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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까미노 12]
파나셰, 끌라라, 샨티

포르투갈길 12일째. 알바이아제레 ~ 라바싸우

by Roadtripper

2019.05.04 _ #포르투갈까미노 12th day


- 구간 : 알바이아제레 Alvaiázere ~ 라바싸우 Rabaçal

- 거리 : 33.2km

- 난이도 : ★★★☆☆

- 숙소 : Casa de Turismo do Rabaçal (11.5유로)






역시 출발은 해뜨기 전. 알베르게에서 1등으로 나서는 줄 알았는데 4인 침실에서 함께 묵었던 이태리 남자는 이미 기척도 없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닫힌 철문을 열자 까미노 아니었음 방문했을 리도 없거니와 있는 줄도 몰랐을 포르투갈 소도시 뒷골목이 나타난다.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아침 골목길엔 아직 해도 들지 않았고, 보이지도 않는 새소리만 가득하다.


오른쪽 흰벽 건물 1층이 할머니 한분이 운영하는 포르투갈 가정식 레스토랑이다. 간판도 없는 곳을 알베르게 주인이 소개해 알게 되었는데, #애피타이저 #메인 #와인 #물 #빵 모두 포함되는 #플라토도디아 Plato do Dia (#그날의디쉬 ), 스페인으로 치면 #메누델디아(#순례자메뉴 라고 익히 알고 있는)가 고작 5유로. 저렴한 가격에 기대치가 확 떨어지지만 화려한 플레이팅 없이 소박하게 담겨져 나온 정갈한 음식에 두 번 놀라게 되는 곳. 역시 관광객을 유혹하는 크고 근사한 대형 레스토랑보단 로컬의 선택을 믿는 편이 안전하다.

골목을 벗어나면서부터 이미 오르막이 시작된다.


곧 마을의 경계를 벗어나고, 이후는 고만고만한 경사로 이어지는 산길.

잘 먹고 잘 잔 뒤라 에너지가 충분하고, 아직 뜨거운 포르투갈 태양을 마주하기엔 이른 시각.

단전에서부터 치미는 기분 좋은 해방감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곡조는 #김현식 의 #내사랑내곁에 .


평화. 아침. 고요. 포르투갈. 까미노.

어느 것과도 어울리지 않는 선곡이지만 어릴 적 접한 기억이나 경험은 이래서 무섭다.

의식적으로, 혹은 성장하고 애정해마지 않던 어떤 곡보다도 무의식에 깊숙이 각인된 까닭일 테다.




+ 2.5km, @Laranjeiras #라라네이라스



#존브라이어리가이드 에는 카페가 하나 있다고 표기되었지만

시간이 너무 이르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이라 스킵.


멈추기엔 아직 에너지가 많은 시각.


나무 악어가 올라앉은 담벼락을 지나


다음 마을로 향하는 길, 역시 오르막.


그도 그럴 것이 이날 고도표를 보면 산 정상을 한번 찍고,
이후 내리막이지만 줄곧 작은 봉우리들을 반복해서 넘는 코스.

줄곧 오르막- 이 낫지,
이렇게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면 더 힘들다 ;
특히 아침부터 태양이 이글거리는 포르투갈의 봄날엔 더더욱.

아직 채 떠오르지 않아 누운 햇살을 나무가 커버해주지만 한시간만 지나면 상황은 급변할 것이다.

줄곧 지방도로를 따라 아스팔트 밟으며, 타박타박 오르는 길.

가끔 발끝에서 먼지가 일더라도 흙길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이건 조금 아쉽다.

아직은 길을 정비하는 초기단계여서일까.

코스는 예쁘지만 #리스본 과 #포르토 사이 #포르투갈길 엔 아스팔트길을 자주 만난다.


+3.5km, @Maçãs de Caminho

몇 가구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을 지나


드디어 고도 470미터 쯤, 산 정상에 도착.
이제 한동안은 내리막 예정.

"나 떴다."

채 9시가 되지 않은 시각인데 벌써 겁주기 시작하는 포르투갈 태양 님.



