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함께 비행기를 탔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by 은성킴

정안이는 인생 8개월 때 첫 비행기를 탔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아주 짧은 거리의 비행이었다. KTX를 탈 수도 있었지만 호주에 가기 전 미리 예행연습을 할 겸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초록창과 맘 카페에 <아기와 비행기>, <아기, 비행기>, <8개월 아기, 비행기> 같은 검색어를 넣고 계속해서 검색했다.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지, 난 어떤 것을 대비해야 하는지를 미리 알고 싶었다.


비행기를 타는 날 왜인지는 모르지만 정안이는 몹시 흥분 상태였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타는 비행기라 나는 불안했다. 잘 울지 않는 아기지만 혹시나 울까 봐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역시나 정안이는 얌전했고, 김해에서 김포는 생각보다 아주 가까웠다. 얼마나 여유가 있었냐면 커피를 마셨다. 그것도 뜨거운 커피를! 비행기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면 그건 정말 정안이가 얌전히 잘 있어줬다는 말이겠지.

비행기가 뜰 때 아기 귀가 아플 수도 있다고 해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에 맞춰 분유를 먹였다. 그렇게 예행연습을 무사히 마치고 실전에 돌입할 날이 다가왔다.


생후 8개월 때의 정안

2개월이 지나는 동안 정안이는 얌전한 아기 옷을 벗어던지고 부산스럽고 호기심이 많은 아기로 성장했다. 그만큼 나의 걱정은 더 커지기만 했다. 분명 티켓팅을 할 때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아기라 자신만만했는데, 비행기를 탈 날이 다가오자 나의 오만함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까불기를 시작했다. sns에서 본 것처럼 앞뒤 승객들에게 줄 귀마개와 사탕을 넣어 편지라도 써야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부산에서 브리즈번까지 한 번에 가는 직항이 없는 터라 인천공항에 가서 경유를 한 번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디에 수유실이 있는지 어디에 화장실이 있는지 어디에서 분유를 탈 수 있는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인천공항에서 나는 왜 그런 걱정에 사로 잡혀있었을까. 지금 다시 가면 누구보다 느긋하게 아기를 데리고 있을 수 있는데. 라운지에서 느긋하게 밥 먹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급히 나와서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보통의 여행에서 나는 비행기에 많은 짐을 가지고 타지 않는다. 핸드폰, 충전기, 이어폰 정도만 있어도 장거리 여행은 끄떡없다. 여권과 지갑, 립밤, 핸드크림 정도는 가지고 타야 하니 크로스 백이나 작은 백팩 하나로 충분하다. 하지만 아기와의 여행에서는 가지고 타야 할 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거기 내 짐은 없었다. 이어폰은 사치다. 아기의 작은 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니 이어폰을 쓸 일이 없다. 립밤이나 핸드크림 또한 필요 없다. 그런 것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뜨거운 물을 넣은 보온 통 하나, 끓였다가 식힌 물을 넣은 보온 통 하나, 우유병 2-3개, 공갈젖꼭지 2개, 분유를 소분해서 담은 모유 저장팩 4-5개, 레토르트 이유식 몇 개, 잘 먹는 간식 몇 개, 여벌 옷, 베개, 이불, 장난감 몇 개와 책 몇 권, 보리차를 담은 물통, 여분의 보리차 등. 물론 이 중의 절반도 사용하지 않았다. 밤 비행기라서 아기가 계속해서 먹을 것을 찾을 일도 없고, 비행기 안에서도 새로운 물건들이 많아 보여주고 만지고 할 것들이 많아서 장난감도 책도 아무것도 쓸모없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요청하면 승무원이 친절히 가져다주고 아기 마실 생수도 같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때 아기는 생수를 먹으면 안 되는지 알았던 애송이 시절이라 꼭 끓인 물만을 먹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싶다. 어마어마한 짐들과 유모차. 유모차 역시 타고 있을 땐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하나의 짐일 뿐이다. 아기띠 하나로도 충분한데, 왜 그걸 미리 붙이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했다. 지나고 보니 아기와의 첫 여행은 시작부터 실수 투성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저렇게 챙기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해서 불안해했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몸이 조금 힘든 게 낫다.

