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역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
"너무 아프고 쓸쓸하게 보내서 지금도 마음이 아프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나도 여러분의 곁으로 갈 수 있는 때가 오는 것 같은데 마음 편하게 잠드시고 먼 훗날 우리가 다시 재회해서 지낼 수 있도록 잘 계시오."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6.25 전쟁에 참전한 이봉식 할아버지가 전쟁 통에 떠나간 전우에게 전하는 이야기다. 이 할아버지는 해병대 1기 군인으로 1931년생, 올해 구순이 넘으셨다. 전쟁 당시 고락을 함께한 전우들에게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갖고 계신 듯했다. 그는 연세가 믿기지 않는 정정한 음성 속에 자신의 진심을 담담히 눌러 담았다. 내 마음에 닿은 그의 말에는 말뿐인 말이라고는 1g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속 한 구절은 유난히 내 마음을 이상하게 했다.
'이제 머지않아 나도 여러분의 곁으로 갈 수 있는 때가 오는 것 같은데'
그는 스스로의 죽음을 저리도 담담하게 전한다. 그게 왜 이렇게 기묘한 느낌이 나는지. 마치 그 말을 내가 한 것처럼 할아버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동일시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때 알았다. 사람이란, 생명이란 '죽는 존재'라는 걸. 난 사람이 죽는 줄 몰랐던 걸까? 맞다. 몰랐다.
스물두 살, 내 생에 처음으로 함께 하게 된 반려동물이었다. 하트가 가득하던 일상의 어느 날 그가 하루아침에 싸늘하게 변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 상실 너머로 나는 한동안 삶,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눈만 뜨면 눈물이 흐르는 매일을 추스르게 됐을 때 나는 안부가 뜸하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죽음’을 알게 된 나는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서로의 목소리라도 주고받았다.
나의 친할머니는 장손녀인 나를 끔찍이 예뻐해 주셨다. 내 밑으로 친척동생이 열둘은 되는데 그중 이름을 헷갈린 적은 있으셔도 당신의 인생 첫 번째 손주딸에게는 낭랑해지셨다. 해바라기같이 환한 얼굴로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ㅇㅇ왔니??” 그런 할머니가 두 해 전 돌아가셨다. 화장터에서 자신의 어미를 보낸 우리 아빠의 눈물이 내 마음에 시릿하게 꽂혔다. 명절날 할머니가 손수 담가 주신 달콤한 식혜 항아리의 텅 빈 모습은 그녀의 빈자리를 느끼게 했다.
그러나 어제도, 그제도, 5일 전에도 나는 사람이 죽는 걸 알고 있지 않았다. 이봉식 할아버지가 하늘에 계신 전우들에게 곧 갈 것임을 얘기하실 때야 다시 알았다. 사람이 꼭 죽을 것을. 나는 안 죽지 않을 것을. 오늘 밤에 죽을 수도 있는 건 지금까지 진실이라 믿었던 그 어느 것보다 진실인 것을.
‘망각의 힘’이다. 분명히 나는 이 기억을 또 잊고 죽음을 모르고 살 것이다.
'생겨난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 수행을 하면서 수십 번은 읽고 듣고 사유했던 진실이다. 그렇지 변하지 않는 게 없지.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내 일상에 깊고 진한 대전환을 선사한 말이다. 변한다는 이치 덕분에 나를 둘러싼 것들에 찬탄과 감사를 느낄 수 있었고 덕분에 행복하다.
그러나 그날따라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유독 내 몸을 관통했다. 할아버지는 말씀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지 않았다. 시간의 유한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죽음을 슬퍼하지 않으셨고, 죽음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전우를 향한 애처로운 그리움. 그는 그것 만을 곱씹으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에는 그것이 진하게 있었을 뿐이다.
이게 비로소 죽음이란 것을 내게 실감하게 했다. 우리 곁에 언제나 있기에 이야기 삼지 않는 빛처럼, 공기처럼. 너무 당연한 것을 자연스레 대하는 누군가의 태도에 그것이 비로소 당연해지고 있었다.
삶의 유한함이 내 몸을 정통으로 꿰뚫고 지나간 그 날 이후로, 새벽 수행에서 지금을 생각하면 두렵고 초조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이치를 느꼈을 때는 삶이 행복해졌었는데. 괴로워하면서 살면 나만 손해라는 걸 자각했었는데. 그래, 나는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
죽는 순간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게 언제가 됐든 편안하게, 삶과 삶이 아닌 것이 단절됐으면 좋겠다. 유명인들에게 많이 들어봤던 "그 순간 후회를 하지 않고 싶어요." 그 말이 맞겠거니 보편적인 정답이겠거니 하고 살았다. 허나 난 그런 것 보다 그 순간에 안 죽고 싶어서 아등바등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과 몸, 둘 다 편안한 상태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잘 생각해보면 그 모습이 바로 내 평생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숨이 붙어 살아가는 동안에 몸과 마음이 그렇게 걸림 없이 편안한 상태로 산다면 죽을 때도 별 다를 게 있을까? 지금이 그 때겠구나 싶다. 그때가 지금이겠구나 싶다. 수행을 시작하며 꿈꾼 편안하고 걸림 없는 마음, 또 역시나 그게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모습이었다.
살펴보면 두렵고 초조한 마음은 여전히 무언가 부족해하고 갈망한다는 표식이었다. 아직은 성취가 미완성인 느낌, 뭐든 더 해야 하는데 벌써 죽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내 마음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은 지금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두렵지 않은가? 나는 두렵다. 찰나에 두려운 느낌이 번쩍 한다.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이토록 살고 싶다니. 이렇게 삶을 사랑하다니. 잘 살아야겠다. 하루를 살아도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기왕이면 주변 사람들을 돕고 더불어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아야겠다.
별것과 별것 아닌 것이 보이는 듯도 하다.