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지혜를 대신할 수 없다. 지혜를 가진 사람만이 AI를 제대로 쓴다
결국 감정을 분리하고 나면 남는 것은 정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어떻게 읽고, 연결하고, 구조화하느냐가 곧 지혜의 문제다.
감정에서 정보를 분리
AI는 감정에 공감하고 표현할 줄 알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에 처한 나의 감정을 어떻게 해줄 수 없다-이건 사람 누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황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사람은 AI를 통해 객관적 해결방안에 다다르기가 어렵다. 객관적인 정보를 도출하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고스란히 AI에 전달되고 부족한 정보와 과도한 감정은 AI로 하여금 ‘멀찍이’ 서 있는 희망 사항을 데려오게 한다.
즉, 불안한 사람이 AI를 쓰면 불안을 확장시키고, 감정이 통제된 사람이 AI를 쓰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용이하다. 물론, AI는 우리를 위로할 줄 알고 공감해 준다. 그 어떤 사람보다 나을 때도 있다. 그러면서 불안이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기반이 무너지는 아주 응급한 상황에서, 매우 정확하고 정확해야만 하는 정보나 전략을 위한 글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 정확도에 감정이 희망사항으로 등장하는 순간, 정글(실전)에서 나는 곰돌이를 안고 서 있는 소녀가 될지도 모른다.
정보를 구조화:고찰
감정을 분리한 후의 정보를 구조화시키고 이를 통해 결합된 사실을 정리하는 몫은 AI가 아니라 지혜의 몫이다. 명확한 사실 구분이 이루어진 다음 AI를 통한 문제 파악을 진행하면 AI가 내놓은 답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다. 고찰을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문제를 직시하면 AI를 찾는다. 하지만 그때 중요한 건 ‘무엇을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다. AI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정보의 바닷속에서 방향을 정하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철학이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 AI를 다룬다면, AI의 답보다 못한 답을 놓고 갈등하는 아이러니함이 생긴다. 고찰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AI가 내놓은 답변만을 '공유'하는 형식으로 문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인간의 일은 2-3배로 늘어난다. 고찰이 불가능한 사람의 AI상대한 후, 방법을 정해 가야 하는 2-3번의 작업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사실을 구조화할 수 없는 상태에서 AI의 기술에 의존하게 된다면, 가지고 있는 사실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게 된다.
문제 파악을 위한 철학적 사고의 몫은
AI 기술을 사용하기 전에 우리의 지혜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구조화에서 전략으로:무엇을 원하는가
AI를 통해 우리는 전문적인 지식에 도달하기가 무척 쉬워졌다. 이는 전략의 도구이지만, 전략 그 자체가 아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우리 손에 있더라도 우리의 전략은 구조화된 사고로부터 만들어진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자리에서 정보는 패턴으로 보이고, 그 패턴은 전략으로 정렬된다. 결국 구조화란, 감정을 배제한 계산이 아니라, 정보를 정돈하고 불필요한 것을 제거해 문제의 핵심만 남기는 일이다. AI는 이 과정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가속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방향을 잃은 속도는 혼란을 낳고, 속도를 다스리는 사람만이 전략을 세운다.
1) 갖고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하며
2)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고
3) 전문적 지식 안에서 현실 가능성을 파악하고
4)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시간과 효율성을 따져
5) 공격 타이밍을 정한다.
전쟁 속 장군이 되어 실행하눈 것은
본인 스스로가 ‘지혜롭게’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왜 그렇게 생각해?
결국 그 방향의 시발점은 '왜'에서 비롯된다.
왜 그럴까 혹은 왜 그랬을까.
그리고 나는'왜' 그것을 원하는가.
Why?
어렸을 때부터 질문을 잘하는 아이는 '똑똑하다'라고 했고, 그래서 수업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라는 부모님의 조언을 들으며 자라왔다. 그러나 나는 수업 중에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냥 그 수업은 듣고 받아 적기 바빴으며, '왜'라는데 시간을 쓸 수 없이 '바쁜'속도만을 유지한 교육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이 AI시대에 접어들어서야! 고찰을 위한 '왜'를 강조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고 웃프기만 하다. 결국 본능적으로 습득한 삶의 변화된 방식에 의해, 내가 교육하고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에게 나는 '왜'의 관점을 통해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것이 가족, 나의 아이들에서부터 시작되어 정글 속의 사람들, 그리고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이를 해결하는데서 만나는 사람들과 효율적이고 전략적인 대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AI는 계산할 수 있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AI는 예측할 수 있지만, 책임질 수는 없다. 결국 이 시대의 전략은 감정을 통제한 인간이 그 기술을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지혜는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멈출 줄 아는 감각이다. 그 감각을 잃지 않는 한, AI는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위의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렵다고? 그래서 그냥 AI를 쓰겠다고? 그래도 된다. 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대화의 결론이 산으로 가 있을 거라는 걸 미리 알려준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말의 맥락을 이해하지 않으면 AI는 엉뚱한 산에 배를 몰고 간다.
아주 순수하게. 악의 없이.
그리고 그 배를 머리에 이고 그 높은 산을 내려오는 것은
지혜롭게 고찰하지 않은 자의 몫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