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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라a Oct 18. 2021

안된다는 말을 빼면

세상은 넓어진다

  휴가닷!!!

엄마, 휴가가 뭐예요?

휴가란 안 되는 게 없는 날이야.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안 하고 싶은 거
네 맘대로 해도 돼!!

 사실 특별한 휴가는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돌도 안된 두찌를 데리고 사람 북적이는 국내 여행지도 싫었다. 그냥 #홈캉스 빈둥거리며 쉬고 깊은 게 간절했던 엄빠. 매일이 반복되는 일상에 다름만 주고 경계 없이 늘어지고 싶었던 거다.

 

어디 갈까? 고민하다 왕할머니의 휴가에 맞춰 모셔다 드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미희 이모집으로 출발. 원래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짐 한 트럭 싣고 출발했다. 그런데 이 여정이 무려 10박 11일로 끝이 날 줄은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사랑이 많은 우리 미희 이모는 항상 아껴주고 보살펴주는 엄마의 이모인데 아직 이모할머니로 불리기엔 너무 젊은 이모다. 우리 아가들 태어날 때도 이모는 사랑으로 돌봐줬고 지금 그 사랑은 이모를 건너 삼촌과 실제 이모를 통해 아이들에게도 전해진다. 항상 고맙고 감사한 가족이다.

 휴가기간이지만 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비를 좋아하는 우리는 이 빗소리를 좋아라 휴가의 느슨함을 만끽했다. 집 나서면 고생이라는 여행의 아이러니함은 내 집같이 포근한 이모집에서 고생보단 편안함을 주었고 아이들도 편안했다. 이게 휴가인 것이지.

 시시때때로 변하는 하늘과 때리는 빗소리에 두찌는 밖을 구경하기 여념이 없고 맛있게 먹고 언니 수업을 마치는 동안 신나게 놀다 낮잠도 자며 즐긴다.

 

 별아이는 멋진 선생님 덕에 하루 만에 아이스링크에서 스스로 스케이트를 탔고 멋진 턴 연습도 했다. 휴가기간 동안 매일 레슨을 받으면 좋았을 것을 두 번 엉덩이 찧은 게 아팠던지 다시 타자고는 안 한다. 엄청 잘 타던데, 아쉽다. 그래도 휴가인만큼 엄마의 욕심은 접어 본다.

이거 해도 돼요? 묻는 건 없어도 된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말하고 해 보고 싫으면 안 해도 된다. 그랬더니 별아이는 너무 신나게 시간을 보낸다. 그 어느 때보다 깊게 보고 넓게 말하고 즐거워한다.

 여름방학의 과제처럼 박물관을 가지 않아도 전시관을 가지 못해도 조바심 내지 않는다. 우리는 이 안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이를 통해 또 배운다. 그렇게 아이의 세상은 또 다른 넓이를 갖게 된다.

 

 밥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엄마는 잔소리하지 않는다. 늦게 오는 이모를 기다렸다 새벽 한 시가 지나고서야 엄마 곁에 와서 자는 별아이. 새벽 한 시는 너무했지만 스스로 인사하고 와서 자는 게 신기하다.

 별아이의 휴가를 위해 아빠는 별아이에게 근처 쇼핑몰에 있는 모든 뽑기는 다 해 준 듯하다. 요즘 뽑기가 다시 인기인지 나갈 때마다 주렁주렁 뽑아오는데 이마저도 걱정스러운 신음뿐, 말리지 않는다. 휴가니까.

 사랑니를 발치하고 약을 먹으면서 의도치 않게 단유를 하게 된 엄마도 사랑니가 잘 아물기 시작하면서 조심스러운 와인 한잔을 여유롭게 만끽했다. 이게 휴가지.​

 안된다는 말보다는 하고 싶은 대로 사소한 것들을 원해보고 즐겨보고 늑장도 부려봤다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욕심도 내봤다가. 그런 느낌들을 가지면서 우리는 다가오는 일상을 어렴풋이 느껴본다. 매일 일상이 지겹거나 시시해서가 아니라 다름을 통해 느껴보는 소중함처럼, 그래서 의도와는 다르게 몸은 피곤해도-요번 휴가는 몸마저 편했다- 휴가가 주는 일상에의 에너지를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소중한 시간을 무려 일주일이나 보냈다. 매일이 특별하지 못해 주말은 항상 특별해야 하고 휴가는 더 특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혹은 조바심에서 벗어나 우리가 보낸 홈캉스의 효과는 특별하다. 두찌도 이를 반증하듯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몇 가지 개인기를 개발하여 성장의 속도를 보여줬다.

 처음엔 살짝 닿지 않았던 식탁에 머리가 닿아 빠져나오지 못해서 울고, 만세만 할 줄 알았던 팔 개인기는 빠빠이를 하기 시작했으며 자동차를 타며 핸들링하는 솜씨는 엄빠도 놀라웠다. 일주일, 우리에겐 참 고마운 시간이다.

 비록 막날에 핸드폰 게임으로 엄빠에게 혼난 사건을 제외하곤 가족 모두 자유인으로서 열흘간의 휴가가 끝이 났다. 먼 산을 보고 바다를 보지 못해 아쉬운 것보다 우렁차게 때리는 빗줄기 안에서 편안하고 소소하게 에너지를 채우고 휴가의 느슨함을 끝맺었다. 달콤한 사탕 같은 일주일이었다.

 비로, 코로나로 여기저기가 힘든 가운데 가만히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휴가 다움을 외치기보다 느슨한 휴가를 지내며 또 웃고 감사하고 행복한 우리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특별하진 않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특별히 보낼 수 있으며 화려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안의 가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안녕,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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