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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난언니 Nov 10. 2019

중년 싱글들의 가방 공개

지지리 궁상이라 쓰고 중년 싱글녀들의 당당한 삶이라 읽는다

 작년 초 삼십 대 비혼을 선언한 후배를 만났다. 그녀가 비혼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생활에 너무 만족스럽고 자신을 더 가꾸고 사랑하고 싶어서란다. 오 년 전만 했더라도 그녀의 선택을 뜯어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다녀온 자로써 결혼생활과 싱글 생활의 비교가 가능한 지금은 똑 부러진 그녀의 선택을 지지한다.      




 하루는 짜기라도 한 듯 둘 다 배낭을 메고 나타났다. 한 명은 반짝반짝 스팽글이 빈틈없이 붙어있는 블링블링한 가방이고 다른 하나는 호랑이 한 마리 짊어지고 다니는 듯 전체가 호피 문양인 가방이다. 평범하지 않은 각자의 취향이 평범하지 않은 삶을 그대로 반영한  듯하여 한 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문득 그 가방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궁금했다. 당시 유튜브에선 한창 파우치 공개가 유행하던 때라 우리도 흉내 내어 봤다.


 내 가방이야 그렇다 쳐도 이대 나온 여자로 한 때 잘 나갔던 그녀의 가방 안이 궁금했다.


  럭셔리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을 기대했지만 그녀의 가방은 크기에 비해 든 것 없었다.

' 다이어리, 화장품 파우치, 휴대용 티슈 그리고 마치 부적같이 가지고 다니는 작은 돌'


 다이어리에는 아침에 일어나 명상하는 시간을 비롯해 나를 만나러 오는 동안 지하철에서 할 일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런 것까지 기록해?”

“네, 난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1분이라도 아껴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맘이 놓여요. 시간을 더 쪼개 쓰지 않으면 미래가 불투명해질 것 같아요.”


 그녀는 비혼을 결심하고 나서야 삶의 중력을 느낀 것이다. 함께 할 누군가가 있다면야 살짝 의존해가며 이 정도까지 철두철미하게 삶을 계획하지 않겠지만, 그런 운명은 애초에 포기한 듯 우리는 스스로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내 차례가 되자 살짝 망설여진다. 안 봐도 내 가방은 지저분하고 오만 잡동사니와 생필품이 다 들어 있을 것이 뻔하다.


 작은 조리개 가방에는 믹스커피며 허브 차 티백, 원두 티백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사 마시는 커피 값을 줄이면 생활비가 상당히 절약된다는 것을 깨닫고 늘 들고 다니는 필수품이다.

 그리고 카페에서 조금씩 챙기는 티슈 조각과 음식점에서 남은 물티슈도 있다. 한 번씩 그 물티슈가 꽤 요긴하게 쓰였던 터라 음식점에서 남으면 늘 챙긴다. 갑자기 당이 떨어져서 느끼는 어지러움이나 허기를 피할 수 있는 초콜릿과 사탕도 몇 알 나왔고, 어디서든 시간만 비면 일 모드로 돌입할 수 있는 노트북도 항상 지니고 다니는 필수품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문제의 접이식 플랫슈즈.

 명목상으로는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기 위함이라 말하지만 사실 차비 몇 푼을 아끼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티백까지만 해도 참았던 동생은 가방 속에서 신발이 나오자 자지러질 듯 웃으며 놀려댔다.

“신발 닳아서 사는 비용이 차비보다 더 나오겠어요. 언니! 이 정도면 궁상 아니에요?”

“내가 뭐 강남에서 분당까지 걷는다니?”





 절약과 궁상은 한 끗 차이이다. 꼭 필요한 곳에 돈을 쓰면 절약이고 꼭 필요한 곳에도 돈을 쓰지 않으면 궁상이라 한다. 만약 힐을 신고 걸었다면 그런 지지리 궁상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안한 신발에 튼튼한 두 다리를 두고 차를 탄다는 건 묵직한 내 두 다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난 걷는 것이라고 우긴다.    


 누가 더 하거나 덜하지도 않은 누추한 소지품에 기죽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우리가 오히려 믿음직스러웠다.

 가방 속 아이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을 꽉 채우고 삶에 만족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오는 자신감이라 해두자. 화려한 무언가를 걸치지 않았는데 표정이나 사소한 행동만으로 아름다움이 표출되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겐 노년시절의 오드리 헵번이 그렇고, 국민 여가수 이효리가 그렇다.

 

 어떤 이가 보면 명품 립스틱 하나 들어있지 않은 내 가방 속 아이템이 지지리 궁상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중년의 싱글라이프를 가장 효율적으로 다듬어 가는 중이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가며 미래를 꿈꾸고 준비해 가는 그냥 ‘나’이다
라고 생각하니 타인의 시선 따윈 거추장스럽고 쓸데없는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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