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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난언니 Nov 13. 2019

40대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법

이혼 후, 혼자여서 훌쩍 떠나는 것이 가능했다.

 몇 년 전 인기 있었던  예능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에서  청춘들이 라오스에서 즐기는 모습에 흠뻑 빠졌었다. 인위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라오스의 자연 앞에서 주인공들의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이 마치 꼬맹이들 같았다.  당시 웃음을 잃었던 나는 티브이 화면을 통해  대리만족을 했을 것이다. 나도 아이처럼 깔깔대며 웃고 싶었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과 미리 예약해 둔 숙소 주소만 들고 한밤중에 라오스 비엔티엔 공항에 서 있었다. 누추한 라오스 비엔티엔 공항에 서자마자 막막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산으로 둘러싸인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미니버스 안에서도 꽤 긴장했던지 꽉 진 주먹을 풀지 않았다. 무슨 배짱으로 지하철도 택시도 안 다니는 시골을 몸도 마음도 무거운 중년이 혼자 올 생각을 했는지… 버스 앞자리에 한국인이 한 쌍 있어서 그나마 안심은 되었다.


 후회와 긴장은 하루 2만 원짜리 숙소의 방값을 지불한 뒤 방문을 열고서야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테라스 밖은 쏭 강을 따라 카르스트 산맥의 풍광이 펼쳐졌다. 장엄함, 웅장함 등으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다.

 


 이 앞에서 어찌 두려움을 표할 수 있겠는가?

 이 앞에서 누가 절로 감탄의 소리를 지르며 미소 짓지 않겠는가?

 

 자연 앞에서 모든 것은 평화로웠다. 천장을 기어 다니는 도마뱀부터 눅눅한 침대 시트. 누가 이만 원짜리 방 아니랄까 봐 모든 환경이 불편했다.   벌레가 가방 속에 들어갈까 봐 짐은 풀지도 못했다. 시원한 물에 샤워라도 하면 좀 개운할까 싶어 샤워기를 틀었지만 물은 미지근하고 화장실에서 마저도 도마뱀 한 마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영부영 샤워를 마치고 이미 미지근해져 버린 라오 비어를 한 잔 마시면서 테라스에 앉았다. 그 장면에 매료되어 그곳까지 날아간지라 불편함은 싹 잊고 세상 모든 것 다 가진 사람 마냥 양팔을 벌리고 목을 뒤로 젖혀 자연을 맞았다. 살짝 술기운이 돌자 눅눅한 침대는 푹신한 내 안식처가 되었다.

 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현지인처럼 하루 종일 방에서 뒹굴며 라오 비어를 마셔 대는가 하면 어슬렁거리며 숙소 주위를 배회했다. 과일가게에서 처음 보는 과일도 사 먹고 동네 꼬마들 노는 걸 한참 쳐다보기도 했다. 결국 방비엥에서의 삼일 일정은 일주일로 연장되고, 루앙프라방까지 꼭 즐기고 싶은 욕심에 비행기 일정을 연장해 보름을 라오스에서 보내다 돌아왔다






  이제는 혼자 여행이 익숙하다.


 정확히 말하면 내 여행 취향과 꼭 맞는 동지가 없어 혼자 다닌다. 그렇게 즐기게 된 혼자 여행을 통해 모든 상황을 ‘나’ 중심으로 만드는 법을 배우고 몰랐던 내 취향을 알아가고 있었다.

 

 처음 시도한 라오스 여행은 내 일상에 깊이 파고들었다. 남들의 눈에 불쌍하게 보일까 봐 혼밥을 못 했던 나는 혼밥을 넘어 혼자 회도 먹고 다닌다. 또 주말에 쇼핑몰을 혼자 돌아다니면 남들이 이혼녀라 생각할 것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이젠 주말에도 당당하게 카페에 앉아 혼자 브런치를 먹으며 여유를 즐긴다.

 

 말할 데라고는 상점뿐인 여행지에서는 모든 환경을 ‘나’에게 맞추게 된다. 누군가의 관심과 인정에 의지해 나의 가치를 높였다가 혹은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전혀 낯선 환경에 세워놓고 나를 최고의 존재로 만드는 것.



혼자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깔끔한 레스토랑 음식보다 다양한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호커센터가 더 취향에 맞았고, 박물관이나 쇼핑몰을 다니는 것보다 시장 구경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현지인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좋았다. 가끔 길을 잃어 헤매어도 새로운 행선지를 만들어 돌아다니며 계획되지 않은 세렌디피티를 즐겼다. 그렇게 헤매다 발견한 상점에서 산 작은 마그네틱은 지금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나의 보물이다.


 또 나답지 않은 모습이라 못 박아버린 낯선 행동을 하면서 가장 나다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평소 나는 못난이 다리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치마를 잘 안 입는다. 혼자 여행이 익숙해지고 과감해질 대로 과감해질 즈음 중국 샤먼 거리에서 엉덩이 살이 보일락 말락 한 핫팬츠를 입고 형광색 나시 티를 입고 활보한 적이 있다. 의외로 노출이 심한 의상이 잘 어울려 살짝 놀라기도 했다. 가끔 한국 관광객으로 보이는 무리를 볼 때면 살짝 창피하긴 했지만, 만약 외국인들이 쳐다보면 유행하는 코리안 패션이라 얼버무리고 패션을 선도하는 당당한 패셔니스타인 척하려던 차였다.



 


 비록 음식을 주문할 때 다양한 종류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과 사진첩에는 죄다 커다란 얼굴 드러내는 셀카만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정도야 여행을 통해 내 삶을 풍만하게 꾸려나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에 비하면 감당할 만하다.      


  내 년 즈음엔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 걸어 볼까 궁리 중이다. 하루 20~30km를 뚜벅뚜벅 혼자 걸으며 스쳐 지나가는 오만가지 생각들에 잠시 추억에도 젖어보고 반성의 눈물도 하염없이 흘리고 좋아서 흥분하는 내 모습은 안 봐도 뻔하다. 다녀오면 나를 더욱 격하게 사랑하게 될 것도 뻔하다.



  40대 싱글라이프에서 여행이 주는 소소한 만족감은
나를 일상에서 늘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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