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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까미노 3]
1천 리터의 비가 내리는 4월

포르투갈까미노 3. 빌라 프랑카 데 시라 ~ 발라다

by Roadtripper

2019.04.24 _ #포르투갈까미노 3nd day


- 구간 : 빌라 프랑카 데 시라 Vila Franca de Xira - 발라다 Valada

- 거리 : 33.3km

- 난이도 : ★★☆☆☆

- 숙소 : Casal das Areias (Private, 25유로)






+0km, Vila Franca de Xira


전날 밤, 거의 밤새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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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에서 #비야프랑카 에 닿기까지 뜻밖의 사건들로 일정이 너무 험난했던 터라 독방이 매우 절실했던 엊저녁.


무려 40유로를 지불하고 트윈 룸을 예약, 방 가득 이것저것 펼쳐놓고 짐정리하다 잠이 들었다. 리스본을 벗어나던 날, 종일 날씨가 좋았는데 밤새 비가 쏟아졌다. 잠귀 어두운 나도 새벽에 몇 차례 깨어나 창밖을 흘깃 살필 만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간헐적으로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비야프랑카데시라 구도심은 물에 흠뻑 젖었고, 와중에도 고즈넉하니 작고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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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리스본을 빠져나오며 #테호 강변에서 만난 사람들과 파티마까지 함께 걷기로 했고, 아침에 만나 함께 출발한다. 4월 언저리 이 동네 날씨는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그새 오락가락하던 비구름이 싹 걷히고 하늘이 파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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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그려진 이정표가 없었다면 전혀 까미노 루트같아 뵈지 않았던 이 길;

국도변에 막 자라난 듯 거친 잔디밭을 잠시 밟다가 주유소 옆 후미진 길로 이정표가 연결된다.


외진 공터와 허름한 고가 아래 굴다리 등을 지나며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몇 차례나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서 만약 혼자 걷고 잇었다면 분명히 불안했겠지만, 33명이나 되는 로컬들과 함께 걷고 있으니

길 곳곳에 뿌려진 노란화살표를 찾으려 애쓰거나, 길 잃을 염려 없이 그들 틈에 섞여 맘 놓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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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부터 시작하는 #포르투갈까미노 . #프랑스순례길 인프라에 비하면 확실히 불친절하기는 하다.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특히 부족한 시작 구간 언저리를 지날 때는 철길과 나란히 흐르는 아스팔트 위로 걸어야 한다. 3월부터 이미 더워지기 시작하는 리스본에서 4월 이맘 때는 벌써 제법 덥다.그런 와중에 몸 가릴 나무그늘은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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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프랑카 데 시라에서부터 2시간쯤 걸었을까. 여전히 아스팔트 위를 걷지만 드디어 철길이 끝났고, 빈 농가와 허름한 창고도 어느 틈엔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신 들판이 펼쳐지며 하늘이 넓어졌고, 그만큼 시야가 확보되면서 그제서야 제법 까미노를 걷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7.6km, Carre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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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첫 휴식시간.


아스팔트 옆을 달리던 철길이 멈추는 기차역 건물 앞에 간이 테이블을 주루룩 펼쳐두고 과일과 케이크, 와인, 빵, 음료, 물 등이 후다닥 한상 차려졌다. 걷는 동안엔 짧은 시간에 몸에 제대로 에너지를 넣어줄 당이 최고다. ㅋ


손도 닦지 않고 초콜릿케이크 한 조각을 집어들어 팩에 든 오렌지주스와 함께 먹는다. 통통한 바나나를 하나 까먹고, 견과류를 한줌 집어든 채 테이블에서 물러나려는데 팀 지원차량을 운행하며 먹을거리와 온갖 일정을 살피는 루이스가 주먹보다 큰 오렌지를 주머니에 하나 넣어준다.


리스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포토그래퍼인 루이스는 스포츠 현장 사진을 주로 찍는데 아들 역시 포토그래퍼. 부자가 포토그래퍼지만 자신보단 아들 사진 자랑에 열을 올렸다. 호날두며 포르투갈 축구팀 사진이 담긴 아들의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보여주며 팔로우를 주선했다. 스틸컷이 강렬해서 사진이 필요한 국내 미디어와 소개시키면 좋을 것 같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노쇼 사건으로 한국을 발칵 뒤집어놓을 줄이야. 이때만 해도 나도 그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ㅋ


이 그룹 사람들이 한 스팟에서 쉬는 시간은 보통 20분 내외. 5~10분 새 먹고, 나머지 시간은 그늘에 앉아 쉰다. 인적이 드문 곳인지 행인 없는 기차역 문턱에 주루룩 걸터 앉았다.