무거운 짐과 긴장 속에서 비행기를 탈 시간이 다가왔다. 아기와 함께면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먼저 들어갈 수 있는 배려를 받을 수 있는데, 이 배려를 마땅찮게 생각하는 사람은 꼭 아기와 함께 여행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만약 지금 정안이와 비행기를 탄다면 제일 마지막에 탈 것 같다. 미리 일찍 들어가서 얌전히 앉아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걷지 못할 때 다녀온 게 신의 한 수 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대한항공을 이용했는데, 티켓팅을 할 때 미리 베시넷을 신청해 둔 상태라 정안이는 편하게 잘 수 있는 이동용 침대를 하나 얻었다. 11kg , 90cm 미만의 돌 이전 아기에게만 해당하는 서비스이다. 정안이는 이때 9kg, 70cm 정도라 신청 가능했다. 다행히 비행기에도 사람이 많이 없었다. 앞뒤가 다 텅텅 비어 있었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아기용 이유식도 나오는데 정안이는 먹고 조금 토를 해서 멘붕이 왔다. 어차피 밥 먹는 시간도 아니었는데 주지 말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지만 여벌 옷을 챙겨 왔기에 둘이서 화장실에 가서 후다닥 옷을 갈아 입히고 돌아왔다. 아기와 여행할 때는 아기의 평상시 패턴을 억지로 바꾸려 해서는 안된다. 안 하던 것을 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아기의 패턴을 지켜주며 여행하자.

처음 보는 장난감을 주면 잘 논다고 하길래 그 무렵 정안이가 제일 좋아하던 리모컨 모양의 장난감을 사 두었다. 미리 뜯어봤었어야 하는데 비행하는 날 뜯어봤더니 on/off 버튼도 없고,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나는 장난감이라 급하게 소리 나는 구멍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 소리를 작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안이는 이 장난감에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잘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하나 챙기는 게 나을 것 같다. 새로운 장난감은 아이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으니 위험한 도전이다. 그래도 한 번 징징 거리는 거 없이 비행기에 불을 다 끄니 조용히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기가 떨어질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9시간 비행 중 6시간 정도는 잠을 잔 것 같다.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보채지도 울지도 않아서 할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나의 걱정들이 먼지가 되어 날아갔다.



무사히 비행이 끝났다. 하지만 나는 또 하나 걱정거리가 있었다. 바로 정안이의 이유식이었다. 호주는 음식물 반입이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다. 어디 무인도에라도 가는 사람처럼 정안이 먹을거리를 챙겼으니 제법 큰 가방이 되었다. 호주도 사람 사는 곳이고 우리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이유식을 판매할 텐데 뭐가 무서웠는지 2주가 넘는 이유식, 분유, 간식을 다 챙겨갔다.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재료의 음식을 먹여 낯선 곳에서 아픈 아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떨어져서 결국에는 호주에서도 분유, 이유식, 간식 모두 다 구매해서 먹였지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일부러 정안이 밥 가방을 따로 싼 건 잘한 일이었다.

음식물을 가져왔다고 체크를 하니 바로 나가지 않고, 옆으로 살짝 빠져 가방을 열고 한 번 더 체크를 했다. "다 아기 밥이야." 했더니 그래도 가방을 한 번 더 열어본다. "이게 다야?" 하길래 "응, 이게 다야.", "그래 잘 가." 내가 했던 걱정이 민망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모든 것이 끝났다. 모든 일에 최악을 상상하는 것은 정말 좋지 못한 습관이지만 그래도 최악을 상상하고, 이렇게 아무 일 없이 끝나면 정말 마음이 편해진다. 밤 비행기를 타고 왔더니 공항 밖을 나와서도 8시가 채 되지 않았다.

시차가 없는 밤 비행은 정말 좋은 선택지였다. 아기의 패턴에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엄마 아빠 역시 시차 때문에 피곤하지도 않아 도착하자마자 여행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짜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비행기를 잘 타고 온 아기에게 이 모든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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