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느낌

눈 앞에 뭐가 보여?

by 토희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살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나요?"


질문을 받는 자를 위한 사랑과 베풂 그리고 성숙이 농축된 질문이었다. 행복...? 언제..?

한편으로는 너무 포괄적이라서 물음을 해석하는 것도, 답을 다는 것도 그저 내가 부르는 게 값인 것 같았다. 현문에 우답하지 않으려면 못해도 내 수준에 맞는 행복을 정의할 수 있어야 답이 가능할 터였다. 눈길을 저 산너머로 옮겨 그게 뭘꼬 생각해보니 비슷한 게 하나 있긴 하다. 매해 빙 둘러앉은 가족들과 누군가를 위해 생일 축하 송을 부르는 따뜻함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가장'이라는 정도 부사가 좀 걸린다. 가장은 여럿 가운데 어느 것보다 정도가 높거나 세게라는 뜻의 부사인데 가장 행복했나요? 라고 물어본 것에 아주 속시원히 들어맞는 답은 아니었다. 생일날에는 이런 질문이 어울린다. "언제 생각해도 행복해지는 때가 있나요?" 이것에는 시간의 연속성이 묻어 난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느낌이며 비교급도 아니다. 내가 받았던 "살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나요?" 라는 질문은 특정하게 톡 튀어나온 꼭짓점을 묻는 듯했다.




지나온 시간들을 더듬어 보았다. 아, 어떤 날이 떠오른다. 그게 행복이었던 거구나 싶던 날. 그날에 돋보기를 갖다 대고 세밀하게 살펴본다. 그거라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한 대답이겠다.


계절은 질문을 받기 2개월 전쯤인 초봄. 수행이란 걸 만나기 전이었다. 그 말인즉슨 마음속 방황의 기세가 등등할 때라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털어놨듯이 나는 마음이 힘들다고 해서 멍하게 당하고 있지 만은 않았다. 무기력한 날과 잘 살고 싶은 노력을 끊임없이 반복한 삶이었다. 다만 지금처럼 근본적인 방법을 알지 못해 그 어리석음 안에서 도는 도돌이표였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과정을 밟아 나갈 때 성과가 마뜩잖아 나를 못 미더워했다. 남이 나를 다그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닌, 지독히 아린 감각은 내가 나를 몰아붙일 때다. 그렇게 매일을 새벽에 일어나고, 일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 나를 품 벌려 안아주지는 못할 망정 혼을 내고 있으니 힘들 법도 했다.


그때는 미라클 모닝이라는 새벽 루틴을 하고 있었다. 미라클 모닝이란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나에게 집중할 몇 가지 프로그램(주로 명상, 독서, 일기와 같은)을 루틴화 하는 것인데 나의 루틴 마지막은 운동이었다. 그날 아침도 집 근처 3km 정도 되는 산책로를 조깅하기로 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새 몸을 놀리는 기분은 갓 나온 빵 냄새를 맡는 것만큼이나 신선했다. 아마 나는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사물놀이 패가 딱이었을지 모르겠다. 한 평생 즐겁게 살다 갔을 몸이다. 몸을 예열하며 집에서 산책로를 향해 천천히 속도를 높여 갔다.


매일이 그랬던 건 아니지만 대체로 뜀박질을 하면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 가지 유념한 것은 뜀으로 해서 뭘 얻겠다는 심산을 갖지 않으려 했다. 예를 들면, '뛰고 나면 기분이 맑아질 거야. 뛰면 하루를 더 낭비 없이 보낼 수 있을 거야.'와 같은 생각이다. 그저 정한 일을 가볍고 일정하게 해 보는 게 취지였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면 동시에 내 앞에 있는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 아무리 잘난 압박감일지라도 사랑하는 자연의 풍광 앞에서는 어깃장이 조금 느슨해지기 마련이었다. 눈과 귀를 열고 달리던 그때, 내 마음은 이랬다.


'울컥.'


나는 이 울컥한 순간을 "살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나요?"라는 질문에 폭 들어맞는 답으로 정했다. 그리고 그대로 이야기했다. 테트리스 게임에서 켜켜이 쌓여있는 블록에 일자 막대기 3개를 연달아 꽂는 것 만큼 그 대답은 나에게 시원함을 안겨줬다. 이야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이라 왠지 낯 간지럽기도 했지만 얼렁뚱땅 구색을 맞추는 답은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한 질문이었다.




조깅하는 두 발은 구르고 있었고 내 눈은 벌게졌다. 정상인보다 눈물샘이 잘 터지는 편이긴 하나, 그 날의 눈물이 기억에 남는다. 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이 선명히 보였다. 눈은 무엇을 쳐다보고 있지만 생각은 어딘가에 떠도는 방황하던 눈이 아니었다. 내 생각이 껴들지 않게, 눈에 닿는 것을 하나씩 보고 있었다. 쾌청한 새벽 기운과 짹짹대는 새소리, 세차게 물 흘러가는 소리를 배경 삼아 두 눈과 발이 산책로 위에 그대로 뿌리내리고 있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내가 말갛게 존재하는 기분이 들 때 나는 '울컥' 했다.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고 있단 걸 알았다.


정신없이 떠다니는 온갖 생각에 사로잡히다 지금 이것은 '내가 만들어 낸' 한 생각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 지금에 깨어있는 느낌이 번쩍한다. 나에게 씐 막을 벗겨낸 기분을 느껴보면 내가 얼마나 내 생각에 갇혀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누군가와 충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을 잘 살피면 내 생각과 나의 기준이 상황을 마찰로써 인식하고 있기도 한다. '이건 정말 상대가 잘못한 일' 마저도 어디까지나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판결일 거다. (물론 힘으로든 말로든 사람을 해하는 것들은 제외다) 나의 사고방식으로 굳어진 생각을 인정하고 '상대는 그냥 저런 사람이구나'를 볼 수 있을 때, 이 또한 새벽 조깅에서 눈에 담은 것과 같은 현재에 펼쳐지고 있는 진실이며 울컥 깨어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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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감정은 행복이란 단어와 참 잘 어울린다. 이 마음을 느끼고 나서 나를 괴롭히던 불안과 강박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미래를 향한 집착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정과 평안 같은 단어도 잘 어울린다. 내가 나 스스로를 포용하고 여기에는 별일이 없음을 자각하는 것. 이것을 느낄 때마다 많이 울컥한다.


나에게 감동받는 일이 많아질수록 나를 소중히 대하게 되고 삶이 당당해진다.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도 '나라면 극복할 수 있어.' 스스로를 신뢰하는 마음이 떠오른다. 신뢰는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세상의 별의별 상황 속에서 격하게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준다. 안정은 지금 이곳에 오롯이 존재하는 느낌을 또다시 느끼게 한다. 도돌이표다. 이번에는 어리석음의 도돌이표가 아닌 내가 편안해지는 도돌이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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