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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Nov 09. 2024

식물에 관한 소설 같지만, 실은 살인 사건을 다룹니다

<나인>, ‘서점 책가도’에서 우연히 만난

식물에 관한 소설 같지만, 실은 살인 사건을 다룹니다, <나인(스위치 에디션)>, ‘서점 책가도’에서 우연히 만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벗겨 낸 세상의 비밀을 한 겹씩 먹으면, 어떤 비밀은 소화되어 양분이 되고, 어떤 비밀은 몸 구석구석에 염증을 만든다. 비밀의 한 꺼풀을 먹지 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의 시스템은 그걸 먹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설정되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p. 27)     

- 천선란, <나인> 중 발췌     


*** 이번 서평에는 소설 <나인>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기 전 주의 바랍니다. ***     


식물에 관한 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은 살인 사건을 다룹니다.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SF보다는 현실을 다루는 일상물에 가깝고(외계인이라는 소재는 감초일 뿐입니다.), 식물과 소통할 수 있는 주인공이 나오지만 힐링물이 아닌 사회 부조리에 맞서 건투하는 이야기입니다.     


소설 <나인>의 주인공 ‘나인’은 열일곱 고등학생으로, ‘지모’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부터 나인은 식물의 소리를 들리기 시작합니다. 손가락 끝에서는 새싹들도 자라죠. 다 그녀가 외계인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녀와 지모는 모두 몰락하는 행성에서 지구로 이주한, ‘누브’라는 외계 종족의 후손이죠. 하지만 나인은 자신의 행성을 모릅니다. 식물의 소리를 듣게 되기 전까지는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죠. 지구에서 나고 자란 누브 3세(혹은 4세, 5세)인 그녀에게 고향은 몇백 년 전에 몰락한 이름 모를 행성이 아닙니다. 그녀에게 고향이란 지금 당장 발붙이고 살고있는 이 지구죠.     


그래서일까요. 나인은 새로 생긴 특수한 능력들을 온전히 인간을 위해 사용합니다. 인간이 아닌 누브이기 때문에 식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의 기억을 읽을 수 있으며, 식물을 되살리거나 죽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녀는 이 능력들을 자신의 종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종족을 그리 궁금해하거나 찾아 나서지도 않습니다.) 대신, 나인은 초월적인 능력을 활용해 같은 고등학교 학생, ‘박원우’를 찾아냅니다. 박원우는 2년 전, 나인과 같은 열일곱 살의 나이로 실종된 같은 학교 2년 선배입니다. 그는 어느 날 아버지 카드를 들고서,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경찰은 그의 실종을 단순 가출로 처리해 버렸고요. 매일 길가 곳곳, 사람의 눈길이 닿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 실종 전단지를 붙이는 박원우의 아버지는 경찰과 생각이 다른 듯 보이지만, 열일곱 살 고딩 남학생의 증발을 누가 그리도 걱정할까요. 그것도 불우하고 빈곤한 편부 가정의 자식을 말이죠.      


그래서 박원우는 잊혀집니다. 모두에게. 같은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심지어 목격자 진술을 듣고 조서를 작성했던 형사의 기억에서마저도 서서히 지워지죠. 심지어 그를 마지막으로 불러냈던 그의 친구, ‘권도현’에게서조차도 그의 존재감은 옅어져 갑니다.     


나인은 그렇게 엉성해져 가던 박원우를 되살립니다. 한 식물의 제보를 듣고서, 사라진 그를 다시 복원시켜야 할 책임을 느끼죠.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엊그제 처음 알게 되었고, 동료 종족들이 지구에 몇 명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인의 관심은 온통 사라진 소년에게 쏠립니다. 그녀에게는 종족에 대한 호기심보다 한 인간의 생사가 더 급박한 사안이기 때문이죠. 그녀에게도 대외적인 명분은 있었습니다. 박원우가 실종 전까지 입버릇처럼 ‘외계인’을 읊고 다니고, 어린 시절 실제로 외계인을 봤다고까지 말했으니, 그의 거취를 파악하는 건 ‘외계인’으로서의 사명감이기도 합니다. 외계인 목격자는 종족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이 전개될수록 외계인은 순 허상에 불과한 변명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외계인이 아닌, ‘박원우’라는 인간 자체입니다. 그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오만 군상의 인간들과 그들이 숨기고 있는 지독하고도 악독한 비밀들. 나인의 목표는 그들을 벌거벗기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들을 비로소 잘못이라 지적하며, 돈과 권력이 결코 한 소년을 말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내는 것이죠. 그래서 나인은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박원우를 복원시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죽어가던 그를 부활시켜, 그의 이름과 시간을 통해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죠. 그리고 그녀가 해낸 어떤 일은, ‘작가의 말’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뒤틀린 어른이 뒤틀린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가 자라 뒤틀린 어른이 되어 다시 뒤틀린 아이를 만드는 세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온전한 어른이 사라진 세상이 되기 전에, 상처와 슬픔이 무기가 되어 또 다른 출혈을 일으키는 세상으로 향하지 않도록, 그런 마음으로 썼다. (p. 425)”     


