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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 의사는 구멍가게 주인의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모두 힘냅시다.

by 키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회진을 돌던 교수님이 계셨다. 종양내과 교수님이었던 은사님께서는 본인도 위암에 걸리셔서 10년 전에 위 전절제를 하셨다. 위를 다 잘라낸 교수님은 갈비뼈만 앙상하셨고, 광대뼈가 도드라져 인상이 참 매서우셨다.


내과는 2 달마다 교수님을 바꿔가며 로테이션을 도는데, 새로운 레지던트가 올 때마다 교수님의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가령 일부러 틀린 환자 히스토리를 말해줘서 레지던트가 알아채지 못하면 크게 화낸다던가, 몰래 레지던트의 오더(환자에 대한 처방)를 열어보고는 간호사들 앞에서 무안을 준다던가 하는 식이다. 이 시험에서 교수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2달 내내 교수님은 레지던트가 하는 말은 믿어주지 않으셨다. 심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레지던트와는 회진 도는 것조차 거부하셨다.



종양내과는 내과 중에서도 우울하기로 손꼽히는 과이다. 암환자 분들은 하나같이 맘이 고우시다. 저렇게 참기만 하셔서 암에 걸리셨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레지던트가 힘들어하는 거 같으면, 아들, 딸 같은 레지던트들에게 간식거리, 음료수 챙겨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그렇게 정 많은 환자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과 이기 때문에 가장 힘들고 또 우울하다.


레지던트 3년 차 정도가 되면, 병원의 모든 것을 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만해지기 일수이다. 그래서 레지던트가 조금만 게을러 보이면 교수님은 불같이 화를 내신다.


"박 선생, 선생이 내는 오더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인 줄 아나?, 폴리 (소변줄)이 얼마나 불편한지, 금식하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본인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냐고? 왜 이렇게 금식 오더는 쓰잘 때 없이 많이 내는 건가? 오늘 박 선생 밥 먹지 마."


이런 식이다.

아무튼 무수히 많은 괴롭힘(?)과 잔소리가 있었지만 교수님을 잊지 못하는 건 큰 깨달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저녁 6시 회진을 도시고 나서였다. 교수님은 유난히 지쳐 보였다.



"박 선생, 내과 의사는 부지런해야 해. 우리는 정형외과처럼 수술해서 먹고사는 과가 아니야. 박 선생도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만, 내과야 말로 잡스러운 과지. 많은 질병을 아우르는 만큼,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그렇다고 태도 안 나고. 환자는 매일 나빠지기만 하고, 욕 안 먹으면 다행이지. 다른 과처럼 나 때문에 당신이 나았다고 생색내지도 못해. 본인을 구멍가게의 주인 정도로 생각하시게. 내과 의사가 편하면, 그건 이상한 거야"



어떤 교수님은 본인의 레지던트들에게 너희는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가 돼야 되기 때문에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고 진료해야 한다고 말씀도 하신다는데, 나의 은사님은 오히려 구멍가게 주인 정도로 본인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레지던트 4년 중에서 가장 마음속에 와 닿는 말이었다. 의사는 참 교만해지기 쉬운 직업이다. 그만큼 유혹도 많고, 본인을 대단한 누군가로 착각하기 쉽다.




지금도 대구에서는 밤잠 못 자고 동료 의료인들이 희생하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의료인들을 띄우기 여념 없고, 어떤 사람들은 의료인을 정치 선전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욕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거기서 고생하는 모든 이들이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본인이 숭고해서, 이타적이어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할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묵묵히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SBS에서 화상통화로 진행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간호사 휴게실에 불쑥 들어갔는데, 거기서 간호사 한분이 뜬금없이 한마디 하셨다.



"인터뷰도 좋은데, 저희 비접촉식 체온계 100개가 부족합니다."


그 분과 같은 의료인이라는 게 참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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