+ 9km, @Venta do Negra

몇 집에나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싶을만치
작고 조용했던 마을을 또 지나려는데


며칠 뒤,

#코임브라 부터 함께 걷게 되는 크리스티나 사진을 또 발견.


한참 지나서야 생각해보니 예고편을 본 기분이다.

"며칠 뒤 함께 걷게 될 애야, 미리 인사하렴"


누군가 넌지시 알려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으레 그렇듯

아마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그러하듯

이 순간엔 모르고 지나쳤다.


까미노에 인생을 대입하곤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내가 사는 동안 펼쳐지는 수많은 예고편과 본편들을

나는 얼마나 많이, 무심하게 툭 지나쳤을까.


마을 거의 끝무렵에 떡하니 길을 막고? 앉은 저 생명체의 존재감.

혹시 나한테 덤빌 건가 어쩔 건가,,, 혼자 긴장하며
스틱을 더 힘 있게 쥐고,
못본 체 외면하며 걸었더니
싱겁게 둘다 외면하는 걸로 평화로운 아침 과거진행형.


다시 아스팔트 국도를 밟으며 산을 내려간다.

시야가 좀 트이나 싶더니


외딴 오솔길로 안내하는 노란 화살표를 발견.

길은 다시 마을 안쪽길로 이어진다.


+12km, @Casal do Soeiro


오솔길 끝은 다시 작은 산골마을, 까살 도 소에이로.


골목 하나로 연결되는 작은 마을을 금방 벗어나고


이미 해는 뜨거워졌고,

내리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가 지겹다 싶을 때쯤
다음 마을, #안시앙 을 알리는 이정표가 등장했다.




+ 14.5km, @Ansião 안시앙

멀찌기 보이는 동네 풍경.

지금껏 지나쳤던 고만고만한 산골마을 보단 조금 크나 싶었는데

마을 중심으로 들어올 수록 이 정도면 도시 축에 낄 듯 싶다.

은행, 마트, 레스토랑, 바, 약국 등이 몇 개씩이나 있고

가이드북에 따르면 다양한 형태의 숙소도 많아 이곳에서 멈춰 자고, 다음 일정을 시작하는 거점이기도 하다.


마을 진입해 처음 발견한 바를 지나치고

두 번째 발견한 바에서 멈춰서기로.


이른 아침부터 물 한 잔 마시고 벌써 서너시간 가까이 걸었으니 아침부터 선방한 셈이다.

바 테이블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는 순간,
거짓말처럼 벤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왠지 여기 있을 것 같았어~" 하면서 ㅋ


벤은 커피와 아주 달고 폭신한 스펀지 케이크를 주문했고,

나도 배가 고팠지만 스펀지 케이크 따위 밀가루 덩이로는 도저히 허기를 채울 수 없을 듯해

과감하게 #빠나셰 를 주문. 아직 12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에 말이다.

Tip.

2019년 포르투갈길 걸으며 건진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수확? 중 하나가 빠나셰 Panache 를 알게 된 것.

차가운 맥주와 레모네이드를 믹스한 음료인데, 시원하고 달고 청량하게 톡 쏘는 여름음료 끝판왕.

스페인에선 #끌라라 Clara, 독일에선#라끌라 (?) 비슷한 이름으로 불린다.

*포르투갈에선 0.8~1유로 선이지만, 스페인 국경을 넘는 순간 1,3~2유로까지 가격이 치솟는다.


빠나셰 마시며 벤과 수다 떨다 지도를 꺼내 다시 한번 길 상황을 살피고,


다시 출발하려고 일어서며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시간 직전.

그새 해는 얼마나 더 뜨거워져 있을까 덜덜 떨며 일어나던 저 순간의 공포감이란...;

까페 근처 수퍼에서 알록달록 젤리를 한봉지 가득 사 손에 쥐곤
먼저 씩씩하게 앞장서는 벤.

또 오르막이 시작된다고, 이럴 땐 당보충이 필수라며 젤리를 입안 가득 넣곤 질겅질겅 씹어대며 걷는다. ㅋ

12시에 이미 35도 hit-


오르막 + 태양 콤보에 점점 에너지 떨어지던 나는
결국 천천히 걷겠다며 벤을 앞서 보낸다.

