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공동체여야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하지만 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작은 예수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예수들이 많아지게 되면, 교회를 다니지 않던 사람들도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살지?'라는 의문을 갖고 성경에, 예수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어 있다. 복음은 그렇게 확산되어야 하고, 그걸 확산시키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성경은 보여준다. 그건 하나님의 전쟁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청지기로써 최선을 다하면 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며 '부흥'을 우리의 인위적인 노력으로 이루려는 노력은 성경적이지 않다. 모든 것이 '은혜'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회의 적당한 규모는?
그런데 교회가 위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것 같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 규모가 작은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규모가 작아야 교인들 간의 관계에서 같은 경험들이 공유되고, 상호 간에 신뢰가 쌓일 기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물론 큰 교회에서도 그런 공동체는 형성될 수 있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지금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알게 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계속해서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면 그 관계에서 어떻게 깊이가 형성될 수 있겠나? 하지만 같은 사람들이 계속 있다 보면 그 안에서 관계가 망가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바, 그런 경우에는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다른 모임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고, 대형교회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면에서 분명히 장점이 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교회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교회 일'이 최소화되어야 하는데 이는 교회가 개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개인이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 차원에서 뭔가를 하는 것보다 개인이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그 안에 거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두 번째로 목회자의 업무 중 최소 7할 이상은 자신이 담당하는 공동체의 사람들을 만나고 연락하는데 집중할 수 있게 업무분장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목회자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업무가 많으면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 '사람을 케어하는 일'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목회자들이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목회자는 모든 관계를 성경이 말하는 원리 안에서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말씀 묵상과 연구를 계속하지 않으면 그들이 신학대학원에서 배운 내용도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회의 규모가 작은 교회가 교회가 더 교회답게 되는데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규모가 큰 교회가 갖는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장점이라는 것이 '내가 일을 안 해도 되니까' 라던지 '서로 잘 모르는 게 편해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시점에 대부분 대형교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규모 자체가 아니라 점점 교회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고, 지양되어야 할 장점을 추구하는 경향성을 만들어낸다는데 있다. 기업에서는 개인이 기업을 위해서 존재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사람의 숫자'라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