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학습한다
물 한 컵이 있어.
그중에 반을 친구가 마셨지.
우린 어떤 반응을 보일까?
1) 물이 반밖에 안 남았잖아!?!!
2) 물이 반이나 남았네??
불행이 연달아 닥치고, 온갖 일이 겹쳐 삶의 기반이 흔들릴 때, 우리는 그 물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사실 ‘반’이라는 양보다 중요한 건 그 물을 보는 우리의 상태다. 감정이 지배할 때는 사실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객관적인 시선’을 우수한 판단이라 여긴다. AI처럼, 데이터를 쌓아가며 판단의 정밀도를 높이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로 학습된 인간이라면, ‘객관’만이 답일까?
그리고 3번!
물이 반이나 남았네?? 내가 마시고 정수기에서 채워둬야지.
이건 단순히 긍정적인 태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상황을 감정이 아닌 ‘의미’로 바라보는 학습된 인간의 선택이다. 물의 양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순환시키고 나누는가 —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진짜 학습의 결과다.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나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나의 사람들’을 통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만 행복해서는 행복할 수 없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라는 존재가 완성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나보다 아래 세대가 ‘보통의 기준’에 머물지 않도록 더 나은 선택지를 보여줘야 한다.
‘보통’의 교육, ‘보통’의 태도로는 결국 ‘보통의 고통’만 반복될 뿐이다. 우리는 3번의 선택을 해야 한다. 더 나은 세대를 위해, 더 나은 나로서 선택하는 것.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때로는 ‘가르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법적 조치, 신고, 고소 — 이런 단어들이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은 타인에게 ‘멈춤’을 알려주는 사회적 툴이다.
아니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스스로 돌아볼 기회를 얻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도 가벼운 접촉 사고라면, 상황에 따라 '아, 네 제가 그냥 보험 처리할게요.' 하는 편에 속하는 부류다. 이를 손해 보고 살았다 생각하기보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어느 누구도 내가 낸 접촉 사고에는 그냥 가시라고 했던 사람 없었다.
그렇다. 자동차 접촉사고처럼,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의도된 침범은 멈추게 해야 한다. 그것이 감정이 아니라 ‘의미’를 학습한 인간의 행동이다.
결국,
Go 하느냐, 멈추느냐는 나의 선택이다.
아직도 고민거리는 있다. Go 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 그리고 그 결정은 결국 AI가 아닌, 나의 선택이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의도를 구분하거나 마음의 맥락을 이해하진 못한다. AI는 조언자이자 도구일 뿐, ‘목적’을 세우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건 인간의 몫이다.
접촉 사고 이야기처럼, 왜 봐주지 않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실수와 의도의 구분. 실수로 나를 침범했다면 객관적 잣대를 통해 보상을 받거나 용서를 하거나. 하지만 알고도 다른 사람을 이용했고, 그 의도를 숨기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낸 것이라면? 사회적 잣대를 적용해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사실이 분명하므로 나 역시, 개인으로서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것에는 자비란 없어도 되겠다.
그러니 우리는 AI를 통해 배우되, AI처럼 판단하지 말자.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학습하는 인간으로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결국 AI는 나를 대신해 판단하지 않는다. 학습의 끝에는 언제나 ‘선택’이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 나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