아침 이른 시각이었거나

다른 계절에 걸었더라면 분명히 콧노래 흥얼거리며 기분좋게 걸었을 길을



+ 17km, @Bateagua


끓는 태양에 지레 지쳐 에너지가 2배속으로 떨어진다.

그렇게나 염원하던 산길 + 흙길 구간이 이제서야 펼쳐지는데 말이다.

까미노를 7번이나 걸어 완주했다는
조 아저씨 첫 등장.


먼지와 뜨거운 지열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5월 초입의 포르투갈 중부 지방;


노구에도 가볍게 걸으신다.

이러다 정말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었던 급경사를 오르니


+ 21km, @Netos


갑자기 급반전하는 풍경.

아스팔트 길이 시작되더니 저어기 아랫쪽으로 큰 교차로가 보이고
교차로 건너편에 주유소와 주유소에 딸린 바가 등장.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룰루랄라 달려갔다.


카페 테라스에 널부러져 맥주 마시던 벤 발견 ㅋ

이미 오후 2시에 가까운 시각.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절실하다며 벤을 먼저 두고 내부로 진입.


#스페인 #포르투갈 을 걷다 보면

에어컨 있는 건물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큼직한 돌로 쌓은 집들이 많아 그런지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필요없을 만큼 시원하다.


역시 의지를 상실하고 널부러진 여성 순례자 그룹.

결국 이곳에서 한시간여 앉아 태양이 정점 찍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


흡입하는 공기마저 끓는 듯 뜨겁게 느껴지지만
이쯤 되면 더 피할 공간도 없고...
어떤 의지나 욕망 따위 증발한 채,
자포자기 걷게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 24km, @Alvorge 알보르헤

벌써 세 번째 빠나셰.


이 작고 예쁜 마을에 #공립알베르게 가 있다.


오후에 뜨거운 아스팔트를 함께 걸어왔던 아주머니 그룹과

머리가 희끗한 유럽 아저씨, 할아버지 그룹이 모두 이곳에 멈췄다.

너무 피곤했고, 태양이 뜨거웠던 나머지 나도 이곳에 멈출까 하는데
이미 이날 종착지 #라바싸우 에 도착했던 벤이

와츠앱으로 메세지를 계속 보내온다.


- 어디까지 왔어?

- 난 벌써 도착했지롱

- 여기 빨리 와야 알베르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 어서 와. 뛰어왓!



일단 알베르게 어떤가 싶어 가보니, 2층 침대 한 자리가 남았다.

와중에 #알보르헤알베르게 에 멈춘 사람들 중 가장 어린 축인 크리스티나가

아저씨 아줌마 틈에 혼자 있기 싫은지, 자꾸 붙잡지만...


- 2층에 자긴 싫고,

- 예쁘지만 작은 마을에서 오후 내내 뭐할까 막막한 데다

- 벤을 비롯 다른 까미노 친구들은 이미 라바깔에 도착했다고 메세지가 속속 들어왔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있기보다 익숙한 얼굴들을 찾아서

결국 출발.



혼자 걷고 싶어서 먼 곳으로 떠났으면서
지구를 반바퀴 돌아 이베리아 반도까지 가서는
결국 또 친구를 만들고,
그 친구들을 찾아 뜨거운 길로 다시 나서는 아이러니.. ;


마치 이스라엘 중남부 사막을 연상시키는 시골길을 지나


이렇게 볕이 쨍한 데도 떡하니 펼쳐진 진창도 밟고


또 오르막


더 오르막


비포장 자갈길도 걷고...


짙푸른 올리브 밭을 지나


거의 10km를 더 걸었더니


+33.2km, @Rabaçal #라바싸우


이날의 숙소.

라바깔엔 정작 공식 #알베르게 는 없다.

오스딸이 몇 군데 있고, 이곳도 그중 한 곳.


동네 아저씨들 다 모여 맥주 마시며 축구 보는 작은 바가 있는데
이 바에서 건물 2층에 #사립알베르게 를 운영한다.


그런데 수용 가능 인원이 많지 않아 이미 full..



호주 4인 가족, 포르투갈 절친 벤, 잘 생긴 람시스와 함께 저녁.

하루가 참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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