팀에 오늘 아침부터 합류해, 이날 처음 만나 인사하고 아침 내 얘기하며 함께 걸었던 끌라라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니 묻는다.


- 썬크림 발랐니, 수?

- 그럼. 몇 번이나 발랐지.


길에서 요긴하게 쓰려고 굳이 두 개나 챙겨온 모 브랜드 스틱형 썬크림을 꺼내 보여준다. 나름 신박템이라고 관심있게 볼 줄 알았는데, 웬걸. 그걸론 4월 포르투갈 햇살에 어림도 없다며 자기 배낭에서 튜브타입 대형 썬크림을 통째로 꺼낸다. 니베아크림의 그 찐득한 재질. 백탁이 일만큼 두껍게 발라줘야 버틴다며 그걸 직접 꾹 짜 내 이마와 양볼, 턱에 골고루 얹어준다.


- 잠시 눈좀 감아봐

하더니, 직접 얼굴 곳곳에 발라주는 서비스까지. 유치원 졸업 이후론 엄마도 내 얼굴에 뭘 발라준 적은 없는 것 같은 데; 포르투갈에서 느끼는 고향의 정 같은 느낌이랄까. ㅋ 이날 출발지였던 비야 프랑카 데 시라 인근 소도시 병원에서 의사로 일한다는 끌라라 언니는 팀 중에 그나마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던 몇 중 한 명. 직접 썬크림을 발라준 이후로 왠지 더 친밀해져 나흘 뒤 파티마에 도착해 헤어질 때까지, 아니 작년 까미노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2020년 가을까지도 왓츠앱으로 가장 자주 얘기하는 다정한 사람이다.


어쨌든. 잘 먹고 잘 쉬었으니,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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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착한 포르투갈 사람들.


함께 걷기로 하며 일행이 된 순간부터 소소하게 챙겨줬는데, 100% 포르투갈어만 구사하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걷는 내가 심심할 거라 생각했는지 간혹 영어 스피커가 옆에 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었다.


75세라는 데도 그보다 동안에, 훨씬 젊어뵈던 이 아저씨는 이 지역에서 어떤 작물이 자라는지, 지금 우리는 토마토밭 옆을 지나가고 있다는 등 굳이 옆으로 다가와 포르투갈 농사에 대해 한참 열심히 설명 중이시다 ;)




+12.4km, Vila Nova da Rainha

다시 하늘이 흐려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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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말도 안 되게 기차역을 가로질러 까미노가 흐르는 터라 이날 말고도 나중에 몇 차례 더 철길 위 육교를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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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화살표가 그려지 있지 않았다면 정말 모르고 지나쳤을 구간.

굴다리 아래로 고갤 숙이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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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다릴 지나 질퍽한 꽃밭 지나 멀리로 보이는 곳이 #아잠부자 #azambuja .


외국에서 발행된 #포르투갈순례길 #가이드북 이 추천하는 대로라면

특히, #존브라이어리 가이드북에서는

리스본에서 출발한 첫날 도착지가 이곳 아잠부자다.


작지만 공립 알베르게도 있다.




+19.9km, Azambu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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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점심 장소에 도착.


옛 투우 소들을 관리하던 농장이라는데

지금은 물론 포르투갈에서 투우 인기가 떨어지며 소는 없다.


다만 시설은 그대로 남았고, 투우 관련 장식품들 역시 여전히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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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혼자 걸었다면 있는 줄도 몰랐고,

들어올 기회는 더 없었을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샐러드, 몇 가지 소스, 빵, 음료, 와인, 오븐에 구운 치키 등

마트에서 사온 조리 식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미 식사 준비는 완료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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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투우장 곳곳을 어슬렁댔고

마당 한구석에선 구급상자를 펼쳐놓고 물집 치료가 한창이다.



이렇게 파티마를 향해서 단체로 걷는 포르투갈 사람들 순례자 그룹엔

팀마다 #드라이버 와 #성직자 , 그리고 #간호사 가 한명씩 배치된다.


드라이버는 당연히 지원차량을 운전하며 배낭을 옮기고,

식사나 브레이크 타임에 먹을 먹을거리를 챙기는 역할.


파티마까지 걷는 동안 길에 서서 하루 몇 차례 미사를 드리는 터라

그 미사를 집전해줄 성직자 한 명 역시 필수.


그리고 이렇게 물집을 처치한다거나 누군가 근육을 다쳤다거나

갑자기 아픈 경우를 대비해서 현역 혹은 퇴역 간호사 역시 동행한다.


