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미국병원 체험기-2

희망편

by 키튼

옵저버쉽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네요. 하지만 저는 옵저버쉽을 갈지 말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꼭 한번 도전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멋진 인연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자신의 적극적인 태도가 동일한 경험에서도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Dr. Siad (닥터 사이아드)


사이아드 선생님은 TGH에서 간이식과 간 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소화기 내과 스페셜리스트입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저는 내시경실 한쪽에 서 있었습니다. 마치 꼬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아무 생각 없이 서 있었는데, 사이아드 선생님께서 저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황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옵저버로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병원에 참관하는 입장이었지만, 내시경실에서 스태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저 역시 내시경을 할 때 누군가 옆에 있으면 신경이 쓰이는 걸 알기에 그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저를 투명인간처럼 여기곤 했지만, 사이아드 선생님은 먼 동양에서 온 저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전공은 무엇이냐”, “미국에서 일할 계획이 있느냐” 같은 질문을 던지시며, 본인의 미국 이주 과정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덕분에 옵저버쉽 기간 동안 정말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이아드 선생님은 파키스탄 출신으로, USMLE를 열심히 준비해 현재 미국 플로리다에서 의사로 자리 잡으셨다고 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파키스탄에서 어떤 고생을 하셨을지 상상만으로도 그의 집념과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들려주신 파키스탄 의과대학 시절의 이야기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는 의대를 졸업하더라도 삶이 여전히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공부하여 자신에게 기회를 준 미국 땅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품고 계신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현재의 삶에 진심으로 만족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만약 제가 학생 시절에 그를 만났더라면 제 롤모델로 삼고 싶었을 만큼 열정과 성취로 가득 찬 멋진 IMG(외국의대 졸업생) 출신 의사였습니다.




Hao (하오)


옵저버쉽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를 한 명 꼽으라면, 단연코 중국에서 온 ‘하오’입니다. 사실 옵저버들끼리는 따로 시간을 내지 않는 이상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지만, 하오와는 점심도 함께 먹고 속얘기도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처음 하오와 대화를 시작한 건 제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인데요. 옵저버들이 처음 모이는 자리에서 아시아 출신은 저와 하오, 단 둘 뿐이었습니다.


플로리다의 지리적 특성상, 옵저버들의 절반은 남미에서, 나머지 절반은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친구들이었습니다. 이런 글로벌한 환경에 처음 발을 들인 저는 처음엔 그들 앞에서 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착한 친구들이었고, 심지어 저보다 나이도 한참 어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부색이 비슷한 유일한 아시아인인 하오에게 집중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하오도 제가 싫지 않았는지, 제 이야기에 잘 호응해주었죠.


무엇보다 위안이 되었던 것은 서로의 영어 실력이 비슷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하오 입장에서는 다르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요! ㅎㅎ ) 하오와 대화할 때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보다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인도에서 온 친구들은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사용해왔고, 남미에서 온 친구들 역시 제가 듣기엔 원어민 수준에 가까운 실력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옵저버들 사이에서도 영어 실력 차이가 크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오는 저보다 훨씬 어린데도 혼자 미국에 와서 이미 두 개의 옵저버쉽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TGH는 그의 세 번째 옵저버쉽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한결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하오에게 미국 다른 병원에서의 옵저버쉽 경험담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는 TGH가 옵저버들에게 기회를 상대적으로 적게 제공하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전에 피츠버그에 있었던 병원(규모가 더 작은 2차 병원이었습니다)에서는 직접 환자와 면담하고, 매일 스태프들 앞에서 발표까지 해야 했다고 하더군요.


옵저버쉽 내내 하오와의 만남은 저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죠. 비슷한 영어 실력으로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그 시간이 참 소중했습니다. 병원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는 초등학생 수준의 영어를 사용하는 아시아 사람에 불과하다는 자격지심이 컸지만, 하오는 그런 제게 위로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난 너의 영어 실력이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

하오의 말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의 영어는 살짝 중국 악센트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의 태도는 정말 멋졌습니다. 저는 영어 때문에 이렇게 위축되고 힘들어했는데, 하오는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스태프들에게 질문하고 레지던트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더군요. 물론, 그는 올해 매칭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 중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하오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미국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죠. 그는 훌륭한 종양내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논문도 많이 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는 들어본 적 없는, 정말 의사로서의 ‘꿈’이었습니다. 하오라면 세상의 의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멋진 친구를 알게 되어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Nrupesh (누피)

저와 함께 옵저버십을 했던 Nupie는 인도 구자라트 지방에서 온 친구입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인구가 14억 명이나 되는 인도에서, 같은 옵저버십 프로그램에 누피의 지인인 카멜라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두 사람이 서로 같은 병원에 지원한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이곳 USF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는 거였죠. 작은 세상이란 말이 실감났던 순간이었습니다.


누피와 카멜라는 딱 봐도 인도 내에서 꽤나 영향력 있는 집안의 자제들 같았습니다. 누피의 아버지가 의사라고 했는데, 카멜라의 아버지도 의사였습니다. 게다가 둘 모두 뉴욕에 친인척이 있어 미국을 자주 오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피는 자신의 멋진 배경을 과시하지 않았고, 성격도 정말 좋았습니다. 그는 항상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고 모임을 자연스럽게 주도하곤 했습니다. 옵저버들의 단톡방에서 선출된 것도 아닌데 암묵적으로 반장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누피의 본명은 Nrupesh(느루페시)였지만, 저에게는 편하게 누피라고 부르라고 하더군요. 그는 늘 활기차고 사교적인 성격 덕분에 술 친구로도 최고였습니다. 항상 높은 텐션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주변을 밝게 만드는 친구였죠.




남미(브라질, 볼리비아)에서 온 친구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남미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미에서 온 친구들도 처음에는 뭔가 무섭게 느껴졌고, 혹시 동양인인 저를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했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했던 걸까요? 남미 친구들은 오히려 저에게 굉장히 친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동양인,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온 저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제가 하오와 누피와 주로 어울리느라 남미 친구들과 가까워질 기회가 많지 않았던 점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좀 더 일찍 친해졌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브라질 친구들은 저를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하며, 기회가 되면 꼭 한국에 가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아, 이게 바로 한류의 영향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들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따뜻하고 유쾌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옵저버십은 참여 목적에 따라 느끼는 스트레스의 정도나 마음가짐이 크게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옵저버십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른 한국 선생님들 중에는 가족들과 함께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더 집중했던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인 것 같아요.)


사실 저도 병원에서 저를 크게 신경 써주지 않는 환경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했고, 미국에 있는 동안 OET 시험이나 한번 봐볼까 하는 생각에 병원 일이 끝난 후에는 OET 시험 준비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OET 시험이 이렇게 저를 발목 잡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옵저버들 중 OET 시험을 언급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어떤 분은 5일 공부해서 합격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시험 보면 합격할 수 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죠. 다음화에서는, 어쩌면 STEP 시험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던 OET 시험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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