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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난언니 Jun 14. 2020

이혼 후, 사랑을 대하는 자세

내게 들리는 경쾌한 왈츠가 당신에겐 애수를 담은 블루지로 변한 이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혼녀와 결혼 한 적 없는 그와의 사랑에 여자는 남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함께 했다

"주말에 뭐해? 아이랑 있어야 하지?"

이혼 후 따로 지내는 아이에 대한 염려로 주말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꼭 지키려는 내 상황을 알기에 주말에는 거의 다른 일정을 잡는 그다. 

그럼에도 일정을 한 번 더 체크한다는 것은 뭔가 계획을 세운 모양이다. 

하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아이가 중학교 첫 등교하는 날이라 몸만 떨어진 엄마로서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목욕탕도 데리고 가야 하고 머리 정돈 손톱 정돈 등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3초의 망설임에 대번에 곤란함을 읽은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했다

"아니야. 그냥 주말에 쇼핑이나 갈까 했어."

라고 대강 얼버무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을 넘어 실망감이 역력했다. 

처음부터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처한 상황이 다른 아이의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한 엄마로서 역할이라는 것이라는 것도 다 알고 시작한 만남이다. 그래서 뭐라 변명이나 듣기 좋은 다독임도 없이 망설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너의 상황 다 이해하고 널 만나기로 했지만 가끔 내가 진짜 연애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     



그를 안 후 내 귓가엔 늘 경쾌한 왈츠가 흘렀었다

내 일과 다소 제약적인 시간을 유지하며 덤으로 사랑까지 얻었으니 모든 일이 신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음악은 점점 애수를 담은 블루지한 리듬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끔 내가 진짜 연애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가 말을 내뱉는 순간 난 그의 귓가에 들리는 음악을 들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점점 그는 전화보다 카톡 메시지가 늘어가고 그마저도 확인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었다. 귀여운 앙탈로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표현 혹은 내 센스 없음에 대한 투쟁일 수도 있지만 내 이성은 그의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그도 떠날 것이라는 확신을 앞세웠다.  


        

이혼 후 생긴 나쁜 버릇은 사람을 잘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십여 년을 함께 살던 이와도 헤어지는 마당에 얼마 안 된 만남에 씌워진 알량한 사랑이라는 탈도 금방 벗겨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결국 헤어짐이 두려워서 뜨겁게 포옹하지 못하는 내 이기적인 감정은 미래를 꿈꾸고 설레는 그의 순수한 사랑을 밀어내 버렸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은 난 아이를 핑계로 이혼이라는 틀에 가둬두고 나에게 비추어진 스포트라이트를 스스로 꺼버렸다는 것이다.

사랑이 변질되는 과정을 다 겪어 봤기에 분명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도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만의 하나 있을 또 다른 오답이 두려워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 짓고 내 감정에 보호막을 쳤다

그의 순수함을 밀어낸 것은 결국 내 자격지심이었다.     


얼마 전 샤워 후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 적이 있다.

다시 보니 화장을 벗기고 액세서리며 멋들어진 옷을 다 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구석구석이 사랑스럽다. 감정도 매한가지란 생각이 든다. 멋지게 보이기 위해 포장하고 투명 필름을 씌워 보호하기보다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고 나를 단단하게 지켜가는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미리 정의 내린 미래보다 내 감정에 충실하며 만들어가는 미래가 훨씬 아름답다는 것. 

     

내 귓가에 들리는 경쾌한 왈츠를 상대와 함께 듣기 위해서 어쭙잖은 자격지심으로 나를 숨기기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내 감정의 나체를 드러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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