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T 시험 도전기
OET 시험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을까요?
저에게 OET 시험은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세 번이나 떨어졌어요. 세 번째 시험에서는 리스닝에서 10점 차이로 아깝게 불합격했지만, 시험에서 낙방할 때마다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려 우울증약을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4번 도전 끝에 합격했을 때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Step 1, 2 시험은 영어 시험이라기보다는 임상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인데, OET야말로 정말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그런 OET 시험에 번번이 쩔쩔매는 제 자신을 보며 과연 제가 미국에 갈 수는 있을지,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
첫 번째 시험은 한국에서 봤습니다. 당시 저는 병원 일을 잠시 그만두고 여행 중이었어요. 중간에 친동생의 결혼식이 있어 한국에 잠깐 들렀을 때 OET 시험을 예약해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보기 전까지는 제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OET는 통과 여부만 평가하는 시험이고 몇 번이고 계속 볼 수 있는 시험이었기 때문에 부담이 덜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여행 중간중간 필리핀의 Aires 선생님과 Zoom 수업으로 공부했고, 라이팅도 첨삭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USMLE Korea에서 소개받았습니다. Aires 선생님은 정말 따뜻하고 친절하신 분이었어요. 제가 만난 OET 선생님들 중 가장 실력도 뛰어났고, 한국인에게 특화된 선생님이었습니다. 심지어 카카오톡으로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 고객들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처음에는 수업 중 버벅거리고, 1시간 수업이 끝나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질 정도로 긴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하며 실력이 나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Aires 선생님 덕분에 네 번의 시험 도전 중 스피킹이 문제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라이팅도 Aires 선생님이 봐주시긴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어요. 더 좋은 문장을 만드는 데는 ChatGPT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먼저 제가 해당 주제로 글을 쭉 써보고, ChatGPT에게 “되도록 제 문장을 수정하지 말고 다시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제가 이미 알고 있는 문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외워야 할 문장의 수가 줄고 암기도 쉬웠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 가장 큰 실수는 리스닝과 리딩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었습니다. 제가 시험을 볼 당시 OET 시험이 USMLE에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련 후기가 많지 않았습니다. 스피킹과 라이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후기들은 많이 보였지만, 리딩과 리스닝은 OET의 모의고사 정도만 풀고 시험장에 들어가도 된다는 식의 리뷰가 많았습니다. 저도 비슷하게 공부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거죠.
결과적으로 저는 첫 번째 시험에서 리딩에서 낙방했습니다.
두 번째 도전
처음 불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리딩에서 불합격이라고? 말도 안 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죠. 저는 영어 공부를 위해 원서를 사서 Audible(오디오 북 어플)로 듣기도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읽기 훈련을 했다고 자부했거든요. 영어 읽기가 최고는 아니어도 불합격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말인 한국어를 쓰는 우리도 수능 언어영역은 어려워하잖아요? OET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했던 거였는데, 저는 그걸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시험 불합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미국 옵저버십 하는 중에 한 번 더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아마 지난번엔 운이 나빠서 특별히 어려운 지문을 받은 거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모의고사 한 번 더 풀어보는 정도로만 준비했죠.
그런데 결과는... 또다시 리딩 불합격이었습니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했습니다. 제 영어 읽기 실력에 진짜 문제가 있다는 것을요.
세 번째 도전
돌이켜보면, 영어 읽기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레지던트 시절, 교수님이 주신 논문들이 항상 저에게는 큰 부담이었거든요. 그때는 '단어도 어렵고 통계도 복잡해서 그렇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정한 '읽기'가 아닌, 그저 눈으로 훑어보기만 했던 것 같네요.
여기서 잠깐, 텍스트를 읽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독, 속독, 통독입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문해력 문제는 비단 10대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저도 활자보다는 영상에 익숙하고, 쇼츠에 중독된 전형적인 현대인이라, 제 읽기 습관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책을 '통독'합니다. 자투리 시간에 책을 꺼내 보시는 분들은 아실 텐데요, 이때의 집중도와 책상 앞에 앉아 밑줄을 그어가며 읽을 때의 집중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글쓴이와 진정한 대화를 나누며 읽는 '정독'과는 차원이 다른 거죠.
결국 제가 리딩에서 계속 떨어졌던 이유는 단순히 단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집중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정독하지 않아서 였습니다.
사실 페이퍼 테스트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컴퓨터 테스트보다 번거롭고, 시험 규정도 까다롭죠. 지우개가 번지면 감점될까 걱정되고... 저도 3번째 시험까지는 컴퓨터 시험을 고집했습니다. 그러다 한국 의료계의 큰 사건으로 인해 2024년 현재 한국의 OET 컴퓨터 시험장이 완전히 풀북킹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페이퍼 테스트를 선택했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8월 중순, 다음 페이퍼 테스트가 9월 말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 좌절했습니다. 1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게 고문처럼 느껴졌죠. 일본에서는 2주 뒤에도 시험을 볼 수 있었지만, 저는 이왕 이렇게 된 거 OET와 사생결단을 내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제게 큰 깨달음을 주게 됩니다. 바로 종이로 읽는 텍스트와 컴퓨터 화면으로 읽는 텍스트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 화면으로 글을 읽을 때는 우리의 뇌가 자연스럽게 스크롤을 예상하고, 빠르게 훑어 읽는 습관이 생깁니다. 반면 종이로 된 텍스트를 읽을 때는 글자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게 되고, 손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을 수 있어 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차이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페이퍼 테스트를 준비하면서 진짜 '읽기'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제 읽기 방식의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자연스럽게 길들여진 습관들이,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걸림돌이 되었던 거죠.
이런 깨달음은 단순히 시험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의사로서 논문을 읽고, 전문적인 의학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에도 이러한 '정독'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도전에서 리스닝은 10점 차이로 아깝게 떨어졌지만, 가장 큰 성과는 리딩 점수였습니다. 이전에 300점대였던 리딩 점수가 390점으로 무려 90점 가까이 상승했거든요. 이 결과를 통해 제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고, 이것만으로도 세 번째 도전은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네 번째 도전
결국 네 번째 시험에서 OET를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각 영역별로 제가 경험한 것들과 효과적이었던 공부법을 자세히 공유해드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