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물건을 잘 찾는 법과 OET 리딩의 공통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지금까지 토익, 토플, 텝스 등 어떤 영어시험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전화 영어 정도만 해봤을 뿐이죠. 그래서인지 OET가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괜한 자격지심 같은 것이었을까요? 기본적인 맥락은 수능 영어와 비슷하지만, 공부법은 많이 다릅니다. 오히려 수능의 언어영역과 더 비슷하다고 할까요?
리딩 Part A가 어려우신 분들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공인 영어시험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안에 빈칸을 채워야 하는 Part A 시험이 처음에는 매우 낯설었습니다. 혹시 OET 리딩 Part A가 어떤 시험인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15분 동안 총 4개의 지문을 읽고 20개의 빈칸을 채워야 하는 시험입니다. 처음 문제를 접했을 때, 소위 말해 ‘멘붕’이 왔습니다. 저에게 15분은 20개의 문제를 풀기에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OET 관련 후기를 보면 Part A가 어렵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의고사를 보면서 Part A가 버겁다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어렵다고 하는 말하기와 쓰기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제가 두 번이나 OET에서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은 리딩 Part A였습니다. 시험을 볼 때마다 Part A를 끝내고 나면 "떨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였으니까요.
"왜 나는 이렇게 Part A가 어려울까?"
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냉장고에서 식재료 찾기와 OET 리딩
OET 리딩 시험은 마치 냉장고 안에서 아내가 찾으라고 한 식재료를 찾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늘 저에게 "바로 앞에 두고 왜 못 찾느냐"라고 타박합니다. 저도 스스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못 찾을까요?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맥락 의존적과 맥락 비의존적 유형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출처: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본어 책 -김미소)
제 아내는 비맥락 의존적 유형입니다. 처음 보는 상황에서도 체계적으로 1층부터 훑어보며, 냉장고 안 조미료 위치까지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반면 저는 맥락 의존적 유형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고춧가루를 자주 쓰니까 눈에 잘 띄는 곳에 참깨 가루 옆에 놓아두어야지" 하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냉장고를 정리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설정한 ‘이야기’가 없는 곳에서는 물건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저는 리딩 Part A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했어야 했습니다.
가령, <신생아 황달 관리 지침>이라는 주제의 문제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문제>
황달은 신생아에게 흔히 발생하는 증상으로, 혈중 (1)________ 수치가 높아져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현상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생후 2-3일 이내에 발생하며, 치료가 필요한 경우 주로 (2)________ 치료를 실시합니다. 치료 시에는 아기의 (3)________ 를 주기적으로 측정하여 기록해야 합니다.
답: 1) 빌리루빈, 2) 광선 3) 체중
해당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짧은 텍스트 4가지를 읽어야 합니다. 시험을 볼 때 저는 빈칸에 들어갈 정답만을 찾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정답이 없을 것 같은 지문은 아예 무시하고 눈으로 빠르게 훑어보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맥락에 의존하는 유형이기 때문에, 긴 지문을 처음부터 차근히 읽어 전체적인 내용을 먼저 머릿속에 입력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OET Reading Part A에서는 네 개의 짧은 텍스트가 주어지며, 대부분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설명합니다. 단순히 답이 없는 지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문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답이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지문이라도,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냉장고 예시 속 ‘고춧가루 옆에 있는 참깨 가루’처럼, 겉보기에 쓸모없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정답을 찾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리딩 공부법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문제부터 보지 마시고 지문을 꼼꼼하게 읽으세요. 저는 OET 리딩에 대한 인터넷 강의를 찾아보면서 "질문부터 읽고 지문을 보라"는 조언을 많이 접했는데, 제게는 전혀 맞지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오히려 집중력을 해치는 일이었죠. 저는 수능 언어영역도 그렇게 풀지 않았습니다. 왜 영어시험이라고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저는 지문을 읽는 데 많은 공을 들이는 편입니다. 지문을 꼼꼼히 읽은 후 문제로 넘어가며, 비록 모든 내용을 100% 기억할 수는 없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한 상태에서 문제를 풉니다. 이렇게 하면 문제를 접했을 때 필요한 부분만 다시 확인하면 되므로, 마치 한 번 숲 전체를 조망한 후 세부적인 부분을 살펴보는 느낌입니다.
OET 리딩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은 컴퓨터 시험보다 종이 시험(Paper-based test)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스크롤을 내리면서 읽는 것이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다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주어이고 동사인지 체크하면서 읽는 것이 중요한데, 컴퓨터 시험에서는 그 과정이 어려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훑어보는 skimming을 강조하지만, 저는 오히려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 지문을 훑으며 ‘숨바꼭질’하듯 답을 찾기보다는, 처음부터 지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 방법을 적용한 후 300점에서 390점으로 90점 상승을 경험했습니다.
제 영어 실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공부 방법을 바꿨을 뿐입니다.
리스닝 공부법
읽기와 듣기는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사실 리스닝도 일종의 속독 시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OET 리스닝에서는 듣기 전에 일정 시간 동안 지문을 읽을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시간을 빠르게 '속독'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Part A: 30초, Part B: 15초, Part C: 90초
이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지문을 빨리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OET 리스닝에서 주어진 단어를 정확하게 받아 적어야 하는데, 저는 처음에 스펠링 실수가 많았습니다. (실제 시험장에서 실 수 있던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Prickling → ❌ Frickling
Clumsy → ❌ Clumpsy
Vomiting → ❌ Vommitting
이런 사소한 실수로 감점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리스닝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들의 철자를 미리 익혀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OET 리스닝 시험에 자주 나오는 단어 정리집이 있는데 공유합니다)
시험에서 낙방했을 때 멘탈 관리
시험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을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험은 나의 지적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반복이 부족했을 뿐이다.”
시험 전 긴장될 때, 저는 항상 산책을 했습니다. 특히 모의고사를 본 날에는 반드시 산책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저는 스스로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환자를 진료할 때, OET에서 배운 표현들이 실제로 유용하게 쓰이더군요.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저는 “과연 내가 이 시험을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네 번째 도전에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을 네 번이나 본 저도 해냈습니다.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