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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누구랑 결혼해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를 기다리며

by 키튼

가장 많은 질문 중에 하나가 의사들은 어떤 사람이랑 연애하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이라는 드라마 때문인지 교수님과 레지던트의 로맨스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사실 남자 교수님과 여자 레지던트의 실제 연애는 딱 한번 본 적이 있다. (아쉽게도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 나오는 여교수님과 레지던트의 로맨스는 한 번도 본 적 없다. 내 경험을 비추어 보면 (나를 포함) 많은 수가 동료 의사를 배우자로 만나는 거 같다. 공식적인 통계는 아니지만, 남자 의사는 30% 정도가 여의사를 만나고, 여자 의사는 80% 정도 남자 의사를 배우자로 만나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의사들을 굉장히 스위트하고 다정한 사람들로 묘사하였지만, 내가 알기로는 의사들은 사랑에 서툰 사람들이 태반이다. 생각해보자.


사랑이란,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고 맞춰가는 지난한 협상의 과정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항상 본인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의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공부도 잘해야 하고 부모님의 뒷바라지는 이젠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대학에 와서 혼자 자취하기 전에는 집안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설거지라도 하려고 치면, 이럴 시간에 들어가서 공부나 하라는 이야기를 듣기 일쑤였다. 내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 모두 대부분 이런 실정이다.




의사들은 어떤 사람과 결혼하느냐고 묻는 질문의 이면에는,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여자를 만나느냐? 병원에서는 그렇게 콧대가 높아 보이는데 얼마나 잘난 여자를 만나는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이 깔려있는 듯하다. 사실 이런 류의 질문은 대단히 불편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냥 상대방이 듣기를 원할 거 같은 대답을 두리뭉실하게 하는 편이다. 내 주변 친구들 중에는 자신이 몇 명의 이성과 교제해 봤고 어느 정도 스펙이라는 사실을 은근히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부러울 때도 있다. 가끔 그들이 보여주는 전 여자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니까. 솔직히 말하면 남자 의사들이 결혼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선호되는 직업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당직날 옆에 있던 남자간호사 선생님과 실험(?)을 했다. <아만다>라는 연애 어플이 있는데, 이 어플은 가입하려고 하면 자신의 나이, 직업, 사진을 업로드 한 다음 일정 이상의 점수가 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남자 간호사 선생님은 1차 시도에 떨어졌으나, 다른 요소를 그대로 놓아둔 채 직업을 의사라고만 바꾸어서 다시 지원하자 높은 성적으로 합격(?)을 하였다.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뭔가 씁쓸하기도 하고 민망했다.



관점을 좀 달리해서 의사들의 결혼생활 자체를 들여다보면, 불행한 결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예전에야 여성분들이 가부장적 질서를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요새는 그런 가부장적 질서를 강요하면 큰일 난다. 의사들의 월급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높은 건 사실이지만, 사실 서울의 높은 집세와 교육비, 물가를 생각하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도권으로 올라갈수록 의사의 월급은 낮아진다) 의사들도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사 분담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시부모님의 갑질 등등의 여러 가지 문제는 의사의 결혼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자식들의 높은 교육비 또한 한 가지 요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선생님들이 기러기 아빠 혹은 주말부부를 하고 있다.


결론은 ‘슬의생’ 속 스위트 한 의사 선생님은 현실에서는 매우 보기 드물다는 것. 드라마는 드라마뿐이라는 것.

이렇게 말하고도 왠지 모르게 씁쓸해서 옆에 있는 와이프에게 물어봤다.




“솔직히 저기 나오는 사람들 중에 현실에서 한 명이라도 본 적 있어? 근데 왜 이렇게 열심히 보는 거야?”


“잘생겼잖아”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 살자 달려드는 못난이가 된 거 같은 기분이다.

사실 나도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즌 2>를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의 팬이니 너무 뭐라고 하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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