‘작가의 말’의 포문을 여는 이 문장이, 저는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시니컬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소설은 은유이고, 작가가 하고픈 말을 설득력 있게 포장하는 포장지 정도로 여기는 편입니다. 인물이니 사건이니 하는 것들은 결국 최종적으로 도달하고픈 어떤 종착점,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라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을 때면 매번 이야기가 표현하고픈 결론의 문장을 (약간은 강박적으로) 찾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작가가 먼저 목적의식을 명료하게 제시하는 소설을 만나면, 이야기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은유의 본질이 간결하고 명확할수록, 가슴을 묵직하게 내리치는 소설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 여기서부터는 소설 <나인>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기 전 주의 바랍니다. ***     


천선란 작가의 <나인>은 목적이 명확한 이야기였고, 본질이 간단명료한 모든 소설이 그러하듯, <나인> 또한 끝으로 향할수록 점점 더 날카롭고 묵직하게 폐부를 찔러 왔습니다. 그중 은유의 본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던 지점은 박원우의 친구였던 ‘권도현’이라 생각합니다.      


“나 잘못한 거 없는 거 맞지? 엄마도 그랬잖아. 걔(박원우) 정말 이상한 애라고. 아줌마들한테도 그렇게 말하고 다녔잖아. (...) 괜히 물들 것 같다고. 나보고 그런 헛소리나 지껄이는 정신 나간 애랑 그만 놀라며. (...) 아빠도 그랬잖아. 그 경찰이랑 어차피 다들 관심 없다고. (...) 아, 근데 나 그거는 궁금하더라. 돈을 줄 거면 그냥 그 새끼 아빠한테 돈을 주지 왜 경찰한테 줬어? 돈으로 다 용서받았다면서. 돈은 그 아저씨가 더 필요할 텐데.” (p. 367)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고, 죽은 친구가 약점이 되었던 어느 날, 권도현은 부모에게 이런 말을 던집니다. 본성이 파렴치한 인물이라 이런 막돼먹은 말들을 내뱉은 건 아닙니다. 매 순간 죽은 친구를 대면하며, 죄책감에 몸서리치면서도 권도현이 꾸역꾸역 못된 말을 해낸 이유는, 일부는 부모를 향한 반항심이었고, 일부는 악에 받쳐 터져 나온 본심이었습니다. 박원우는 아주 오랫동안 권도현이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친구였지만, 부모는 온갖 술수와 모함을 꾸며 권도현에게서 박원우를 떼어내고자 애썼습니다. 박원우는 권도현을 가장 권도현답게 만들어 주었지만, 부모의 눈에는 진실된 권도현보다는 박원우의 부족하고 참담한 스펙이 더 돋보였기 때문이죠.      


