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처음 서울을 동경하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거 같다.
당시 나는 전라도 광주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큰맘 먹고 캐리비언베이 (캐리비언베이는 사실 서울이 아니라 용인에 있다)라는 곳에 물놀이를 가자고 제안하셨다. 아버지로부터 그곳이 큰 풀장이 있고 실내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다는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캐리비언베이로 향하는 길은 길고 힘들었다. 우리는 종일권을 누리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다. 그 먼 길을 차로 이동하셨을 아버지의 노고를 생각하면 숙연해질 지경이다.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도착은 그곳은 가히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한국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말 그대로 외국에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때 먹었던 추로스며, 유수풀에 둥둥 떠다니면 느꼈던 자유로웠던 기분까지. 서른 후반인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서울은 나에게 무언가 항상 새롭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로 가득한 곳이었던 거 같다.
서울은 캐리비언베이로 대표되는 테마파크 같은 미지의 도시였다.
나에게 수능은 그런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자격시험 같은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살면 소개팅도 해보고, 밤늦게 심야영화도 보고, 한강에서 자전거도 타봐야지.” 서울 사람들이 들으면 귀엽다며 박장대소를 하겠지만, 18살 고3에게는 새벽까지 공부해야 할 이유로 충분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서울에 살지는 못했다. 대신에 지방에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광주보다 더 작은 시골에서 대학시절을 보내게 된다. 다행히 학교는 서울에서 가깝다고 말하면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주말에는 친구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서울나들이를 했다. 그때 항상 관문 같았던 센트럴 시티이며,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여기저기 누빌 때면 꼭 어딘가로 탐험을 하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는 지금 서울에 살고 있다. (물론 내 집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오랫 세월 동경했던 그곳에 발을 붙이고 산다는 것은 참 특별한 경험이다. 일부러 계획한 건 아니지만, 사는 곳이 내가 어렸을 때 동경했던 대학교 근처에 있어, 대학생 흉내도 내보기 했다. 대학가 근처에 밥을 먹다가 아내에게 갑자기 “요새 일반 심리학 수업 너무 어렵지 않아? 수강신청은 했어?” 물어본다든지.
대학가 근처 학생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보고 비슷한 옷을 사본다는 든 지 하는 거 말이다.
재밌었다.
참 재밌는 2년이었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다. 이 사랑스러운 도시에 대해.
첫사랑 같은 도시에서의 삶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와이프와 긴 여행을 계획했다.
한 달씩 세계의 도시들을 한 달씩 살아보는 여행이다. 사실 내 지인들은 부러움보다는 우리의 무모함과 고집스러움에 더 놀라는 눈치였다. 이 여행은 코로나 전에 이미 계획했다가 좌절된 역사가 있다. 다들 조용히 접은 줄 알았던 여행을 이다지도 고집스럽게 실행에 옮기다니 놀란 눈치였다.
곧 있으면 떠날 날이다. 떠날 때가 되니 이 도시가 더 애틋하다. 최근에는 지하철이나 차도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눈에 더 담고 싶다. 예쁜 서울을.
지난 2년이 나에게는 조금 긴 서울여행이었던 거 같다.
안녕,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