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것들

by 키튼

2024년 11월 16일, ECFMG에서 Pathway 1 승인을 받았고, 이제 한국으로 인증서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미국 병원에 인터뷰 요청을 해야 하고, 7년 안에 Step 3까지 통과해야만 미국에서 정식 의사 면허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애매한 점수로 인터뷰 요청이 올지조차 확신할 수 없고, 미국 생활을 진정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자신이 없습니다. 어쩌면 여기에서 저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다시금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왜 USMLE를 준비했을까?"

그 답은 오랜 시간 저를 괴롭혔던, 원인도 모르고 해결 방법도 몰랐던 거대한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으로 가면 한국에서 느꼈던 불안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미국으로 간다고 해서 저라는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환경이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낼 뿐이겠지요. 어쩌면 더 큰 불안을 마주할 수도 있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며 1년 반 동안 옵저버십을 핑계 삼아 병원 일을 쉬고, 아내와 함께 다양한 곳을 여행했습니다. 남들은 한국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을 때, 저는 낯선 곳에서 하루 종일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낮잠을 자고, 서툰 외국어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지냈습니다. 여행이 삶이 되는 경험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여행이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떠돌이 장돌뱅이 같은 느낌이었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느꼈던 그 막연한 불안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충만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어디에도 천국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넘쳐났고, 오히려 한국에서의 삶이 가진 장점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 불안은 비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USMLE를 준비하며 공부했던 것보다, 옵저버십에서 만난 친구들, 웹상에서 나눈 외국인 선생님들과의 대화가 제 가치관에 더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시험을 통과한다고 해서 제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취직을 했고, 매일 환자분들을 만나며 일합니다. 1년 반 동안 타국에서 외국인으로서 느꼈던 무력함을 떠올리면, 지금 제가 필요한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한국어로 소통하며 환자들의 이야기 너머의 생각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기쁩니다. 바쁜 와중에도 동료들과 작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다독일 수 있다는 것도 소중합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때때로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가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조금 먼 길을 돌아왔지만, 지금 저는 이 삶에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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