부모의 한결같은 태도는 박원우가 사라진 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권도현은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괴로움에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지만, 부모는 죄책감이라는 감정마저 앗아가 버렸습니다. 덕분에 권도현은 벌을 받고 싶지만, 벌을 받을 수도 없는, 그로기 상태에 빠져 버리죠. 부모는 그를 보호했다고 하지만, 권도현은 부모가 만들어 놓은 뒤틀린 보호막 안에서 조금씩 희미해져 갑니다. 어쩌면 부모의 보호막이 없었더라면, 권도현은 살인자도, 정신병자도 되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모함이 없었다면, 권도현은 박원우와 평생 절친이 되어 살았을 테고, 살인 따위는 저지를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또한 아빠의 그릇된 뇌물이 아니었다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 감옥에 들어가 어깨를 짓누르는 죄책감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을 테죠. 만약 그랬다면 서류상에서는 빨간 줄을 얻게 되었을지 몰라도, 스스로에게 빨간 줄을 긋는 선택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박원우와 사이가 소원해졌음에도 권도현은 그를 여전히 친구로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권도현을 사지로 몰아넣었으니까요. 어떨 때는 정당한 처벌이 한 사람을 회생시키기도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너무 돈이 많고 배경이 좋은 탓에, 권력 위에 서 있는 잘난 부모를 둔 탓에, 그는 좀처럼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부모라는 사람들은 그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끝없이 쳐내기만 할 뿐이었으니까요. 부모와 충돌했던 어느 날, 권도현이 부모에게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던 말들은 어쩌면 반항으로 위장한 서러움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의 설레발에 의해, ‘보호’라는 억지스러운 명분 아래, 정당한 기회들을 박탈당한 원통함과 억울함, 평생에 걸쳐 겹겹이 쌓여 왔던 억눌린 감정들의 분출이 아니었을까요. 아직 부모처럼 도덕성이 결여되지 않은 권도현에게 뒤틀린 애정을 퍼붓는 부모의 모습은, 또 다른 형태의 아동학대, 폭력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인>의 권도현을 보면서 <미스터 선샤인>의 ‘김희성’이 떠올랐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양반이었던 부모와 조부모와는 달리, 김희성은 양심이 남아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선대와는 다른 우수한(?) 성품은 그를 후벼파는 독이 되죠. 아마 그가 독립운동이라는 사명을 갖기 전까지, 내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도박과 술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단순히 부유한 한량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선대의 만행에서 파생된, 굶주린 사람들과 무너진 삶을 빈번하게 마주하며, 그의 정상적인 도덕성은 아마도 상처 입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살인자의 자녀들이 자주 겪는 ‘피에 아로새겨진 죄책감’을, 아마 그는 평생에 걸쳐 경험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노름과 주색에 미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감수성이 여리고, 도덕성이 살아있을수록 두 얼굴의 조부와 부모를 보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왔을 테니까요. 물론, <미스터 선샤인>에서는 부모의 뒤틀린 사랑과 보호가 주된 과오는 아니지만, (단지 일부일 뿐이지만) 뒤틀린 양육자의 모습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점에서 김희성과 권도현은 상당히 흡사해 보였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김희성은 극의 후반에 더 희생적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에 아로새겨진 조상의 얼룩을 조금이나마 씻어내기 위해서요. 권도현이 나인과 친구들의 도발에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가 자수를 한 것처럼 말이죠.      


나에게 대물림된 유전자가 잔인하고 극악무도하며, 냉혈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의 핏줄에 영락없이 괴물의 피가 흐른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멀쩡한 정신으로 그 사실을 대면할 수 있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요? 자라나면서 결국 물들지도 모를 일이지만, 부모의 진면모를 처음으로 대면한 첫 번째 순간에는 누구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살뜰하게 챙겼던 부모가 사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누군가를 무너트릴 수 있는 사람이며, 그들의 유전자를 나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극도의 이기주의는 언젠가 되돌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미스터 선샤인>의 김희성이 그러했듯, <나인>의 권도현이 그러하듯 선대의 선택과 결정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후대에 영향을 주고, 종종 좋지 못한 결과의 씨앗이 되죠. 물론, 김희성, 권도현과 달리 선대를 그대로 답습하는 후대도 있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또 다른 악습이 될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긍정적인 사회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뜻이죠. 개인이든 집단이든, 종국에 누군가는 파괴될 테니까요.      


극도의 이기주의가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선택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기적인 결정들은 지금 당장은 내게 혹은 내 가족에게 유리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모두를 침몰시킬 독이 되어 사회를 좀먹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병들어 버린 사회에서 고통받는 건 결국 누군가의 후손이겠죠. 아마도 확률적으로 볼 때, 가장 고통받는 건 극도의 이기적인 선택을 한 몇몇 이들의 후손들일 겁니다. 이기주의자들은 생존 경쟁에서 자주 살아남으며, 높은 확률로 후손을 남기게 되니까요.     


우리가 미련해 보일지라도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선택들이 모여서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고, 그렇게 형성된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죠. 즉, 뒤틀린 어른의 뒤틀린 선택은 뒤틀린 가정과 뒤틀린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에서 고통받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 혹은 우리의 아이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혹여 냉혈한처럼 살겠다 결심했다면, 오늘도 어김없이 이기적인 선택들을 거듭했다면, 한 번쯤은 그 다짐과 행동을 돌아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내린 어떤 결정이 내일의 부메랑이 되어 나와 나의 아이들에게 되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오늘 내가 던진 권모술수의 칼날이 향하는 건, 눈앞의 상대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 혹은 내 아이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 책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서점 책가도




< 우연히 만난 책들 >


책방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방을 방문할 때마다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한 권씩 구매합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들을 그냥 묵혀 두기 아까워 책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 우연히 만난 책들 >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글 모음집입니다.

글에서는 책방에서 책을 고른 이유와 책에 대한 소소한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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