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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Jun 07. 2021

식고 휘늘어진 사랑이 되느니

춘천가는 기차

플랫폼에는 부산한 설렘이 있어

굳이 레일에 귀를 대보지 않아도 들리거든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어디라도


옛날이라면 난 약장수가 되고 싶었을 거야

한 번밖에 눈 감지 못하는 생을 모르는 척하느라고

봇짐을 푸는 순간보다 싸는 순간이 좋았을 걸

나뭇가지로 그은 약속이야 뭐라든

발끝으로 쓱쓱 문지르면

깜빡 잊은 척 놓고 가면

그만


낡은 의자는 제법 의젓한 태가 난다

자주 떠나보낸 자의 쓸쓸함 같은 거

대합실을 배경으로 꾸벅 조는 사람들의 꿈은

어디를 배경으로 하나


마침 근처에 올 일이 있었어

커피를 보니까 네 생각이 나서

자리에 앉는 동안의 쭈뼛거림은

떠날 때는 간데없고


터널 속에 들어가며 갑자기 마주한 내 얼굴엔

무력한 방심이 있어 화들짝 놀랐다


김 서린 창문을 닦으며 살살 달래본다.

뒤돌아간 풍경에는 다시보기가 없어요


식고 휘늘어진 사랑이 되느니

두고두고 아픈 게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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