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이 훑고 지나간 자리

 지독하게 아팠다.

 원인은 B형 독감. 첫 시작은 남편이었다. 주말에 눈썰매를 타러 다녀온 이후 시름시름 앓더니 오한까지 왔단다. 그렇게 이틀정도 아팠나? 평상시 남편이 아픈 걸 극혐 하는 나라서 “으이그 쯧쯧.”하며 구박만 했다.

 그리고 시작된 정안의 방학. 친구와 잘 놀고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주 무탈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 날 밤 자다가 닿은 손이 너무 뜨거워 놀라 깼다. 더운가 싶어 이마를 짚어보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싶었다. 열을 재어보니 39.7도가 나온다. 빨간불이 뜨니 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자는 아이를 깨워 집에 있는 해열제를 먹였다. 보초를 설만큼 어린아이가 아니라 나도 다시 잠을 청했지만 깊이 들리가 없다. 2시간쯤 지났을까, 다시 열을 재니 38도로 내려왔다. 다시 깨서 쟀을 땐 40도로 다시 빨간불을 내뿜는다. 해열제를 먹이고 소아과에 대기를 걸어두러 눈을 뜨자마자 다녀왔다. 증상이라곤 고열뿐이라 독감검사를 해보자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같이 진료를 본 아빠의 목을 보여주며 아빠가 100% 독감이죠~ 하며 약을 지어주셨다. 아무래도 수액을 맞아야 할 것 같아 수액 잘 놓는 병원을 검색해 찾아갔더니 아뿔싸 수액이 품절이란다. 다시 동네로 돌아와 수액을 놔주는 병원으로 갔다. 역시나 둘은 A형 독감. 바로 수액실로 향했다. “이렇게 되면 엄마도 독감입니다.”하는 선생님 말씀에 온 김에 그럼 나도 검사나 해보자 싶어서 코를 찔렀다.

 “이상하네요. 왜 엄마는 b형 독감이죠?”

 세상에 내가 독감이라니. 내가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 인생 첫 독감이다. b형 독감은 a형에 비해 심각하게 아프진 않으니 약 드시라는 말에 네라고 대답한 그날의 나를 원망한다.  

 

수액을 맞은 두 사람은 다음 날 컨디션을 바로 회복했다. 정안이 아플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수액이 잘 들었다. 두 사람과는 달리 그날 오후부터 나는 점점 더 아파왔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새벽 혼자 오한으로 앓았다. 목이 너무 아파서 물조차 삼키기 힘들었다. 뭘 먹어도 아팠다. 약 때문에 겨우 물에 밥을 말아먹고 자리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입맛도 없을뿐더러 미각도 잃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5일 치 약을 다 먹고 나서는 기침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기침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잊고 있었다. 코로나보다 지독하고, 아픈 것이 독감이라는 것을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왜 나는 수액을 맞지 않았을까? 그래도 하루하루 지나며 점점 나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12월 마지막주가 지나갔고, 1월 첫째 주가 지났다. 연말과 신년을 독감으로 앓느라 분위기를 느낄 새도 없었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 한 편의 글을 적는 것도 할 수 없었고, 신년 계획을 짤 여유도 없었다. 대신 건강이 최고라는 가장 기본적인 모토가 자연스럽게 상기되었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잊고 있었는데 다시 평범한 것이 간절해졌다. 아침에 한 잔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남편과 먹는 야식이, 정안과 산책하고, 같이 자려고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달았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너무 그리운 며칠이었다.

 해가 바뀌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나는 멈추어 있었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갔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올 한 해는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기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랄 것이 없다. 그리고 독감에 걸렸다면 그 어떤 고민도 할 것 없이 수액을 맞는 것을 추천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