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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난언니 Nov 09. 2019

이혼 후, 남자가 가장 필요했던 때

남자의 손길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이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거실이 깜깜했다. 스위치를 좌우로 껐다 켰다 해 봐도 불은 들어오지 않는 것이 전구가 나간 모양이다.

 평소 전구 가는 건 말 한마디로 해결해왔는데 내가 하려 하니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른 채 멍하니 섰다. 불투명한 유리커버로 덮인 전등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게다가 의자를 밟고 손을 쭉 뻗어야 겨우 닿는 높이를 어떻게 올라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 십자드라이버 하나 없고 장본 후 짐 싣고 올 카트 하나 없다. 사실 무거운 짐을 들고 올 자신이 없어 작은 물건 하나라도 배송료를 내 가며 인터넷 마트를 이용한 지 오래다. 갑자기 나간 전구 덕에 처음으로 혼자인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여태 그런 일은 내 몫이 아니었기에 신경을 전혀 안 썼었던 게다.       

 

  일단 핸드폰을 켜고 소파를 찾아 앉아 인터넷으로 거실 스탠드부터 주문했다. 스탠드의 노란 백열전구는 거실 분위기를 한껏 올리는 데는 좋았지만, 종일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하는 나는 가끔 밝은 형광등이 그리워 동네 커피숍으로 나가곤 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냈을까?

친구와 카톡을 하다가 전구 이야기가 나왔다.

“집주인한테 말 안 했어?”

“주인이 그런 것도 해 줘?”

대학 졸업 후 줄곧 혼자 살아온 친구는 역시 전문가다웠다. 아니 여태 누군가에게 의존만 하고 살았던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친구의 조언대로 집주인에게 전구가 나갔음을 알리자 잠시 후 경비실 아저씨가 사다리와 장비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오 분 만에 집은 환해졌다.     




 40대 싱글여성은 모든 범죄의 타깃이라 생각하고 늘 조심해왔다.

 문단속을 하고 자면서도 누가 들어올까 불안해했다. 처음엔 경비실에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만두고 어둠의 생활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모를까마는 이 집에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 때 밖에서 소리라도 나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때는 뒤에서 누가 보기라도 하는 듯 몸을 딱 붙이고 몰래 번호를 눌렀다. 밤 10시 이전 귀가는 말할 것도 없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땅을 응시하며 이웃들과 눈 마주치기를 피했었다. 킥복싱을 배우며 근력과 순발력을 키우기도 핬다  

. 하지만, 안전을 핑계로 행여나 위험에 노출될 것들과 철저하게 차단한 생활에서 불편함을 느껴오던 차였다.     



 

 늘 허허 거리며 소탈하게 웃는 사람 좋은 경비 아저씨조차도 위험의 대상으로 치부해 버린 죄스러움에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혼자의 생활은 생각보다 사소한 일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좀 더 익숙해지려면 내가 만능 맥가이버가 되들었는지 아니면 믿을만한 맥가이버를 잘 알아두던지 둘 중 하나이다. 인터폰으로 연락만 하면 달려와 주는 맥가이버가 있단 걸 알게 된 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하마터면 맥가이버를 핑계로 집에 남자를 들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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