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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알탕을 먹어보셨나요?

병원 인턴기

by 키튼
인턴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맡은 과는 성형외과였다.



성형외과는 정형외과와 더불어 힘들기로 유명한 과이다. 다들 성형외과 하면 우아하고, 예쁜 여자들로 넘쳐날 거라 생각하지만, 대학병원의 성형외과는 오히려 중환들로 넘쳐난다. 강남 한복판에서 미용수술을 주로 하는 성형외과도 있지만, 대학병원 성형외과는 당뇨로 인해 다리를 자르고 피부이식을 한다거나, 오랜 병상 생활 때문에 엉덩이 근육이 썩어서 피부이식을 한다거나 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성형외과 병동은 독한 소독약과 썩어가는 몸뚱이에서 나오는 고름 냄새로 가득하다.



성형외과 일과는 새벽 6시부터 시작한다.


7시 반에 교수님께서 오셔서 회진을 돌 때까지 전 환자의 드레싱이 끝마쳐져 있어야 한다. 매일매일 힘겨운 타임어택을 1년 차와 인턴 둘이 감당해야 한다. 그나마 인턴은 새벽에 3-4시간 정도 잘 수라도 있지, 1년 차 선생님은 응급실까지 커버해야 하니, 새벽에 얼굴에 상처 난 환자라도 오면 그날 잠은 다 잔 거다.



안 그래도 어리바리한 생초보 의사인데, 처음으로 맡은 과가 성형외과라니. 정말 멘털 붕괴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먹이 사슬의 최하층에 있는 인턴은 1년 차 선생님의 수행 비서나 다름없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사적인 심부름부터 시작해서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입에 담을 수 도 없는 욕도 들었다. 지금이야 이런 일들도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는 심하게 우울했던 거 같다. 이러려고 내가 의사가 되었나, 자존감은 한없이 추락했었다.




그러던 차에 아무 예고 없이 어머니, 아버지가 병원에 오셨다. 전화도 잘 안 받고 안부전화도 건성으로 하는 아들이 걱정되셨나 보다. 당시 엄마는 서울대 병원에 유방암으로 정기 검진을 하고 계셨는데, 천안에 있는 아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불쑥 들르신 것이다. 당시 시간이 저녁 6시 정도 되어서 어머니, 아버지는 당연히 저녁 정도는 먹을 수 있겠거니 하셨다. 다행히 대충 일이 마무리되는 상황이라, 응급콜이 없다면 같이 식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병원 근처에는 맛있는 알탕 집이 있었다. 밥도 무한리필 일 뿐더러, 달고 짭조름한 김자반에 국물을 밥과 함께 비벼먹으면 정말 꿀맛이었다. 첫 월급을 받으면 맛있는 거, 좋은 선물 해준다고 호언장담 하던 나인데, 겨우 알탕이라니. 조금 속상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던 어머니랑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알탕이 도착하고 밥 숟가락을 뜨려던 찰나, 전화가 왔다. 응급 수술이었다. 1년 차 선생님이 인턴 선생님을 찾는다는 전화였다.


순간,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다 큰 사내 녀석이 운다면서 호통을 치셨고, 어머니는 얼른 가보라며, 얼굴 봤으면 됐다고, 바쁜데 괜히 온 것 같다며 하셨다. 수술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어머니, 아버지께 기다리시라고 말도 못 했다. 아들 본다고 먼 걸음 하셨는데 밥 한 끼 대접 못하는 게 너무 속상했다. 아버지, 어머니도 아들이 의사면허를 받고 가운 입고 다니는 멋진 모습을 보러 오셨을 텐데, 알탕 앞에서 눈물, 콧물 흘리는 아들이 속상하긴 마찬가지 셨을 것이다.




얼마 전에 어머니 환갑이셨다. 아직은 군의관이어서 여전히 어머니께 큰 선물은 못 해 드린다. 도대체 언제 제대로 된 효도를 할 수 있을지, 아니 효도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사실 어머니, 아버지는 호강은 바라지도 않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눈물의 알탕은 내겐 너무 아픈 기억이다. 어렸을 적에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어머니, 아버지께 맘껏 효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효도는 커녕 여전히 내 앞가림하기 바쁘다. 언제 가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한정식도 대접해드리고,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C'사의 명품 핸드백도 선물로 드리는 아들이 되고 싶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님 앞에서 울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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