물집 처치를 포함, 무려 2시간에 걸친 느긋한 점심 시간이 끝나고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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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출발하려면 이건 정말 각오해야 한다.

도보여행자를 위한 인프라가 확실히 취약하다는 점.


길이 참... 휑하다. 이때부턴 더 휑하고 염소똥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똥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딛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넓은 초원(?) 지대를 지난다.


다시 비가 추적추적 시작되었고, 비에 젖어 한발 옮길 때마다 흙과 자갈이 섞인 길에서 흙탕물이 배어난다. 더 심한 건, 똥밭에 비가 내리면... 내리면... 그렇다. 당신이 얼핏 상상하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 ;;


*아직 까미노 경험이 없는, 지극히 문명화된 한국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겠으나

이미 한 번 이상 까미노를 걸은 경험이 있다면

행간에 어떤 상황이 생략되었는지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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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km, Valada


비구름이 몰려오니 세상이 회색빛이다. 그저 그런 밭길 옆을 걷다가 가끔은 공장 지대와 농지 옆 창고, 철길을 따라가야 하는 구간 배경이 회색빛이면 사방은 더없이 칙칙해진다. 왠지 증가하는 비구름 양과 정확하게 반비례하며 뚝뚝 떨어지는 에너지 게이지를 실감하며 발걸음이 느려진다.


팀에서 가장 유려한 영어를 구사하는 축에 드는 프란세스코 아저씨가 옆에 와 함께 걷는다. 아빠와 동갑이고, 아저씨에게도 내 또래 딸이 셋이 있단 얘기에 어쩐지 더 친밀감. 리스본에서 파티마까지 이 그룹 사람들과 같이 걷는 내내 마치 짝꿍처럼 일정을 챙겨주었던 아저씨는 포르투갈의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들려주셨고, 유머감각 또한 남달랐는데 어쩐 일인지 까미노가 끝나고서는 데면데면. 페친인 까닭에 간혹 올라오는 포스팅으로 소식은 알고 있으나 그게 전부다. 포스팅을 통한 근황 정도만 딱 아는 상태.


이날 종착지 발라다로 접근할 수록 난데없이 시작된 비가 점점 기세를 더해가더니, 나중엔 평원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바람까지 거세다. 비바람에 정신없이 펄럭이는 우비를 수습하려 안간힘을 쓰며 걷는데 프란세스코 아저씨가 그런다.


- 수, 포르투갈 4월 날씨는 늘 이래. 비가 많아. 맑다가도 쏟아지고, 쏟아지다가도 금세 그치는데 오늘은 밤새 비가 온다네. 비가 얼마나 많이 내리냐면 '밀즈 오브 레인'이라고 해. '밀mil'이 포르투갈어로 1,000이거든. 1,000리터의 비가 쏟아지는 포르투갈에 온 걸 축하해.


어쩐지 문법도 안 맞고, 포르투갈어와 영어가 뒤섞였지만 포르투갈어를 모르는 내게 맞춤한 번역이려니 한다. 문법이고 번역이고 간에 사실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비바람 몰아지는 휑한 벌판을 걸으며 자신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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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날의 종착지 #발라다 #Valada 에 근접했다.


일행은 발라다 성당에 잠자리를 정해두었고, 나는 전날 일행 중 처음 얘기를 나눴던 제르트루드Gerturdes와 함께 인근 오스딸로 향했다. 비가 쏟아지고, 거리가 다소 먼 탓에 지원차량을 운행하던 루이스가 숙소에 내려주었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 다시 픽업하러 왔다.


어떤 길을 걷게될 지, 어떤 일이 펼쳐질 지 모르고 시작하는 게 보통이지만 사흘 전만 해도 상상치도 못했다. 파티마를 향해 성지순례를 떠난 리스본 어느 성당 그룹 사람들 틈에 섞여 함께 걷고, #포르투갈까미노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그들과 함께 #발라다 인근 낡고 정다운 로컬 레스토랑에 앉아 로컬 와인 마시며 전형적인 포르투갈식 디너를 하게 될 줄은.


너무 달았던 디저트 접시를 끝내 비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서도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다. 도시의 불빛이 없어 시선이 멀리 닿는 풍경은 온통 암흑, 마을 곳곳에 선 가로등 인근으로만 하늘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주황색 빗줄기가 반짝인다.


종일 비와 해가 오락가락했고, 줄곧 아스팔트를 걷느라 발은 몹시 피곤했지만 혼자 걸었으면 정말 최악이었을 이 구간을 좋은 일행들과 걸어 정말 다행,이다 싶었던 셋째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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