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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라a Oct 18. 2021

인생은 칠전팔기

네게 처음 새겨주고 싶은 말

 매일같이 사용했던 별다방의 카드 네임이 눈에 띈다.

인생은 칠전팔기

 처음 황금카드를 별아이에게 선물했던 그때. 한 사건 직후인지라 의미 있는 문구를 새겨주고 싶어 엄청 고민했다. 그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른 아침, 엄마를 따라나선 꼬맹이 무르팍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마음이 찡한 것이 안쓰러운 맘에 절룩이는 별아이를 부축하여 벤치에 앉았다.

많이 아프겠다.
엄마도 너무 속상하네.
엄마, 나 이제 부터 안 뛸래요.
넘어지면 너무 아프니까
안 뛸 거예요.

 달리기를 좋아하는 별아이는 잘 넘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보던 엄마도 마음이 덜컥할 만큼 꽈당 넘어진 별아이는 무서웠던가보다.

 지금 다리가 아파서 안 뛰겠다는 말이었다면, 무릎이 아픈 별아이를 엎고 바로 집으로 왔을 테다. 그런데 아픈 무릎을 도닥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앞으로 달리기를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덜컹한다. 힘들고 아프다고 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앞으로는 어쩌지.

딸아, 너 달리기 하는 거 많이 좋아하잖아.
달리기 할 때의 시원함,
바람 소리,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

한번 넘어진 것으로
그 모든 것을 안 하겠다는 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달리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별아이다. 그냥 달리는 것이 좋아 엄마와 조깅 메이트로 아침 운동을 하기도 하고, 일요일 오전 운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 별아이에게 달리기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심하게 넘어져 무릎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별아이는 조물조물 무릎을 만지더니 이내 일어난다.

엄마, 나 달리기 할래요.
무섭긴 한데 그래도 달리기 할래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스키를 좋아했던 엄마는 몇 명의 강사 선생님을 거쳤었고, 공통된 배움 중의 하나는 이것이었다.

 잘 넘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무서워하는 아이들 그리고 잘 타는 것에 오만해진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가르쳤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지
잘 넘어지는 것이 더 중요해.

 아픔을 딛고 달리는 별아이의 발걸음이 의미심장하다. 넘어진 이유가 움직이는 블록에 발을 힘없이 딛었다가 넘어진 것으로 함께 확인해서인지 땅을 보며 달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렇게 러프 ruff 한 땅을 달리는데 한층 성장한다.


딸아,
달리기를 하다가 누구나 넘어질 수 있어.
그런데 네가 연습하고 주의해야 할 것은
그냥 넘어지는 게 아니라
잘 넘어지는 것이란다.

 스키장에서도 울퉁불퉁한 땅에서 달리다 잘 넘어지는 것은 단순하다. 옆으로 넘어지는 것과 손목과 얼굴을 주의하는 것. 물론 달리기를 할 때도 시나리오대로 넘어지지만은 않겠지만 단순한 이 법칙이 주는 든든함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스스로 방법을 숙지하고 상황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야 말로 이 사실이 주는 참된 가치이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달리는 발걸음이 가볍다. 마스크를 쓰고 뛰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지만 그래도 뛰는 모습에 생기가 넘친다.

 그날의 대화가 없었대도 아무렇지 않게 뛸 수도 있었겠지만 그날의 대화로 너의 달리기에 힘이 생겼다고 믿는다. 이런저런 삶이 주는 시련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 힘이 그날의 아침을 시작으로 생긴 것 같아 생생하다.

 실물 카드야 손에 쥐고 은행 놀이하다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렁그렁한 네 얼굴과 칠전팔기가 새겨진 황금카드가 엄마의 맘 속 깊숙이 빛나고 있다. 오늘도 반짝이는 그날의 너와 오늘의 너에게 입을 맞춘다. 그날의 네 마음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황금의 꿈을 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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