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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난언니 Nov 06. 2019

신이 나를 버린 줄 알았다

보이스 피싱!  이 썅노무시키들...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지 원수도 사랑하신다는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진 것을 하나씩 가져가는 재미에 푹 빠졌는가 보다. 아마도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말아서 더 큰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8년 7월 12일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잠실 롯데 월드 몰 내의 약속 장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중요한 미팅이라 차림은 깔끔했지만, 얼마 전 넘어지면서 다리 인대가 늘어나는 바람에 한쪽 발엔 무릎까지 깁스를 하고 복장과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참 우스울법한 차림으로 절뚝거리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린다.      

 경찰이라고 소개한 전화기 너머 남자는 묵직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전화한 이유를 설명한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 귀를 의심하면서도 몸은 그 남자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보이스 피싱에 걸린 것이다     


 경제관념이 별로 없는 나는 통장에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있었고, 그날 어리석은 판단으로 통장의 돈을 모조리 인출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전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그 날. 다리를 절뚝거리며 금융 감독원, 경찰서 등 사방팔방으로 다니면서 알아봤지만, 현금으로 갖다 바친 덕에 되찾을 방법이 없었다.


 오전 10시 즈음 미팅하기 직전 전화를 받은 나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너덜너덜해진 육체를 이끌고 들어와 깜깜한 거실의 형광등을 겨우 켤 수 있었다. 새벽 동이 틀 무렵 퉁퉁 부은 눈을 뜨고 겨우 일어나 몸을 씻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기를 반복하면서 샤워를 마쳤다.  


 ‘괜찮아’ 한마디 위로가 절실했지만, 혼자라 더 행복하다 외치며 까불거렸던 터라 알량한 내 자존심은 누군가에게 알리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다시 터진 오열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안과 용서하지 못할 내 행동에 대한 자책과 외로움이 묻어 있는 절규였을 것이다.


‘이제 어쩌지…….’     


 태어나 처음으로 상실감과 자괴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생각한 날이었지만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삶을 더 간절하게 살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주변에 나를 욕할 이도 위로할 이도 없다는 현실을 알게 해 주었다.


      



 우리는 밋밋한 구조의 내용보다 반전이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더 즐긴다. 그만큼 우리는 반전이 있는 내용을 좋아하지만, 정작 내 삶의 반전은 원하지 않는다. 지금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 그대로 이어지면 좋겠는데, 우리의 인생을 마치 드라마처럼 즐기는 신들은 그들의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우리의 삶에 반전의 묘미를 반드시 집어넣는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의 인생곡선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곡선이 마치 구불구불 위로 올라가는 롤러코스터 형상이다.


그러고 보니 신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최고의 흥행작을 만들기 위해 계속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삶은 어설프게 찍히는 쉼표의 연속이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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