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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부부의 세계

아내를 질투하는 남편

by 키튼

와이프는 영상의학과 의사이다. 현재 나는 소화기내과 임상강사로써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의사들에게서 서로의 연봉을 묻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이다. 오래 일을 같이 하면서도 서로 인센티브는 얼마나 받는지, 정확한 연봉이 얼마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알 필요도 없다.

의사들은 각자의 전문성이 있고,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의 연봉에 대해 너무 잘 안다. 그게 문제이다.


그날따라 환자분의 대장에는 혹이 많아서 시술시간이 무한정 길어지고 있었다. 내 뒤에서 지켜보시던 지도 교수님 또한 점점 예민해지셨다. 대장용종을 떼는 것은 흔한 시술 중 하나이지만, 항상 대장에 구멍이 뚫리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대장벽은 매우 얇고, 용종을 떼어 내는 순간 전기 자극이 가해지기 때문에 간단해 보이지만 위험한 시술이다. 그리고 용종의 개수가 올라갈수록 천공의 확률은 높아지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의 시술이 못마땅하셨는지 결국 지도 교수님은 5번째 용종부터는 나에게서 내시경을 빼앗아가시고 본인이 끝까지 시술하셨다. 예민한 상황에서도 지도 교수님은 이것저것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자존심은 많이 상했지만 성장통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터져가는 멘털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는 나에게 자신의 연봉이 인상이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기뻤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많은 병원들이 재정난에 허덕였다. 와이프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와이프를 붙잡기 위해 연봉을 인상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와이프는 자신의 병원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질투가 났다.


이미 와이프의 연봉은 나를 한참 앞지른 지 오래이다. 그리고 영상의학과의 특성상 임상강사가 필수적인 과정도 아니고, 군대도 가지 않기 때문에 와이프는 일찍이 종합병원에서 수많은 케이스들을 접하며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나는 대학병원 임상강사로 이렇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와이프는 승승장구하는 거 같아 묘한 열등감을 느꼈다. 그리고 질투하는 나 자신을 보며 다시 한번 더 초라함을 느꼈다.




그렇게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던 찰나 <주간 채권>이라는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두 남자 변호사 선생님들이 그냥 밥을 먹으면 주고받는 대화를 찍어놓은 영상이 었는데, 같은 전문직이라서 그런지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았다.

“콤플렉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스페셜리스트 vs 제너럴리스트”

같은 주제들이 그랬다.

거기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자기만의 결핍 하나씩은 가지고 있고,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는 것은 세상이 자신의 못난 부분만 바라볼 거라는 나르시시즘에 기반한다.”

“질투하는 내가 초라하고 자괴감이 드는 것은 그것도 일종의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하나이다. 사실 인간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고, 질투하는 나도 나 자신이고, 못난 나 자신도 자신의 일부라고 인정해야 한다”

콤플렉스라고는 하나도 없을 거 같은 완벽한 스펙의 두 남자들이 무심코 흘리는 이야기들은 어떤 삶의 내공마저 느껴지게 했다.




사실 나의 와이프에 대한 질투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나와 와이프는 캠퍼스 커플이다. 본과 1학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1년 전부터 서로 교제해서 올해 결혼생활 5년째이다.

와이프는 나보다 공부를 안 하는 거 같은데도, 항상 나보다 성적이 좋았다. 심지어 사회성도 나보다 좋아서 인턴 점수도 나보다 좋다

내 기억에는 성적이 잘 나왔을 때에도 인턴 점수가 잘 나왔을 때도, 그렇게 맘껏 기뻐하지 않았던 거 같다. 아마도 못난 오빠의 눈치를 봐서 그랬지 않았을까?





중요한 사실은 이런 질투 많고 못난 남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다는 것이다.


윤종신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 중에 나오는 가사처럼

“나도 싫어하는 내 모습을 사랑해주는” 나의 아내




내 나이 올해 서른다섯.

아직도 애기 같고 성장통을 겪는 중이다.

어른은 될 수 있을는지 점점 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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