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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난언니 Nov 04. 2019

소개팅 앱을 통한 깨달음

이혼 후, 급하게 다시 사랑을 찾지 말 것!

  지방에서 종일 피곤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앞에 달리는 옆 차선의 큰 트럭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다른 차선이라 신경 쓰지 않고 엑셀레이터를 쭉 밟으면 될 일을 그날따라 있지도 않은 앞 차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틀었다. 차는 순간 균형을 잃고 중앙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다시 튕겨 저 나가 바퀴 떨어진 차 마냥 비틀거렸다. 뇌가 잠시 일시정지가 되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되었다.


서서히 후각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시각이 다음으로 제 기능을 했다.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의 정체는 터진 에어백이었고 내 차는 다 부서져서 충북 어디쯤의 고속도로 중앙 가드레일 옆에 멈췄다. 꺼졌다 켜졌다 하는 불안한 전구처럼  뇌기능이 다시 잠시 정지한 듯 뭘 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본능적으로 꺼내 든 스마트 폰을 한참 들여다본 후에야 네이버가 시키는 대로 우선 보험회사에 사고를 알린 후 가만 기다렸다.

 

 밤 12시. 전화기를 잡고 누군가에게 위급한 상황을 알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간에 전화를 받고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는 먼 그곳으로 달려와 줄 이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전화해서 걱정을 끼쳐드리기엔 이미 지은 죄가 너무 많다. 엄한 렉카 기사에게 전화해서 빨리 와 달라 다그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고속도로 사고는 내게 공포보다 더 큰 외로움을 실감하게 했다. 그 위급한 상황에 전화해서 위로받을 누군가가 아무도 없다는 것에 더 가슴이 미어졌다.





 뭐든 욕망은 내 이성을 마비시키는 묘한 마력이 있다. 사고로 알게 된 내 외로움의 실체는 그 후 급속도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랑에 빠지고 싶은 욕망을 남겼다. 이혼을 한 지 2년이 채 안 된 즈음이다.





  제대로 된 연애는 결혼 생활 전이 전부이니 연애감정을 느껴 본 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진짜 애틋한 사랑을 기억하면 항상 S가 떠오르니 20년이 훌쩍 넘은 셈이다. 오래 전의 설레는 연애감정을 느끼고 싶었고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다. 인연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난다는 믿음으로 애써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는 신념은 땅 속 깊이 묻어 버리고 소개팅 앱에 가입해봤다.

 

 각자의 방식으로 말을 거는 상대를 예의 바르게 응대했다. 하지만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몇 마디 인사와 질문이 오가면 이내 대화가 끊겨버린다. 풋풋한 사랑을 찾아다니기엔 너무 현실적이 되어버린 마흔이 넘어서일까? 아니면 오래전 연애경험으로 대화하는 기술을 잊어서일까?      


 애초에 대면식 한 번 없이 확실한 신분을 보장받지도 않은 채 직접 적은 몇 마디 소개글은 사실 상대가 남자임을 가장한 여자여도 모른다. 잠깐 일탈을 꿈꾸는 유부남이 싱글인 척 해도 알 길이 없다. 소개팅 앱을 통해 이어진 인연은 상대를 더 깊이 알려고도 알 필요도 없는 관계였다. 한쪽에서 대화를 멈추면 관계는 끝나버리는 식이다. 딱 한 번의 클릭으로 관계를 끊어버려도 다시 연락할 길이 없는 차가운, 상대의 변명을 들어가며 서로를 맞춰가기보다 다른 사람을 찾아 다시 알아가는 것이 더 빠른 그런 곳이었다.

 

  D도 소개팅 앱에서 알게 된 이이다. 다른 이들에 비해 꽤 오래 대화가 이어지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 끌렸던 것 같다. 듣기 좋은 말보다 냉철한 한마디에서 오히려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런 특이한 매력을 지녔다. 예의 바르지만 구구절절 설명 없이 짧은 대답과 질문만 해대는 그는 더 나를 안달 나게 했다. 며칠 동안 스마트 폰 화면을 통해 알던 그는 며칠 후 미주알고주알 말도 없이 스마트 폰 화면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에는 그냥 가벼운 만남 혹은 FWB 만을 원하는 사람도 많았다. D도 그중 한 명이었던 것이고 내 상태가 점점 진지해지는 걸 느끼자 나가버린 건 아닐까?     



  억지로 인연을 만들고자 했던 노력은 허망함으로 마무리되었다. 아픈 추억이라기보다 외로운 중년의 헛된 발버둥이라고 치는 것이 낮겠다. 가슴으로 만나고 오래 기억에 남을 인연을 꿈꾸던 나는 우선 방법이 잘못되었고 연애 감성 제로에 가까운 내 행동은 그곳에선 맞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잠깐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발버둥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겠다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건강한 만남은 내 정신이 건강할 때에야 비로소 찾을 수 있는데
 내 안에는 아직 남아 있는 아픔의 잔재들이 너무 자주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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