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편
외국에서 지내는 것의 메리트 중의 하나는 자기가 단순히 한사람의 무능력한 외국인, 이방인에 불과하다고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약자로서 무능력한 사람으로서, 그런식으로 허식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상황을 가져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귀중한 경험이 아닐까하는 느낌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나 하우스 속 의사들을 보면 정말 멋있지 않나요? 레지던트임에도 자신 있게 교수님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그 모습이 과연 현실인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플로리다의 탬파(Tampa)라는 도시에 위치한 University of South Florida 산하 Tampa General Hospital(TGH)에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원래는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에 가려던 계획이었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일정이 미뤄졌고, CK 시험과 펠로우십까지 마친 후에야 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옵저버쉽을 더 일찍 다녀왔더라면,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면서 겪게 될 고생(?)에 대해 미리 성찰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병원뿐만 아니라 미국 생활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가 되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옵저버쉽을 다녀온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쩌면 USMLE를 합격하고 미국 병원에 취업하는 것이 앞으로의 미국 생활에서 가장 쉬운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옵저버쉽을 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꼈던 장벽은 바로 언어 장벽이었습니다. 저는 레지던트 4년 차 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전화영어를 꾸준히 했습니다. 횟수로는 약 7년간 지속한 셈입니다.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화영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어민과 과외도 받아보고, 학원도 다녀보고, 인터넷 강의도 들어봤지만, 영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짧은 시간을 쪼개어 진행할 수 있는 전화영어는 제게 최적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전화영어에서 저를 상대해 주는 외국인은 대부분 한국인에게 익숙한 필리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의 영어 실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이분들은 한국말로 20분을 이야기해도 공감과 맞장구를 잘 쳐줄 만큼 상냥하고 친절했습니다. 발음도 또박또박하고 대화 주제도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K-pop, K-food, K-drama와 같은 내용들이었죠.
하지만 실제 미국에서 사용되는 영어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캐주얼한 대화에서는 구동사를 많이 쓰고, IELTS나 영어 시험에 나오는 단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대화 속도는 굉장히 빠르고, 주제도 스포츠나 로컬 맛집처럼 저에게 생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탬파는 남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스하키 팀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백인 남자들이 아이스하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정말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의학적인 대화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내용을 대충 눈치로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많은 부분이 잘 들리지 않았고, 이로 인해 겁이 나고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내가 진짜 레지던트가 된다면 교수님들의 수많은 오더를 빠뜨리면 어떡하지? 환자들에게 설명을 제대로 못하면 어떡하지? 환자들이 말하는 증상을 알아듣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몇 시간 동안 별다른 할 일 없이 앉아만 있어도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한 마디라도 더 알아듣고 싶어서 몰래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녹음해 다시 들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던 중,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 선생님들의 유튜브가 정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돌돌콩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자주 시청했는데, 스탠퍼드에서 통계학 박사를 하신 분이 영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돌콩님께서 유학 준비 시절 은사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하셨는데요. “미국에 가면 가장 먼저 엄청난 좌절감을 느낄 거야. 말이 안 되니까 스스로 정말 바보처럼 느껴지고, 나중에는 네가 하는 생각마저 바보처럼 느껴질 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 너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네 생각은 바보 같지 않아.”
이 이야기를 들으며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 눈물의 정체는 아마도 깊은 좌절감이었을 겁니다. 저는 이 옵저버쉽에 대해 상당히 큰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싼 비용도 아니었고, 그들과 어떤 대화를 나눌지 거울 앞에서 연습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그들은 저를 단지 이민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제가 제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관심 있는 이들에게조차 제 영어 실력은 저를 제대로 소개하기에도 버거운 수준이었습니다.
혹시 제가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닐까요?
사실, 저처럼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를 품지 않는다면, 옵저버쉽은 또 다른 사교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같은 처지의 옵저버들끼리 금세 친해질 수 있으니까요. 미국 병원에서 레지던트나 교수들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같은 옵저버들끼리 타국에서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경험 또한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미국이나 한국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나라가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은 이렇게 넓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