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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난언니 Feb 28. 2020

이혼 후, 가장 힘들었던게 뭐냐면...

발목을 잡는 경제적 어려움일 줄 알았다

“미친년.”

친하게 지내는 철학관 언니의 거침없는 한 마디에 당황하지도 않았다. 

 현실적으로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나는 ‘내 영혼을 피폐하게 썩히고 싶지 않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재산권 분할, 위자로 다 박차고 집을 나왔다. 

 나눌 돈이 몇 십억이나 된다면야 볼 것 못 볼 것 다 뒤져가며 싸우겠지만 그 액수의 어림 반푼어치도없는 몇 푼 챙기느라 내 영혼을 피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혼을 결심한 후 각 종 커뮤니티에서 본 위자료 합의를 위해 피터지게 싸우는 모습을 인간의 치졸함 이라 생각했다. 

 당시는 쿨 하게 내던질 줄 아는 내가 멋있었고, 티끌만큼의 미련마저도 던져버린 것 같아 홀가분했다. 


그 땐 그랬었다.     

 

 그리고 한 동안 내 삶을 책임질 자신이 있었던 만큼 내 일에도 더 충실해져서인지 일에 매진할 시간이 많아져서 인진 몰라도 프리랜서로써 꽤 짭짤한 수입을 챙겼다. 

 하지만 프리랜서란 직업은 안정적이지 않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래서 동시에 더 먼 미래까지 대비 할 사업도 구상해야 했다. 

 늘 염려하던 일은 얼마 안 가 서서히 현실로 다가왔다. 내 열정이 식은 것인지, 내 콘텐츠가 소비자의 니즈에 대응을 못 하는 것인지 수입이 눈에 띄게 줄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기와 교통사고를 차례로 겪으면서 링 위에서 허우적대다 강펀치 한 방에 쓰러져버린 복싱선수마냥 나는 엎어졌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것처럼 죽기보다 싫었지만 위자료를 다시 받을 방법이 없나 궁색하게 알아보기도 했다. 새로운 사업을 잘 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트북만 쳐다보며 늘 고민해야 했다. 이 난관을 잘 뚫고 경제적 안정된 삶을 다시 찾는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힘들 때 자주 나가던 모임은 물론 단순히 친목을 위한 만남에는 아예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 모든 건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고 난 뒤에 해도 된다는 큰 착각 속에서 혼자만 바빴다. 그러면서 주변의 사람들은 서서히 멀어져갔다.     


 “이혼하고 뭐가 제일 힘들어요?”

가끔 속없이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 때마다 난 아무 준비 없는 내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을 이야기 했다. 진짜 두려움이 그것인 줄 알았던 나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치열해야 했고, 그럴수록 더 중요한 것을  잃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끌까지 일관성 있구나, 자신이 필요한 게 무언인가만 생각하는 네 모습”     


에이치가 남긴 모진 한 마디에 나는 오열을 터뜨렸다. 

그가 떠났음에 대한 오열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한 나를 알아주지 않음에 대한 서러움이었다.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열심히 일하는 나를 ‘이기적 인간’으로 정의내린 그가 원망스러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가 떠난 후, 진짜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알아갔다. 

 

 일에만 몰두하다 가끔 만나던 에이치. 일여년 동안 일 이외에는 만난 사람이 없었다. 삼 년전에 비해 통장 돈의도 두둑해졌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새로 이사한 집은 꽤 집다운 아늑함도 갖췄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3년 전. 아무것도 없이 내 몸뚱아리만 달랑 꺼내 온 당시에도 난 늘 웃고 다녔고, 긍정의 에너지가 넘쳐 주변 누구도 내가 이혼했으리라 상상조차 못 했다. 그 땐 만나는 사람마다 ‘기분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일색이었다. 늘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받고 그 힘으로 늘 웃으며 내 일에 열정을 쏟아 내었던 듯 하다. 연이은 사기와 사고도 자신의 불행을 공유하며 위로해 준 고마운 분들이 있었기에 박차고 금새 일어날 수 있었다


 가만 보니 ‘볼수록 기분 좋다’는 말은 최근 들어본 적이 없다. 늘 웃고 다니는 내 유쾌함은 흔적을 찾아 볼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업을 하며 늘 사람을 만나 협상을 해야 했고, 언제 암사자를 공격하는 하이에나 떼가 달려들지 온 몸의 촉을 세우고 있는 수사자처럼 나도 늘 미간을 찌푸리고 당하지 않기 위해 센 척하며 미팅을 해야 했다. 사람들과 함께 깔깔 거린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혼자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이는 열정만 있고 내가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외롭고 두려운 길을 찾아 혼자 다녔었다.     


 경제적인 안정만 찾으면 부러울 것 없는 이혼녀가 될 줄 알았다. 



지금 깨달은 것은 굶어 죽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과 죽자고 덤비면 돈은 얼마든 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진짜 두려운 건 돈이 아니라 건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에이치는 내게 큰 선물을 남긴 셈이다. 예전의 내 유쾌함이 사라진 것을 알게 해 주었고 상대에게 기분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쓰던 내가 지금은 입에 문 먹이를 뺐기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주변에 똑똑하다 인정받는 것보다 그냥 ‘기분 좋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 값진 말이란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여자 혼자의 삶

돈만 있으면  그럭저럭 잘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를 지탱하게 해 주는 것은 건 돈보다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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